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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만성 Oct 12. 2023

30년 신춘문예 소설당선 도전기

06. 종이돈 하나만 주시오 : 인물을 고민하다.

  유니텔 문학동호회는 직장인으로서 소설을 쓰게 하는 나의 동아줄이었다. 바삐 돌아가는 회사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유니텔에 접속하면 가슴이 뛰었다. 매일  열심히 쓰는 사람들의 열정이 나를 자극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조바심만 앞설 뿐 섣불리 소설을 쓰지 못했다. 마음은 있으나 굳어진 머리는 창작모드로 돌아가지 않았다. 술 마시는 시간과 동료들과 어울려 소소한 오락거리에 빠지는 시간이 늘었다.  

  

  1997년 IMF위기 속에서 수많은 선배들이 조기 퇴직에 내몰렸다. 자리가 빈만큼 일이 많아졌고, 업무강도도 세졌다. 그때서야 눈이 제대로 떠졌다. 풍요와 안정이 영원할 수만은 없다는 현실이 자각되었다. 매뉴얼대로만 일을 한다는 것의 안이함이 얼마나 무가치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매뉴얼은 최소한이었다. 수많은 고객들을 상대로 상품을 맞춤으로 설계하고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을 재정컨설팅을 하는 것은 그냥 뚝딱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현장에 나가서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FC(파이낸셜 컨설턴트)가 겪을 수 있는 수많은 경우의 수에 대해 예상하고 거기에 맞는 해결안을 만드는 일이 내게 주어진 업무였다. 생각하지 않고, 연구하지 않으면 쉽게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보험업의 가치가 마음에 들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남겨진 가족을 경제적으로 지킬 수 있는 상품이 보험이었다. ‘나 죽으면 무슨 소용이야’로 대변되는 정서가 팽배한 우리나라의 보험시장에서 어느 날 어린 자녀를 두고 가장이 사라져 버린 가족사진을 PPT에서 재현하는 일은 가치가 있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녀를 둔 가장들은 기꺼이 자기 수입의 5~8% 정도를 보험에 가입함으로 만약을 준비했다.

  일에 가치를 느끼면서 나는 또 소설과 멀어졌다. 어쩌면 소설을 생각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몰입하며 일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에 이상한 사람이 한 명 나타났다. 그는 경비원의 눈을 피해 슬쩍 들어와 직급이 낮은 사원에게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며 손을 무조건 내밀었다. 당황하고 놀란 여직원들 중심으로 때론 동전을, 때론 천 원짜리 지폐를 그의 손에 얹어주곤 했다. 그 사람의 행색은 나이가 들어 보이는 노인처럼도 보였고, 어떻게 보면 행색만 초라할 뿐 젊은 사람 같기도 했다. 그는 영악하게도 한 달에 1번 정도만 출현했다. 직원들은 그의 출현을 반기지 않으면서도 그가 나타날 때는 적선을 하는 것이 예의 인양 그의 구걸에 호응했다.

  보험회사에서 직원들이 행려구걸자를 박대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돕는다는 보험의 정신에 압도당한 무의식의 발로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출현에 나의 잠들었던 창작의 뮤즈가 깨어났다. 나는 이틀 만에 [종이돈 하나만 주시오]라는 단편소설의 초고를 썼다. 유니텔 문학동호회에서 소설동인이 되기 위해 고민만 하던 나에게는 단비 같은 소설이었다.

  

  소설 속 주인공은 노인이었다. 그는 거지행색을 하고 지역에서 제일 잘 나가는 기업의 사무실을 찾아가 꼭 나이 어린 직원에게 첫 구걸을 했다. 그는 손을 옹그려 모으고 작은 목소리지만 상대가 알아들을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종이돈 하나만 주시오.”

  한 푼 줍쇼가 아니었다. 그는 종이돈이라는 구체적 금액을 요청했다. 상대가 당황해서 그 당황함을 피해 가기 위해서라도 지갑에서 절로 종이돈 하나를 꺼내는 요술을 그가 부렸다. 한 번 두 번 그렇게 당하던 직원들은 언제부터인가 그를 일부러 피했다. 그가 나타나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난다거나 오지 않는 전화통을 붙들고 통화를 하는 척했다. 그는 몇 번 종이돈 하나만 주시오라고 읊조리다가 다른 직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이미 그의 수법을 눈치챈 직원들 역시 그를 효과적으로 따돌리는 법을 알고 있었다. 소설 속의 나 ‘김대리’는 그에게 누구도 주지 않았던 종이돈 천 원이 아닌 만원 짜리를 그의 옹그린 손에 팔랑 떨어뜨린다. 그리고 그의 시선과 행동을 관찰한다. 직원들이 김대리의 행동에 한편으론 놀라고 한편으론 멸시의 눈길을 보낸다. 천 원 짜리도 아니고 만 원짜리 구제라니... 앞으로 노인의 출현이 더 빈번할 것을 우려한다.

  우려를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1달의 출현기간을 무시하고 노인은 더 이른 시기에 사무실에 출현한다. 그때는 아무도 노인을 상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비를 불러 노인을 끌고 나가게 한다. 노인은 끌려 나가지 않고 버티다가 그만 바지에 똥을 싸고 만다. 바지에 똥을 싸버린 노인은 그때부터 철퍼덕 바닥에 퍼질러 앉아 울음을 터드린다. 노인을 쫓아내려고 달려온 경비와 직원들이 낭패 어린 모습으로 노인을 쳐다본다. 노인은 울음을 터트리면서도 손을 옹그리고 종이돈 하나만 주시오라고 읊조린다. 여기저기서 직원들이 종이돈을 지갑에서 꺼내 노인의 손에 쥐어준다. 노인은 울음을 그치고 직원들이 적선한 종이돈을 움켜쥔 채로 느릿느릿 사무실을 나간다.  

 

   나는 이 소설에서 종이돈을 요구하다가 똥을 싸는 노인이란 인물을 창조했다. 그 인물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처음엔 인간의 양면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구걸하는 이와 적선하는 이의 심리를 내밀하게 다뤄보고 싶었다. 김대리가 직원들이 쥐어준 종이돈을 들고나가는 똥을 싼 노인의 뒤를 따라 나간다. 사무실 밖을 나간 노인의 걸음걸이는 거침없이 빠르다. 김대리는 노인을 사람들 사이에서 놓쳐버린다. 그때 어디선가 목탁소리가 들려온다. 노방시주를 하는 스님이 시주함을 앞에 두고 백팔배를 이어가고 있다. 지나던 행인들이 시주함에 돈을 넣고 간다. 김대리는 스님의 백팔배를 보면서 넋 나간 사람처럼 서있다. 비가 쏟아진다. 스님이 백팔배를 멈추고 시주함을 들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러나 정장 김대리는 비가 쏟아지는 광장의 한 복판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비를 맞고 우두커니 서 있다. 소설은 그렇게 끝난다.

 

  [종이돈 하나만 주시오]는 유니텔 문학동회의 소설동인작품으로 선정되었다. 동인지에도 작품이 실리고 나는 소설의 끈을 놓지 않는 직장인으로서 연명할 수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이 작품은 의욕의 과잉으로 곳곳이 작위적 설정과 앞 뒤가 맞지 않는 스토리의 전개로 어색하기 그지없는 소설이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종이돈 하나만 주시오!”라고 구걸하는 노인 거지라는 인물의 이미지는 너무나또렷하다. 다른 모든 것이 실패했더라도 기억에 강렬하게 남을 수 있는 인물이 있다면 그 소설은 완전히 망한 것은 아닌 것이다. 치기와 의욕의 과잉으로 작위적 상황과 문장이 난무했던 소설을 아마추어 동인이긴 했지만 소설동인의 작품으로 뽑아준 등단 작가 선생님(죄송스럽게도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도 어쩌면 그 인물 하나를 보고 선정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소설의 3 요소가 주제, 구성, 문체이고 소설구성의 3요소는 인물, 사건, 배경이라고 한다. 현대 소설에선 주제보다는 구성과 문체가 우선시되는 측면이 있다. 그중에서 구성은 소설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구성의 3요소 인물, 사건, 배경 중에서 인물 하나만 잘 그리더라도 소설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인물이 사건을 만들고 배경 속에서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기에......

  어떤 인물을 창조할 것인가? 나는 종이돈 하나만 주시오의 주인공 똥 산 노인을 항상 생각한다. 그의 바지춤에서는 구린내가 진동하지만 그는 손에 종이돈을 쥐고 자기의 삶터로 재빠르게 돌아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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