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제 Aug 31. 2024

퇴사는 열린 문?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시원섭섭한 마음을 애써 삼키며 집에 도착했다. 현재로 돌아와야 하는 시간. 아이들을 데리러 가기 전 침대에 누워 잠깐 숨을 돌렸다. 몇달 동안 모든 초점을 퇴사와 도전에 맞췄는데, 퇴사 절차가 끝나서 긴장이 풀렸다. 꿈꾸는 듯 묘한 느낌이 들며 침대 속으로 빠져 들었다.


겨우 침대에서 나와 어린이집으로 가는 길, 핸드폰이 울렸다. 아, 오늘 뵙지 못한 선배 중 누군가 보낸 메시지겠다. 아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이름이 화면에 보였다. 몇 달 전, 나에게 함께 일하고 싶다고 제안한 한 회사의 이사님이었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천천히 준비해보기로 정리했는데, 기대감이 남았던 걸까. 오랜만에 커피 한 잔 하자는 문자에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퇴사 소식부터 전해야할까, 사실 회사를 다닐 마음이 없다고 말해야 할까, 어떻게 답장을 보낼까 고민하고 있는데 또 한 번 핸드폰이 울렸다. 문자를 받은 지 딱 7분 후. 몇 달 전 함께 일해보자는 의사가 통했던 다른 회사의 이사님이었다. 무슨 일이지? 왜 하필 오늘 이렇게 연달아 연락이 오는 거지? 이제 다 정리하고 제대로 내 길 좀 가보려는데. 왜 나를 흔드는 걸까. 숨을 한 번 깊게 들이마신 후 거리에 서서 전화를 받았다. 이사님은 마침 나에게 딱 맞는 자리에 사람을 뽑게 되었다고, 담당 이사를 만나볼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를 생각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담당 이사님을 만나보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곧바로 언제든지 시간 괜찮으니 뵙는 거 너무 좋다며 답장도 보냈다. 순식간에 눈앞이 흐려져 고개를 들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당분간은 어떤 회사에도 다니고 싶지 않아 퇴사하는 사람인데, 회사에서 만난 짧은 인연들이 나를 좋게 봐주는구나. 나를 소진하며 일했던 시간들이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구나. 감사한 마음이 컸지만 마냥 좋지는 않았다. 다시 이직을 시도하는 건 몇 달에 걸친 퇴사 결심이 무색해지는 일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기회가 찾아왔는데 바로 회사에 다녀야 하지 않을까. 훗날 다시 내 일에 도전해도 괜찮지 않을까. 대체 뭐가 맞는 선택일까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어린이집 벨을 눌렀다.




갑자기 상황이 바뀌자 수없이 많은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가장 나를 괴롭히는 건 마음속 불안감이었다.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내가 뭐 특별하다고 내 길을 만든다는 걸까, 돌이킬 수 없는 잘못된 선택을 하는 걸까 하는 생각들.


며칠 뒤 새벽, 고요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때 문득 생각했다. 이 고민의 늪을 빠져나와야겠다. 평소에도 불안감이 높은 편이었다. 불안감 덕에 일을 잘 해내기도 했지만, 불안감과 싸우느라 에너지를 소진한 적이 더 많았다. 이번에는 단순한 이유로 고민을 그만두고 싶었다. 새롭게 달라지겠다고 결심했는데, 또 다시 불안감에 나를 내버리고 싶지 않았다. 내 안의 무엇이 아닌 바깥의 무엇이 나를 흔드는 상황을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지금 확실한 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직장인이 되든 되지 않든 스스로 달라진 사람이 되어 내 길을 가는 것.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도전하면서 어떤 길을 갈지 스스로 선택하는 것. 단순하게 생각하자 내 선택도 단순해졌다. 우선 나에게 찾아온 기회를 두 팔 벌려 맞이해 보자. 어떤 결과가 나올지 미리 예측하지 말고, 변화된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 결과가 정해진 것도 아닌데 계속 고민만 할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 한 번 다짐한다고 불안감이 높은 내 성격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이번 일을 계기로 깨달은 게 있다. 사람은 일어난 일에 상처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에 상처를 받는다는 것. 불안은 내가 만든 것이고, 내가 처한 상황을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는 것. 지금 상황이 결국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고 우리의 삶은 우리의 생각이 만든다는 것.


결국 어떤 상황을 마주하든지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정체 모를 불안에 사로잡히지 말고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뒤늦게나마 난 내 알을 깨기 위해 퇴사를 결심했다.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비와 바람을 맞으며 흔들리고 깨질 것이 분명하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셀 수 없이 닥쳐올 것이다. 어떤 일이든 일희일비하지 말고,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 시간을 보내자. 꽃이 그렇듯, 나도 흔들리며 피어날 것이다.

이전 06화 좋았던 기억만, 그리운 마음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