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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작가 Jun 23. 2021

존재 이유마저 이토록 아름다운 빅 벤

우리는 가만히 서서 한참을

                      



  웨스트민스터 역을 빠져나오자마자 우리는 입이 터억- 벌어지고 말았다. 난데없이 갑자기 우리 앞에 빅벤이 나타난 것이다. 아니, 이게, 어떻게...?!

  사실 우리 둘 다 ‘꼭 빅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력히 있었던 게 아니라서 빅벤이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보지 않았었다. 여행을 준비하다 보면 지도에서 봤을 법도 한데, 어떻게 그렇게 빅벤에게 무심했던지. 우리가 너무 무심하게 군 탓에 화가 난 빅벤이 우리 앞에 나타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빅벤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빅 벤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멀리서 혹은 사진으로만 봤던 빅 벤은 그저 황토색의 커다란 시계탑일 뿐이었다. 크고 높은 시계탑이니까 런던의 랜드마크겠거니 했었다. 빅 벤을 눈앞에 마주하고 나니, 그렇게 생각했던 나 자신을 나무라고 싶어 졌다. 빅 벤은 가까이에서 봤을 때 그 아름다움이 상상을 뛰어넘는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빅 벤도 그렇다.




  높이 96m의,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시계탑이었던 이 시계탑 사면에 아주 세밀하고 화려하게, 그러나 과하지 않고 우아하게, 아름다운 고딕 양식의 조각들이 흐르고 있다. 분명, 흐르고 있다. 위에서부터 차르르 떨어지는 폭포수처럼. 실크의 물결처럼. 흐르고 있었다.


  탑 윗부분에는 4면에 세계에서 가장 큰 자명종 시계가 달려 있는데, 정각, 15분, 40분, 45분마다 종이 울린다. 각각의 종소리는 모두 다른데, 정각의 종소리는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익히 들었던 종소리 멜로디가 바로 이 빅 벤의 정각 종소리다. 도미레솔 솔레미도 미도레솔 솔레미도. 모두 13개의 종이 울리며 멜로디를 내는데, 멜로디가 끝나고 마지막에 울리는 종, 13개의 종 중에 가장 큰 종을 ‘빅 벤’이라고 한다.


런던 어디에서나 시민들이 시간을 알 수 있도록 지어진 빅 벤.


  이 시계탑 이름이 빅 벤이 아니었던가 하면, 정식 명칭은 ‘엘리자베스 타워’지만 전 세계 사람들 모두 ‘빅 벤’이라고 부른다. 진짜 이름을 두고 친한 친구들끼리 부르는 별명처럼 느껴져서 귀여웠다. 빅벤은 1858년에 세워졌는데, 이렇게 높이 시계탑을 지은 이유는 런던 어디에서나 시민들이 시간을 알 수 있도록 높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 존재 이유마저 이토록 아름다운 시계탑이라니.      





  궁전 위의 밤하늘엔 별 몇 개가 총, 총, 총 떠 있었다. 궁전 안에 들어가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시간을 잊어버린 듯, 같은 하늘일 것이다. 두 눈에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빅 벤의 아름다움에 정신이 아득하였다.



살면서 예기치 못한 불행을 마주하는 일은
우리를 얼마나 오랫동안 힘들게 하는지,
예기치 못한 행운을 만끽하는 일은
얼마나 찰나 같은 순간들인지 곱씹으며.
                


  웨스트민스터 역을 오가는 많은 사람들 틈에

  우리는 가만히 서서 한참을

  빅벤을 올려다봤다.                                              





빅벤은 수리 중!

160년을 넘게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었던 빅벤.

노후화로 인해 여러 문제가 생기자, 2017년 8월 21일 정오의 종소리를 마지막으로 4년 동안 수리에 들어갔다. 4면에 부착된 시계를 임시 분해해 청소하고 보수하는 작업뿐만 아니라, 철로 된 지붕의 부식을 막고, 누수도 잡고, 엘리자베스 탑 내부에 엘리베이터도 설치한다고 한다. 시계탑을 수리하는 작업자들의 안전을 위해 종소리도 멈추었다. 코로나19 등의 이유로 타종 재개 시기는 2022년 2분기로 미뤄진 상태라고 한다.   
 
그러나 수리 중이라도 1년에 딱 한 번 빅 벤의 타종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때가 있는데 바로 1월 1일 00시. 신년맞이 행사 때만 타종을 한다고 한다. (이 예산으로 8천만 파운드, 우리나라 돈으로 약 1200억 원이 책정되었다고 한다. 엄청나다...!)


빅 벤의 종소리를 듣고 싶다면!  
https://youtu.be/juT1zsim6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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