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쏭작가 Aug 15. 2021

너랑 다신 여행 안 가고 싶을 것 같아

신혼여행에서 남편이 폭탄 발언을 했다






  택시는 호텔 앞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으로 들어올 때까지 우린 별 말이 없었다. 싸움의 첫마디는 어떻게 시작되는 걸까. 화살처럼 날아가는 첫마디를 쏘아 올리지 않으면 시작되지 않는 걸까. 아니다, 그건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불만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마음속에 쌓아두면 내 안에서 곪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니라 생각했던 것들이 속에서 곪아 터지고 난 뒤에는 걷잡을 수 없는 싸움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니,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들은 그때 그때 대화로 푸는 것이 낫다. 말하고 나면 별 것 아닌 일이 되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때는 별 것 아니라 생각했던 것이 생각보다 커져버렸다. 우리는 들어온 그대로 침대에 앉아서 날이 서 버렸다.


  "택시 탈 때도 가만히 있고. 주소 말해줄 때도 가만히 있고. 말이 안 통할 때도 가만히 있고. 오빤 진짜 가만히 있네."


  "내가 뭘 가만히 있어."


  "아니, 택시도 좀 잡고, 주소도 좀 미리 챙기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계속 나만 하잖아."


  "안 하려는 게 아니야. 네가 나보다 빨라서 그렇지."


  "아니, 아까 택시에서도 내가 주소를 말하고 있고, 아저씨가 잘 못 알아듣는 것 같으면, 옆에서 오빠가 구글맵 정도는 켜 줄 수 있잖아. 근데 가만히 보고만 있고, 내가 막 정신없이 구글맵 얘기하니까 그제야 켜 주고."


  "미안해."


  "뭐 얘기할 때도, 주문할 때도 다 내가 얘기하고. 오빤 가만히 있잖아."


  "그건 니가 얘길 더 잘하니까 그렇지."


  "무슨 소리야. 나도 영어 못 해. 못 하는데 그냥 하는 거야. 그리고 여긴 스페인어 쓰잖아. 나도 스페인어는 하나도 모른단 말이야. 근데 어떻게든 막 해보려고 하는 건데 오빤 한마디도 안 하잖아."


  쏟아 내다보니 밑바닥까지 다 쏟아지는 말들. 미안하다고 말하던 해맑의 얼굴에도 표정이 사라졌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나면 마지막에 나오는 말들은 격해진 감정들이다. 감정들이 상대방을 윽박지르고, 때리고, 상처를 만든다. 결국엔 나도 그렇게 해맑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다.


  "나도 잘하고 싶어. 누가 잘 못 하고 싶겠어. 근데 항상 너는 나보다 빨라. 당연하지. 너는 나보다 여행을 더 많이 갔다 왔으니까. 근데 나는 지금까지 여행도 안 다녀봤고, 이렇게 멀리 오는 여행은 처음이란 말이야. 그러니까 모를 수밖에 없지. 아까 택시 같은 상황이 생겨도,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단 말이야."


  미안하다던 해맑이 말한 진짜 속마음. 나는 해맑의 속마음까지는 배려하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잘 모르고 못하면 니가 알려주면 되잖아. 근데 왜 그걸로 화를 내는 거야?"


  맞는 말이었다. 할 말이 없었다. 순간, 부끄럽고 미안해졌다. 나는 또 해맑에게 뾰족하게 굴었구나. 이런 나를 잘 아는 친구 N은 ‘오빠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대해 봐. 친구는 다 잘 챙겨주잖아’하고 조언했다. 그러게. 친구들한테는 한없이 잘 챙겨주면서 왜 해맑한텐 자꾸 뾰족하게 굴게 될까.


  "여행 다닐 때마다 니가 이러면, 너랑 여행 안 가고 싶을 것 같아."


  그 말에, 왈칵 무너져 내렸다. 이상하게 연애할 때는 아무리 싸워도 눈물 한 번 흘린 적 없는데, 해맑이랑은 싸우다 눈물을 흘리는 일이 많다. 불리해서 울어버리는 것도 아니고, 이기려고 울어버리는 것도 아닌데, 울음은 댐이 무너져 내리듯이 왈칵 터진다. 늘.




  해맑의 말이 맞는 말이다. 모르고 못하면 알려주면 되는데... 사실은 나도 내심 오빠가 더 잘 하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오빠가 길도 더 잘 찾고, 오빠가 말도 더 잘 하고, 오빠가 뭐든 척척 다 잘 해줬으면 하는 마음. 언젠가 엄마 아빠한테 투정부리듯이 얘기하니, 오히려 엄마 아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잘 하는 사람이 하면 되지. 그렇게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는 거야."






이렇게 한 번에 깨닫고, 한 번에 끝나는 싸움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번 불만이었던 것은 이해하고 넘어가도 또 불만의 싹이 움트고 만다.

우리는 이 싸움을 그 이후로 1년 동안 계속 해오다 얼마 전 끝이 났다.

결론은, 더 잘 하는 사람이 하면 된다.


함께 인생을 산다는 건,

길을 찾고 소통해야하는 일보다 훨씬 더 어렵고 많은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오빠랑만 싸우면 자꾸 눈물이 나.
내가 너무 못된 사람이라 그런 가 봐.
오빠가 나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이라서
미안해서 자꾸 눈물이 나나 봐.










이전 12화 화려한 부에노스아이레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