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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작가 Jun 08. 2021

언제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생은 망했구나

 



 ‘언제 어떻게 딱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도 참 많이 했던 질문이었다. 내가 이 질문을 했을 때는 착해서, 잘 챙겨줘서, 이만한 사람은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아서, 좋은 사람이라서 등등의 대답을 들었다. 그래, 당연히 이런 사람과 결혼을 해야지. 하지만 착하고, 잘 챙겨주고, 이만한 사람은 없을 것 같은 사람이 이제 있을까 싶었다. 숫자 초 3과 0의 생일 촛불을 불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촛불을 불고 이틀이 지나자 해맑이 나타났다. 친구네 집에서 처음 보았는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해맑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부끄러워 얼굴을 돌렸다. 보나 마나 얼굴이 새빨개졌을 게 분명했다. 내가 왜 이러지, 싶었다. 그렇게 친구네 커플과 ‘인생게임’이란 보드게임을 함께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해맑과 내가 진짜 인생게임을 함께할 줄은 몰랐다.


  일주일 뒤, 두 번째 만나서 인생게임을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버스정류장에서 해맑은 내게 전시회 티켓 두 장을 건네주었다. 다음 주까진데 자기는 못 갈 것 같다는 말을 붙였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전이었다. 마침 가고 싶었던 전시였다. 전시회 가는 걸 좋아하는 나는, 해맑이 내게 준 첫 선물이 전시회 티켓인 게 기뻤다. 어쩌면 이 사람도 전시회를 좋아하는 사람이겠구나. 내셔널지오그래픽 전을 보고 해맑에게 줄 선물을 샀다. 우주비행사가 우주에서 떠다니는 듯한 홀로그램 엽서였다. 나중에 들었는데 랜티큘러 엽서를 선물로 받고 해맑은, ‘아직도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싶어 귀여웠다고 한다.      




  처음으로 해맑과 단 둘이 만나기로 한 날, 우리는 망원동에서 국수를 먹었다. 조금 늦은 저녁시간이었고 배가 엄청나게 고팠다. 평소에 정말 좋아하는 고기국수인데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국수를 먹는 둥 마는 둥, 세 젓가락에 배가 불러 숟가락을 놓았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면 친한 친구들은 숨이 넘어가도록 웃었다. ‘네가? 먹는 걸 좋아하는 네가?!’ 얼마 전에 해맑과 이 때의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그땐 이렇게 많이 먹는 줄 몰랐지?     


라고 하자 해맑은,     


  -잘 안 먹는 사람인 줄 알았어     


라고 했다. 지금은 해맑 앞에서 국수 한 그릇쯤이야 뚝딱하고도 남지만, 그날은 정말 입이 벌어지지도 않았다. 약속한 한 시간 전부터 괜히 나가기 싫고,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내리기 싫고, 만나기로 한 장소까지 다 왔는데도 도망가고 싶고, 먹다가 체할 것 같고, 숨을 쉬는지 안 쉬는지도 모를 것 같은 기분을 정말 오랜만에 느꼈다.      


  그 뒤로 우리는 매일매일 대화를 했다. 일어났는지, 밥은 먹었는지, 출근은 잘했는지, 회의는 잘했는지, 퇴근은 했는지, 저녁은 뭘 먹었는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매일매일 비슷한 이야기를 해도 매일매일 즐거웠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잘 받아주었다. 그러다 하루는 내가 이런 말을 꺼냈다.


  -나아아중에 내가 할머니가 됐을 때쯤엔 우주여행도 가능하겠죠? 우주여행 가서 지구를 내려다보고 싶어요. 진짜 예쁠 것 같은데.      


  -나중엔 쿠팡에서 우주여행 땡처리 특가! 이런 게 나오지 않을까? 그럼 내가 보내줘야겠다~ 그리고 또 가고 싶은 여행은 없어?     


  -사실 또 있긴 한데...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뭔데 뭔데?     


  -언젠가 북극에 가서 북극곰을 만나고 싶어요. 같이 코카콜라 마실 거예요!     


  -이건 나도 같이 가고 싶다~ 쏭이 북극곰이랑 같이 콜라 마시는 거 보고 싶어.     




  이런 사람이라면 결혼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정말로. 나의 허무맹랑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소원을 듣고도 ‘그게 뭐야’라고 하지 않고, 같이 가겠다는 사람. 나중에는 여행하고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고 하니,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후원해주고 싶다고 하는 사람.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평생을 함께해도 괜찮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감이 확신으로 바뀌게 된 해맑의 말이 하나 있었다. 우리가 만나기로 하고, 나는 친구들에게 해맑을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해맑은 나를 어떻게 소개했나 궁금해져서 물어보니 ‘마음의 온도가 비슷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고 했다. 이런 사람이랑 결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너 없인 하루도 못 살겠어’도 아니었고 ‘잠시라도 떨어져 있기 싫어’도 아니었고 ‘이 사람이랑 결혼 안 하면 차라리 죽어버릴 거야’이런 마음은 더더욱 아니었다. 대신에 우리는, ‘이번 생에 결혼은 망했다’고 생각했을 때 만났고 떨어져 있어도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관계였다. 해맑은 ‘이 사람을 놓치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고, 나는 ‘내가 또 이렇게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만난 지 딱 1년째 되던 달에

  결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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