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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작가 Jun 09. 2021

신혼여행인데 떨어져서 앉아야 된다구요?

덕분에 몰래 본 LALA LAND


    



  출발시간이 지나도록 비행기는 계류장에서 요지부동이었다. 바퀴에 문제가 생겨 수리 중이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안내방송만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바퀴가 고장이면 이착륙할 때 큰일 나는 건 아닌가, 비행기는 이착륙할 때가 제일 위험하다던데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에 번지기도 전에 나는 곯아떨어졌다. 짐을 싸느라 3시간밖에 못 잔 탓이었다.


  한참을 잔 것 같은데 비행기는 아직도 이륙을 못 하고 멈춰있었다. 얼추 두 시간이 흐른 시간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해맑은 생각보다 말똥말똥,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는 중이었다. 내 옆자리의 커플은 여태 꽁냥꽁냥. 이들도 신혼여행을 가는 중이려나. 그러기엔 둘 다 너무 앳된 얼굴이라 그냥 여행을 가는 건가 넘겨짚어 본다. 그렇다면 왠지 더 부러운 것. 우리는  체크인을 미리 해두지 않아서, 각각 떨어진 자리에 앉아야만 했다.      


  -저희 신혼여행 가는 건데... 그래도 어떻게 안 될까요?     


  붙어 있는 자리가 없다는 공항 직원에게 다시 한번 되물었다. 물속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하지 않은가. 신혼여행인데, 심지어 12시간이나 가야 하는데, 따로 떨어져서 가야 하다니...      


  -풀 부킹이라 저희도 어쩔 수가 없네요. 그나마 가장 가까운 좌석으로 붙여드릴게요. 여기가 좋겠네요. 통로 맞은편 자리예요.      


  좌석이 지그재그로 되어 있는 터라, 얼굴을 맞대고 볼 수도 없는 자리. 하지만 달리 더 나은 자리는 없어 보였다. 같이 앉아서 보려고 아이패드에 드라마 16편을 다 담아왔는데. 비행기 꿀템들이랑 과자랑 사탕도 다 챙겨 왔는데... 기필코 돌아오는 비행기는 웹 체크인을 해 두리라, 부득부득 이를 갈았다. 마침내 비행기가 이륙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고, 나는 다시 또 곯아떨어졌다.                








  자도 자도 끝이 없는 비행. 먹고, 자고, 또 먹어도 여전히 비행시간은 한참 남았다. 시속 800킬로가 넘는 속도로 몇 시간을 날아도 똑같이 러시아 위라니. 러시아는 대체 얼마나 넓은 걸까. 뒤를 돌아 해맑을 보니, 여전히 말똥말똥한 눈으로 영화를 보는 중이었다. 12시간의 비행은 처음인데도 나보다도 더 잘 버티는 느낌이었다. 비행기에서 시간을 잘 보내는 방법은 영화를 보거나, 가이드북을 보는 것. 여행을 떠나기 전에 가이드북을 잘 봐 두는 것도 좋지만, 비행하는 동안 봐 두는 것도 좋다. 도착해서도 기억이 잘 날 뿐만 아니라, 찬찬히 더 집중해서 보기에도 좋다. 한참 런던 가이드북을 본 뒤에도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켜고 이번엔 영화 리스트를 살펴봤다. 최신영화에 LALA LAND가 있었다. 이건 해맑이랑 같이 보기로 한 영화이긴 한데... 썸 타는 사이는 이 영화 같이 보지 말라고 하던데...      


  [PLAY]

 

  LALA LAND를 본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인생영화가 바뀌었다, 이건 꼭 봐야 하는 영화다, 이걸 아직도 안 봤냐,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해피엔딩이 아니라서 싫었다, 결말이 그럴 줄 알았다, 왜 인생영화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체 어떤 영화길래 이런 극과 극의 반응이 나오는 걸까 싶어 기대하면서 봤다. 과연 나는 어떤 반응에 속할까.      












  영화는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시작한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과 보기만 해도 뜨거울 것 같은 아스팔트와 그 위를 꼼짝도 않고 서 있는 차들. 너도나도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리다, 이내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이 도로 위로 나와 춤을 춘다. 뜨겁고 경쾌한 뮤지컬 무대가 된다.


  배우를 꿈꾸는 카페 아르바이트생 미아와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은 세바스찬. 누구나 꿈을 꾸는 도시, LA에서 이들은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사랑하게 된다. 그래, 이러한 스토리까지는 평범할 수 있지. 두 사람이 처음 호감을 확인하게 되는 달밤, 탭댄스 씬은 역시 아름다웠다. 그래, 여기까지도 예쁘고 아름다운 영화일 수 있지. 하지만 ‘인생영화’라고 꼽는 사람들은 어느 장면에서 그런 감명을 받았던 걸까. 미아와 세바스찬은 어느새 갈등에 놓였다.


  뜻밖의 성공궤도에 오른 세바스찬과 자꾸만 일이 풀리지 않는 미아. 미아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올린 공연은 폭망 했고, 세바스찬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세바스찬과 헤어지고, 미아는 LA를 떠나 고향으로 내려가 버린다. 하지만 세바스찬의 도움으로 미아는 오디션을 보러 파리로 가게 된다. 아니 그냥 좀 아름답게 사랑할 순 없는 걸까. 꼭 이렇게 이별과 시련이 있어야만 하는 걸까. 마음이 아프다. 그래, 이건 영화니까. 여기까진 좋아. 하지만 인생영화는 아닌데...


  파리로 간 미아는 배우로서 크게 성공하게 되고, 몇 년이 지나 세바스찬과 LA에서 다시 재회하게 된다. 영화는 점점 엔딩 향해 흘러가고, 영화의 마지막 10분, 세바스찬의 회상 씬이 나오기 전까지 나는 이 영화가 내 인생영화 중에 하나로 꼽힐 줄은 몰랐다. 세바스찬의 회상 씬, 시간이 거꾸로 돌아, 미아와 함께 했어야만 했던 모든 순간들이 환상처럼 흘러가는 그 장면이 없었더라면, 이 영화는 내 인생영화가 아니었을 것이다. 영화의 엔딩은 이렇게 끝났어야만 했고, 사실 몇 번의 연애를 겪어본 누구에게나 이런 엔딩 하나쯤은 있는 것이다. 해피엔딩이 아닌, 새드엔딩들이. 자세한 스토리는 혹시라도 이 영화를 못 본 사람들을 위해 남겨두기로 한다. 꼭 한 번쯤은 보았으면 좋겠다. 이 영화가 당신에게 인생영화일지 아닐지.      


  영화의 여운이 가라앉을 때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해맑이랑 같이 보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점. 두 번째는 신혼여행을 떠나는 비행기에서 볼 영화는 아니었다는 점. 어렸을 때부터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비행기를 누구와 함께 타게 될지 정말 궁금했었다. 이 비행기를 함께 타고 갈 그는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많이도 궁금했다. 정말로 월하노인의 빨간 실 같은 게 있어서 부부의 연이 정해져 있는 거라면, 더는 연애를 안 해도 좋으니 빨리 만났으면 싶을 때도 있었다. 때때로 이 사람하고 지구 반대편으로 가게 될까, 막연히 기대했던 인연들이 세바스찬의 회상 씬처럼 스쳤다. 눈을 떠 뒤돌아보니,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비행기에는 해맑이 타고 있다.      


  어설프고 어린 연애를 할 때 만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좋은 사람을 재미없는 사람이라 잘못 보던 때에 만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어리석게 자존심을 내세우던 때에 만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미래가 막연하던 때에 만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라 다행이다.      







  해맑과 지구 반대편에 가게 되어,
참 다행이다.





비행기를 탈 땐 꼭! 웹 체크인을 하자. 두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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