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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요 Sep 20. 2023

단골집 욱일김밥은 어디로 갔을까?

봄눈별


 몇 번의 입김을 불고 나서야, 그리고 손을 마주 비벼 따뜻하게 덥히고 어깨를 몇 번쯤 돌리고서는 허리를 쫙 편다. 그러고 나서야, 나는 여덟 글자를 되뇌게 된다. 생. 각. 다. 방. 산. 책. 극. 장. 부산과 얽힌 내 모든 역사가 그곳으로부터 시작되어 그곳에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나는 생각한다. 


 비좁은 골목길을 걷다가 불현듯 나타나는 낮은 언덕을 조금만 오르면 아무도 살지 않을 것 같은 어느 집. 낡고 오래되고, 하지만 그래서 그런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공간의 에너지는 처음인데도 낯설지 않은 느낌이었다. 대체로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니까, 그곳에서의 역사는 사실 쉽고 따뜻하고 포근했던 것이다. 


 벌써 5년 전의 첫 만남을 기억하는 것만으로 이렇게도 좋은데, 더 많은 이야기들을 꺼내다 보면 주체할 수가 없게 되겠지. 그리고 조금은 아쉬운 마음과 아득한 느낌이 동시에 차오른다. 


 생각다방 산책극장이 첫 이사를 가게 되었을 때, 그 때는 한 여름이었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땀이 주르륵 흐르는 때였던 듯하다. 이런저런 물건을 포장하고 내버리고 하는 동안에도 마치 모든 이야기들이 사라지기라도 하듯 울어버릴 것만 같은 마음이었다. 재개발이 된다고는 했었지만, 이렇게 빠르고 구체적으로 쳐들어와서 그 모든 이야기들을 철거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나는 그게 아주 먼 훗날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막상 내 손으로 직접 물건을 포장하는 순간 속에 있노라니 거짓말 같이 실감이 났다. 무겁고 무덥고 무자비한 밤. 짐은 왠지 싸도 싸도 끝이 없는 느낌이었고, 밤은 너무나 짧게 느껴져서 과연 이 모든 이사를 잘 마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나는 이사를 돕기 위해 1박 2일 일정으로 부산으로 온 참이었다. 청량리역에서 출발하여 부전으로 향하는 기차를 타고 7시간 반이 걸려, 새벽녘에야 도착해서는 서둘러 이사를 도우리라 다짐했는데, 이사 준비는 서둘러 시작되기는커녕, 밤이 될 때까지 마음의 준비조차 되지 않았다. 마음의 준비라는 건 아무래도 언제까지나 안 될 것 같은 흐름이었으므로… 나는 약간 조바심이 났다. 물론 이해가 됐다. 되도록 조금이라도 늦게 떠나보내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바라보고 기다렸다. 밤이 깊어서야 시작된 이삿짐 싸기는 밤새 멈추고 잇기를 반복했다. 


 우리는 이삿짐을 싸다 말고 집안 이곳저곳에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적었다. 그곳에게 남기고픈 말들을 적기도 하고, 쌓여 있던 추억들을 새겨 넣기도 하고, 알 수 없는 그림으로 복잡한 심정을 그려넣기도 했다. 해도 해도 끝이 없을 이야기들을 적다가, 현수막 하나를 급조하여 이렇게 썼다. 


‘추억은 철거되지 않아요. 삶은 재개발되지 않아요.’ 

 그렇다. 아직도 나는 그 철거되지 않은 추억 속에 살아있다. 아니, 살고 있다. 부산이라는 광활한 느낌은 아직도 많이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대연동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착각한다. 툭하면 걸어서 낙타깡에 가고, 얼큰하게 취해 새벽녘에야 다시 돌아와 쓰러졌던 곳. 나는 그곳에서 좋은 친구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친구가 되는 법을 배우고, 다시 헤어지는 법도 배웠다. 맛있는 것을 나눠 먹는 법도 배우고, 서로를 돕고 살아가는 법도 배웠다. 간혹 슬픔 앞에서는 마음껏 슬퍼할 줄 아는 법도 배웠다. 지금까지도 나는 대연동의 생각다방 산책극장이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 학교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아주 가끔, 대연동을 지날 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처음의 그곳이 있었던 자리의 저녁 무렵 짙어지는 고요함이다. 노을이 땅으로 번질듯이 내려올 것만 같은 순간, 비좁은 골목은 갑작스런 정적에 잠긴다. 그리고 조금만 기다리면 구수한 밥 냄새와 맛있는 저녁반찬 냄새로 가득해진다. 이윽고 그 고요를 깨뜨리는 우리들의 소리가 있었다. 마치 숨을 꾹 참았다가 내뱉듯이, 우리는 꼭 무언가를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하고 싶다였고 그 마음을 미친 듯이 믿었다. 참 좋았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상상하지 않은 채,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 고마웠다. 


 추억을 더듬다 보면, 지나간 일에 대한 회환이 생길 법도 하지만 적어도 대연동 생각다방 산책극장에서의 일들이라면, 그런 것은 떠오르지 않는다. 가난하고 조금은 어지러운 그러나 어딘가 매혹적이고 그만큼 당당하고 꺼릴 것 없던 시간들은 그 이후에도 다시는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이삿짐 싸는 것을 돕고 서울로 돌아가고 한참 뒤, 이사를 잘 마쳤다고 전갈이 왔다. 칠산동이라고 했다. 모두의 덕이라고도 했다. 내가 포장한 물건들의 포장이 너무 꼼꼼했다고도 웃으며 전해 왔다. 새로움을 여는 모두의 마음 앞에 나도 존재하고 있었다. 나의 추억이 우리의 추억일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연동에서의 에너지와 온전함을 기억하면 무엇이라도, 누구와도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생기는 것만 같다. 

 

 봄눈별 사육장 부산지점 대연동 <생각다방 산책극장>. 하루 종일 머물러 있어도 좋았던 이상한 곳의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는데, 문득 그곳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걱정말아요, 그대가 항상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걱정은 어떻게든 풀려나가게 되어 있었던, 마법 같은 순간들이 여전히 그립기만 하다. 그리고 우리의 단골집 욱일김밥은 지금쯤 어디로 갔을까. 하고 나는 몇몇 그리움 또한 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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