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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요 Sep 20. 2023

‘내’를 구성하는 생각다방 산책극장의 지분

바닥


 마감을 열하루나 넘겼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강제성이 없는 마감이라는 점도 한몫했겠지만 연이어 친구들이 놀러오는 바람에 시간이 없었다고 변명을 할 예정인데 누가 놀려왔는지 알면 그 변명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내가 사는 곳은 전라북도 완주군. 부산에서 한 번 오려면 전주로 버스를 타고 3시간 달린 뒤 시내버스 정류장까지 30분 걸어서 20분마다 한 대씩 있는 버스를 타고 1시간을 더 와야하는 곳이다. 기차를 타면 터미널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걸어오는 시간은 단축된다. 부산역-전주역-시내버스로 이어지는 길고 복잡한 과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 부산에서 친구가 놀러왔다. 생각다방 산책극장에서 만난 연화 씨다. 


 연화 씨는 우리집에 세 번째 놀러왔다. 남의 집을 우리집처럼 살 때까지 합하면 네 번. 나는 우울하고 괴로운 시기와 즐겁고 활력넘치는 시기의 상태가 극단적으로 다른 사람인데 계절에 따라 그런것 같기도 하고, 일이나 인간관계, 운동량 때문에 그 시기가 변하기도 하는데 전체적으로는 왜, 언제 그런지 잘 모르겠다.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연화 씨는 그런 내 좋은 상태와 나쁜 상태를 여러번 같이 겪어낸 친구다. 어떨 때는 같이 꽤 멀리 드라이브도 가고, 산에도 가고, 맛있는 것도 해먹으면서 여행온 기분을 만끽했을 거고, 어떤 때는 종일 집에서 배달음식이나 시켜먹으면서 별다른 일없이 잠이나 자는 나를 옆에서 지켜봤을 거다. 그렇지만 다행히 나는 누가 있으면 조금은 더 기운이 나는 사람이라 멀리서 놀러 온 친구를 옆에 두고 자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평소 혼자있을 때의 우울감보다는 나았던 기억이 난다. 말이라도 한 마디 하고, 같이 뭘 사러 수퍼에라도 간다. 


 생각다방 산책극장이 데려다 준 인연들을 얘기하면서 읽을 연화씨 부끄럽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그이가 생각다방 산책극장으로부터의 인연이기 때문이다. 생각다방 산책극장에 대한 기억을 정리하는 글을 한 편 써보자는 제안을 해준 건형 씨나, 여전히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두 여자(이내, 히요), 해운대에서 산책자의 모닝커피를 팔 수 있도록 처음에 자전거를 빌려주고 칠월부엌이라는 재미있는 실험을 할 수 있게 해주었던 싱싱, 부산에 갈 때마다 재워주는 소라, 소라가 데려와서 지금은 내 마음 속 1인분 곱배기의 사랑 지분을 가지고 있는 이경, 칠월부엌을 할 때 선뜻 시아버지의 집을 내어준 정호, 홍성까지 찾아가서 만나고 놀고 싶은 소혜나, 방황백과사전이라는 말하기 대잔치를 열 수 있게 자리를 내준 산복도로프로잭트의 은수, 가만히 다가오는 듯하지만 따뜻한 손길로 맞아주는 혜정, 다대포의 추억과 고운 마음들을 주고 받았던 고짱, 지금에서야 따로 만나긴 애매하지만 이름만 떠올려도 좋은 서영, 무밍, 영인, 아영 등등. 나의 부산 친구는 거의 대부분 생각다방 산책극장으로부터 나왔다. 심지어 리니, 별 같은 제주 친구도 굳이 따지자면 부산에서 시작된 인연이다. 


 조금 더 과장을 해보자면 ‘나는 직장생활이 어울리지 않는 종류의 사람일지도 몰라’라고 돌아다니며 전문백수, 좋게 말하면 비규정 대안직업인으로 살아간 4년여의 시간은 운좋게도 그 시작이 부산이어서, 생각다방 산책극장을 만나서 가능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해운대에서 자전거 카페를 할 때는 대연동에서 콩을 볶으면서 히요의 지지를 얻었고, 실제로 커피를 팔러 처음 길로 나갈 때는 그 새벽같은 아침에 이내가 와서 노래를 해주었다. 개업축하공연. 칠월부엌을 할 때는 말 할 것도 없고. 그 뒤로 대전 산호여인숙에서 살았던 시간도 부산에서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다방 산책극장은 바닥을, 멜리를 키워주었다(멜리는 서울에서 도망치듯 부산에 내려가서 새로지은 이름이었다. 유명인사도 아니지만 세상은 좁고 어디서 누구와 연결될지 모른다는 걱정때문에, 친구들의 놀림(?)비슷한 걸 받으면서도 유난스럽게 바닥이라는 사실을 철저히 숨겼다. 그래서 그때 부산에서 만난 친구들은 종종 멜리라고 나를 부르기도 한다. 그 사실이 재미있고 좋다). 


 우연찮게도 연화 씨가 다녀간 하루 뒤에 덕래 씨가 놀러왔는데 이제 이 사람들을 어디서 만났는지 따지는 것도 우스울만큼 뒤섞여있다. 덕래 씨는 수년 전 괴산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 때 따로 갔지만 일행이었던 이내 씨가 인사시켜 주었고 그는 자연스럽게 생각다방 산책극장을 찾는 이가 되어 친해졌고, 몇몇 친구들과 부산대 인근에서 동네친구로 살았지만 나는 그이를 대전이나 괴산, 지금의 우리집인 완주에서 만났다. 봄눈별 같은 사람도 부산인지 대전인지 제주인지 헷갈린다. 아마 ‘종족대잔치’라는 이름까지 붙여 다 같이 만나 노는 자리를 만들고 싶을 만큼 어떻게든 연결되어있기 때문일 거다. 취향이든, 사는 환경이든, 친구의 친구로든. 물론 내 부산 친구의 지도는 몇 년전에 멈춰있기 때문에 이 후로 새로이 만난 친구의 수는 거의 없고, 그때의 친구들도 결혼이나 출산으로 식구가 늘어 내가 처음 만났을 때와 다른 모습으로 살기도 한다. 개인의 일이나 관심사가 변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뭐 어떠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게 삶이고, 친구이고, 우리니까. 나 역시 생각다방 산책극장의 두 고양이 폴이, 봄이를 사랑했던 마음을 기억하며 새 식구 가지를 들였다. 우리는 어디서든 언젠가 또 만나게 될 거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때의 행복한 기억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내 몸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 고마운 사람들, 아니 동물식물들 모두 포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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