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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만성 Sep 18. 2023

30년 신춘문예 소설당선 도전기

04-소떼의 반란:대학신문 문학상에 당선되어 첫 당선소감을 쓰다

  대학시절을 추억하면 매캐한 최루탄 냄새와 담배연기가 먼저 떠오른다. 전남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신문방송학과는 사회참여 활동, 소위 데모에 앞장서는 학과였다. 신입생 만남의 날에 나는 과 노래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선배 중 한 명이 나와 팔을 높이 치켜들고 주먹을 쥔 채 절도 있게 휘두르며 노래를 불렀다. 가사가 선명하게 다가왔다.     

  

  '말하라! 두 눈이 가리우고 손발이 묶여버려도, 혀는 잘리어서 입으로 말 못 해도 몸뚱이로 말하라. 이 땅에서 들리는 민중의 함성, 바람 따라 자유가 뚜벅뚜벅 걸어서 돌아오는 날까지. 말하라, 말하라, 몸뚱이로 말하라.'


  언론인을 꿈꾸는 젊은이의 가슴을 펄떡이게 만드는 노래였다. 우리는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88 꿈나무로 불렸다. 그러나 88학번의 캠퍼스에는 학문과 낭만보다는 최루탄과 화염병이 앞섰다. 87년 6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되었으나 김대중, 김영삼의 분열로 전두환군사정권은 보통사람을 자처하는 노태우 군사정권으로 이어졌다. 언론은 제 할 말을 다하지 못했고, 87년 6.10 시민혁명은 좌절된 것처럼 보였다. 몸뚱이로 말하기 위해 우리는 더욱 자주 뭉쳤고 거리로 나섰다.

  

  자연스럽게 반란을 꿈꾸는 분위기였다. 교실에서 학문을 논하고, 연애에 열을 올리고, 출세를 위해 공부에 전념하는 시절이 아니었다. 1학년 남학생을 대상으로 병영소집교육이 실시되는 것에 반대하고, 8.15 남북학생회담을 열겠다고 판문점을 향해 상경하던 시절이었다. 

 

  반란은 자연스럽게 역설적인 단어로 각인되었다. 반란을 꿈꾸지 않는 청춘은 죽은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대학생이 되면서 나의 소설 쓰기는 멈춰 섰다. 신방과에서 배우는 기사문장과 소설의 문장이 충돌했다. 모든 묘사를 뺀 육하원칙의 기사 문장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묘사가 필요하고, 비유가 필요하고 은유가 필요한 문장을 선호한 나는 번번이 취재보도 과목의 리포트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기사에는 기자의 주장이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사실만 나열하는 기사문장은 죽은 문장처럼 보였다. 더욱이 사실을 사실대로도 보도하지 못하는 언론들도 많았다. 신방과를 선택한 나의 결정이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돌파구가 필요했고 나는 국문과의 커리큘럼을 기웃거렸다. 소설을 통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막연하게 가졌다.

  

  국문과의 현대소설의 이해, 소설창작론, 문장실습 등의 과목을 수강하면서 나는 어렵게 소설을 써나갈 수 있었다. 반란이 언제나 머릿속에서 꿈틀거렸다. 어떤 반란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나는 화두를 붙잡고 소설을 통해 이 혼란스러운 사회에 쾅, 하고 한 방 터트리고 싶었다. 

  

  그때 집에서 키우던 소가 의식의 바닥에서 떠올랐다. 전남대학교 정문 로터리에 있는 우골탑 밑을 지날 때였다. 전남대학교는 88년 당시, 전남북 농촌지역에서 진학한 학생들이 많았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에 대학생이 한 명 생긴다는 것은 소를 팔아야만 가능한 시절이었다. 등록금과 기숙사나 자취비용, 그리고 생활비까지. 가난한 농가의 소득으로는 버거운 일이었다. 우골탑은 소 뼈 모양의 구조물이 엇대어 탑을 이루고 맨 위에 전남대의 상징인 봉황새가 자리 잡고 있는 조형물이었다. 그 생김새 때문에 용봉탑이라는 정식명칭보다는 우골탑으로 불렸다. 우리 집은 소를 팔지는 않았지만 대학생활 내내 한 번도 용돈이 풍족한 적은 없었다. 가난하기에 열정은 배가 되었다. 시선이 더 극렬하게 사회의 부조리를 향해 열린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소는 농촌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존재였다. 기계화가 이뤄지지 않은 농촌의 밭갈이, 논갈이는 쟁기질을 할 수 있는 길들여진 소가 없이는 불가능했다. 쟁기질을 얌전하게 해낼 소는 쟁기질 을 할 수 없는 소 값의 배가 넘었다. 소가 특별히 야생적이지 않지만 쟁기질을 하려면 소는 코뚜레에 코가 뀌고, 멍에를 메고 수없이 많은 매질에 길들여져야만 했다. 최루탄과 화염병이 대치하던 그 시절에 나는 성실하게 나라님들을 믿고 부지런히 일하는 우리 부모세대에게서 소의 모습을 보았다. 어쩌면 길들여진 소의 반란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소떼의 반란]은 고향마을을 배경으로 삼고,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소 떼가 갑자기 마을을 습격하는 상황을 그렸다. 사람들에게 길들여져 평생을 멍에를 진 채 온순하기만 했던 소가 왜 난폭하게 변해야만 했을까? 그러나 반란을 일으킨 소 떼는 결국 경찰의 총에 모두 사살당한다. 뇌에 문제가 생긴 소라 하여 도살하지도 못하고 불태워진다. 9마리의 소떼가 타는 냄새가 마을에 진동했다. 소떼가 사살당한 후 주인공 소년은 집에서 키우던 쟁기질 잘하는 소를 밤에 외양간에서 끌고 나온다. 그리고 소떼가 출몰한 숲을 향해 고삐와 코투레를 끊고 좇아버린다. 소설은 거기서 끝난다. 

 

   가장 단순한 구성을 선택했다. 발단-전개-위기-최고조-결말의 순서대로 소설을 써나갔다. 5월 대학신문사에서 주최하는 5월 문학상에 투고했다. 그리고 당선. 그 신문을 보관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을 수 없었다. 상금으로 50만 원을 받았는데 친구들에게 막걸리와 제육볶음을 넉넉하게 사고 나자 수중에는 한 푼도 없었다. 어쩌면 나는 소설가가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가졌다. 당선소감을 쓰면서 실제로 내가 그렇게 썼는지 확실하지 않지만(당선작이 실렸던 신문이 사라졌기 때문에 확인할 길이 없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강렬한 문구가 있다. 


 ‘너희들 이제 다 죽었어. 나 소설 쓴다구!’ 


  다 죽일 너희들이 누구였을까? 소설로 나는 세상의 변화를 추동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일까? 스무 살의 청년은 반란이 들어간 제목의 소설 한 편으로 자신감 뿜뿜, 반란의 수괴로 등극할 수 있을 거라고 기고만장했다. 펜이 칼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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