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출근, 뒤돌아 보지 않기로
새 학기의 설렘으로 가득한 3월 개강일, 새 삶을 향한 의지를 담아 인사팀에 퇴사 의사를 밝혔다. 심각할 것도 과장할 것도 없이, 단순하고 무정한 언어로. 평소 친분이 있던 인사팀 선배는 복잡한 심정으로 내 결정을 들어 주었다. 예정된 휴직은 4월 말까지였지만, 사직서에 적은 퇴사일은 3월 31일. 퇴사 결심도, 준비도 다 끝났기에 하루라도 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다음날, 같이 일했던 선배 여럿이 연락을 해왔다. 소문이 이렇게 금방 퍼질 줄이야. 우리 회사 다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인사팀 내부에서 보고가 올라가면서 소식이 퍼진 것 같았다. 과정이 어떻든 상관 없었다. 선배들은 모두 비슷한 말을 건넸다. 휴직할 때부터 그만둘 줄 알았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 너라면 밖에서 더 잘할 것이다. 퇴사하는 후배에게 해줄 법한 평범한 말일지라도 뭉클했다.
사직서를 제출한 지 2주쯤 지난 날, 인사처장과의 면담을 위해 회사로 향했다. 마지막 출근이라는 생각 때문일까. 익숙한 출근길 지하철에서 마음이 깊숙이 가라앉았다. 역에서 내려 학교 정문으로 향하는 길, 발걸음마다 그동안 겪은 일들과 함께한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인사팀 직원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일대일 면담을 했다. 위로와 질문, 응원과 인사가 섞인 여러 말들을 듣고, 조심스럽지만 솔직하게, 회사와 리더십에게, 그리고 조직 구성원에게 바라는 점들을 이야야기했다. 떠나는 이의 무책임하고 속 시원한 한풀이는 아니었다. 아직 남아 있는 애정과 더 잘하지 못한 회한이 섞인 진심이었다.
면담이 끝난 후 친하게 지냈던 동료 선후배들, 그리고 가깝게 일했던 상사 분들께 마지막 인사를 건네기 위해 캠퍼스를 돌았다. 봄마다 학교를 분홍빛으로 물들던 벚꽃은 아직 피지 않았지만,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곳곳의 초록빛 풍경은 여전히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여러 건물에 들리며 익숙하지만 잊어야하는 하는 장면들을 천천히 눈에 담았다. 처음을 함께 했던 입사 동기들과 마지막으로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이제 자주 볼 수 없을 거라는 예감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동기들과 헤어진 후 홀로 캠퍼스 정문을 나섰다. 오늘이 정말 마지막 출근이라니. 이상하게 정장을 입고 처음 출근하던 몇몇 날들이 떠올랐다.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캠퍼스에서 일한 게 참 신기하고 감사했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면서 좋은 기억만 가져가자고 다짐했다.
정문 사거리를 건너 역으로 돌아가는 길, 발걸음마다 힘든 일, 분한 일, 억울한 일, 서러운 일을 전부 내려놓았다. 앞으로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내가 가는 길에만 집중하기를, 마음속 빈 공간에 설레는 일들만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