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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제 Oct 16. 2024

마음 비우는 연습이 필요해

도전과 이직 사이, 퇴사 후 끝없는 고민

퇴사 면담 3일 뒤 오후, 잠실역 근처 스타벅스 창가 자리에 앉아 호흡을 골랐다. 바로 정식 제안을 받게 될지, 한 번 이야기 나누는 자리로 끝이 날지.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설레는 건지 불안한 건지 모르겠는 두근거리는 느낌을 가라앉히고 싶었다. 불현듯 찾아온 기회를 두 팔 벌려 맞이하려 했지만, 커피잔만 자꾸 만지작거렸다.


소개받기로 한 H 이사는 약속 시간을 딱 맞추어 카페에 도착했다. H 이사는 첫인상도 깔끔했고 이야기를 나누는 매너도 좋았지만, 왠지 나와 맞지 않는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우리는 커피 한 잔씩을 두고 거의 두 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눴다. H 이사는 자신의 커리어가 어떤지, 현재 회사의 상황과 업계의 분위기가 어떤지, 어떤 업무를 할 사람을 구하는지 말했다. 또, 내가 어떤 업무를 해왔는지, 왜 퇴사를 선택했는지, 지금 이야기 나누고 있는 다른 회사가 있는지 물었다. 이쪽 업계에서 일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커리어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충고도 해주었다.


예상보다 긴 시간 동안 꽤 깊은 대화를 나눴다. H 이사는 대표님과 논의를 한 후 최대한 빠르게 연락을 주겠다고 하며 다음 일정으로 이동했다. 난 자리에 남아 빈 커피 잔을 양손으로 감싼 채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떠올려보았다. 전반적으로 대화 분위기가 좋았고 몇몇 긍정적인 반응들이 보였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오겠다는 예감도 들었다. 다만, 퇴사 직전 연봉이 얼마인지, 희망 연봉이 어느 정도인지 묻는 마지막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한 게 잘한 건지 계속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며칠 뒤, 오랜만에 커피 한 잔 하자고 연락을 준 S 이사도 만났다. H 이사를 만날 때와 다르게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S 이사는 업무 관계로 알게 된 분이지만 멘토처럼 여기고 따르는 분이었다. 몇 달 전 같이 일할 자리를 만들어보겠다고 제안을 준 적도 있어서 약간 의지하는 마음도 있었다. S 이사는 그동안 본인의 회사 상황이 어떻게 변했는지 이야기했고, 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특별한 일은 없는지 물었다. 나는 담담히 사직서를 제출하고 퇴사 절차를 마무리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S 이사에게 특별한 소식은 없었다. 단지 내가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커피 한 잔 하자고 연락했던 것이다. 내 안부를 묻는 건 감사하지만, 오늘은 희소식을 듣는 날이 아니란 걸 깨닫자 마음속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바로 이직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으면서 S 이사가 놀라운 선물을 들고 오기를 바란 나 자신이 우습기도 했다. 본인 회사는 인터뷰가 상당히 까다롭고 절차가 복잡하므로 미리 준비하고 있으라는 당부의 말을 듣자 더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날 밤, 아이들을 재우고 컴퓨터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갑작스럽고 혼란스러운 두 번의 만남이 끝나자, 당분간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내야 할까 잘 모르겠다는 마음이었다. 두 분에게 어떤 연락이 올지 자꾸 신경이 쓰였고 긴장되는 마음에 퇴사 후 도전이라는 목표가 뿌옇게 보였다. 그 후 그렇게 며칠을 그저 흘려보냈다. 아이들과 신나게 놀았고, 맛있는 밥과 커피를 먹었고, 이런저런 콘텐츠를 보며 시간을 허비했다.


어느 정도 가벼운 시간을 보내자 마음에 빈 공간이 생긴 걸까. 다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고민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아이들을 재우고 컴퓨터 앞에 앉은 또 다른 밤.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당장 모든 걸 예측할 수는 없으니, 큰 목표에 빠지지 말고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다시 시작해 보기로. 우선순위에 따라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보내자고, 루틴을 지키며 매일 단정하게 살아보자고, 회사에 다닐 때처럼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삶을 살지 말고, 스스로 이끌어가는 삶을 살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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