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펜트하우스

아르헨티나 바릴로체 1

by 쏭작가



바릴로체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간다. 남미 여행 가이드 북에서 봤던 바릴로체에 드디어 도착한 순간이었다. 택시를 타고 달려가면서도 자꾸만 생경하게 느껴졌다. 꿈은 아닐까? 정말 내가 바릴로체에 온 걸까? 달리는 택시의 창문을 조금 내리니 따뜻하고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게 머리칼을 흐트러뜨린다. 바람의 온도를 보니 정말 바릴로체에 온 게 맞구나, 싶어 졌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곳, 따뜻하고 시원한 곳!


이곳은 남미의 스위스, 바릴로체다.


바릴로체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남서쪽, 칠레 국경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안데스 산맥에 자리 잡은 이곳은 곳곳에 푸르고 투명한 호수가 많아 '호수 지방'으로 불린다고 한다. 특히 월트 디즈니 '밤비'의 배경이 된 곳이라 하니,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바릴로체가 얼마나 평화롭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동네인가를 상상할 수 있다. 특히 '바릴로체'는 '남미의 스위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푸른 호수와 높은 산이 품고 있는 이곳에 스위스 이민자들이 처음 자리 잡았다. 스위스 양식의 오두막집들이 늘어선 골목을 거닐며 맛있는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을 잔뜩 먹는 그 기분이란! 여기가 천국이 아니고 대체 어디란 말인가?

바릴로체가 천국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들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날씨다. 년 평균 기온 14도. 여름에는 최고의 피서지, 겨울에는 최고의 스키 휴양지로 변신한다. 우리가 갔을 땐 3월. 아르헨티나는 여름이 끝나 가을로 가는 시기였고, 평균 기온 18도. 한밤 중에도 춥지 않은 최고의 날씨였다.



엘리베이터가 한 층 한 층 올라갈수록 우리의 심장도 더욱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오기 전부터 숱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던 숙소에 올라가는 중이었다. 바릴로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곳. 워낙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아 늘 예약이 모두 차 있는 곳. 운이 좋아야 묵을 수 있는 곳. 이름은 ‘펜트하우스 1004’인 이곳은 신혼여행 일정 중에서 유일하게 호텔이 아닌 호스텔(게스트하우스) 형식의 숙소였다. 10층 4호라서 펜트하우스 1004인 이곳. 이름마저 운명적이다. 우리는 운이 좋게도 2인실이 딱 하나 남아 있어 예약에 성공했다. 이게 뭐라고, 기분만큼은 바릴로체에서 딱 하나 남은 펜트하우스를 예약한 기분이었다.






나는 여행할 때 비싼 호텔에 묵어본 적이 없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사정이지만, 사정이 넉넉할 때에도 이상하게 1박에 20만 원 이상하는 내야 하는 숙소는 돈이 아까웠다. 10년 전엔 나의 이런 가치관에 맞는 숙소를 찾으려면 좁은 비즈니스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 작은 원룸 같은 곳이었는데 에어비앤비가 등장한 이후로는 에어비앤비가 내게 아주 큰 즐거움을 주고 있다. 호텔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넓은 집, 게다가 현지인의 집에 '사는 것처럼' 묵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언젠가 이 신혼여행기가 끝나면 에어비앤비 여행기를 써봐야겠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에서는 에어비앤비를 구하기가 어려웠고, 사실 무섭기도 했다. 혹시 우리가 위험에 처했거나 도움이 필요할 일이 있을 때 주변에 당장 도움을 요청할 누군가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호텔과 게스트하우스로만 숙소를 잡았다. 그리고 (가끔 까먹을 때도 있는데) 명색이 이건 신혼여행이었다.


몇몇 친구들은 나의 이런 숙소 선택(?)에 경악했다.

'신혼여행인데 게스트하우스??? 게스트하우스에서 잠을 잔다고???'

뭐, 솔직히 말하면 난들 하와이에 있는 최고급 리조트 같은 곳에 왜 안 가보고 싶을까. 하지만 그런 곳은 1박에 100만 원이 넘는다는데! 100만 원이면 태국 여행을 한 번 더 갔다 올 수 있는데! 내가 이렇게 말하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그러니까 신혼여행으로 가는 거지! 평생에 이런 데 언제 와서 또 자본다고?'

맞는 말이다. 그래서 신혼여행은 더 꿈같은 여행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나는 그 달콤한 꿈을 '지구 반대편'에 몽땅 쏟아부었고, 지금은 '죽기 전에 내가 가 볼 수 있을까' 싶은 도시에, 그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숙소에, 딱 하나밖에 없다는 2인실에 체크인을 했으니, 세상 그 어떤 것도 부러울 게 없었다.



우리의 신혼여행 펜트하우스
우리가 묶게 된 2인실
펜트하우스 2인실의 호수 뷰! :)
천국의 햇빛처럼 쏟아지던 테라스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을과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창밖으로 펼쳐져 있었다. 공용 화장실 창문은 아예 호수 쪽으로 나 있어서 호수에 둥둥 떠 있는 기분이었다. 드디어, 이 호스텔의 대망의 하이라이트...! 거실 바깥의 테라스로 나가보았다. 야트막한 능선에 호수를 바라보며 서 있는 집들,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호수의 물결... 이것이 호스텔의 뷰라니! 따뜻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하늘마저 청명했다. 가히 바릴로체 최고의 뷰라고 할만했다.


바릴로체가 천국이라면, 우리는 천국의 펜트하우스에 와 있었다.


나우엘 우아피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바릴로체
춥지도 덥지도 않은 천국의 날씨였다







어둠이 내린 마을 위로 하늘엔 별이 총- 총-


"오빠, 그거 알아? 하늘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별이 더 많이 보인다?"

"에이, 거짓말."

"진짜야! 눈을 크게 뜨고 한 곳을 계-속 쳐다봐. 그럼 안 보이던 별이 나타나."


우리는 그렇게 한동안 두 눈을 크-게 뜨고

밤하늘의 한 곳을 응시했다.


"어, 보인다! 진짜 별이 나타나네?!"

"그치? 내 말이 맞지?"


어쩐지 아이처럼 의기양양 올라가는 목소리.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해맑의 눈동자에 더 많은 별이 뜨도록

하늘을 올려다보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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