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흐르는 회사 밖의 시간
4월 1일, 인사 발령 문서에는 내 이름만이 홀로 쓰여 있었다. 이제 퇴사는 현실이었다. 작년 8월 시작된 이직과 퇴사에 대한 고민은 이렇게 일단락되었다. 새로운 길을 떠나는 설렘과 외로운 끝을 맞이한 허무함이 동시에 나를 뒤덮었다.
당장 해야 할 일은 없었다. 이직 관련 다음 절차도 없었고, 다른 활동도 예정된 것이 없었다. 우선 일상의 리듬을 되찾는 것과 더 나은 내가 되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엄청난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목표도 없었고, 쉽게 가는 지름길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저 다시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기 위해, 한 걸음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선순위에 따라 하루를 주체적으로 이끌어가자고 다짐했다.
시간을 관리하고 기록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가장 기본인 시간 관리조차 못하면 아무 일도 해내지 못할 것 같았다. 업무용이 아닌 개인용 저널이나 다이어리를 쓴 적이 거의 없는데, 바인더 다이어리 한 권을 구입해서 매일 할 일을 체크하고 시간별 활동을 기록했다. 아침 루틴도 만들어서 매일 반복했다. 평일 아침마다 명상, 스트레칭, 아침 일기, 독서 순서로 반복했고 평균 30분 정도 시간이 소요되었다.
오랜만에 책도 읽었다. 평소에 자기계발서를 즐겨 읽지 않지만, 나부터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니 자기계발서에 관심이 갔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 『타이탄의 도구들』, 『원씽』, 『자기관리론』 등의 책을 읽었다. 건강을 회복하고 싶어서 운동도 꾸준히 했다. 2019년에 첫 아이가 태어났고 비슷한 시기에 업무도 많아져서 운동을 못하게 되었다. 그 다음해 코로나19도 유행하면서 퇴사할 때까지 거의 5년 동안 운동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야근도 많이 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다 보니 상당히 건강이 안 좋아졌다. 위염과 식도염이 심했고 허리와 손목도 상당히 아팠다. 우선 가벼운 산책부터 시작해서 빠르게 걷기와 맨몸운동으로 운동 강도를 높여갔다. 몇 주 후에는 가장 좋아하는 운동인 농구도 오랜만에 해보았다.
최근 몇 년 동안 잃어버린 나의 좋은 습관도 되찾고 싶었다.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 건 디지털 디톡스와 아날로그 습관 되찾기였다. 책 『인스타 브레인』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SNS와 스마트폰의 폐해를 비판하는 책인데,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안 좋은 습관을 많이 갖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회사에서 일할 때 메신저, 전화, 회의 등으로 인해 끊임없이 주의가 전환되었고 과한 멀티태스킹을 했던 탓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만들어진 습관은 지금까지도 내 집중력과 사고력을 떨어뜨리는 것 같았다. 특히, 평균 다섯 시간이 넘는 스마트폰 스크린 타임을 믿을 수가 없었다.
또한, 최근 인스타그램에 콘텐츠를 자주 올리는 걸 감안해도, 불필요하게 앱을 자주 켜고 다른 사람의 콘텐츠를 너무 오래 보는 것 같았다. 이런 습관을 고치기 위해 아날로그 습관을 되찾아야 했다. 예를 들어, 아이디어를 짜거나 간단한 기록을 남길 때는 컴퓨터나 스마트본 대신 리걸패드나 연습장에 직접 글로 적었다. 일할 때는 핸드폰을 다른 공간에 두거나 가방에 넣어놓았다. 또, 포모도로 기법을 참고하여 집중 업무 시간을 확인하면서 집중력을 유지하는 연습을 했다.
인간관계와 사회 활동도 최소화했다. 불필요한 만남이나 일정은 일절 잡지 않았다. 혼자서 회복하고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가족과의 시간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동안 회사 사람들에게 너무 맞추며 살았던 것도 후회되었다. 앞으로는 누구를 만날지, 언제 어떤 이유로 만날지도 스스로 정하고 싶었다. 첫걸음으로 커피챗을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으로 진행한 작은 이벤트였다. 처음에는 인스타그램 팔로워 분들께 도움을 주고 싶었다. 휴직한 후 인스타그램에 커리어 관련 콘텐츠를 올렸을 때, 예상보다 반응이 좋아서 꾸준히 글을 올렸다. 퇴사를 결심한 후 소위 퍼스널 브랜딩의 색깔을 띤, 즉 내 이야기를 담은 콘텐츠를 올렸고, 내 이야기에 반응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즐거워서 콘텐츠 제작에 더욱 힘쓰게 되었다. 이런 팔로워 분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인연이 되면 더 좋을 것 같아 커피챗을 시작했다.
4월 말쯤에는 인스타그램 1일 1 피드, 매일 한 건씩 글을 올리는 도전을 시작했다. 당시 많은 1인 크리에이터들이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활성화하기 위해 1일 1 피드 챌린지를 했다. 특별한 목적이나 의도가 있던 것은 아니다. 회사 밖의 삶에 도전하기 위해 퇴사를 선택했는데, 이 정도 일도 해내지 못하면 난 아무것도 못할 것 같 다. 5월에는 팔로워 이벤트로 노션 무료 강의도 했다. 온라인 그룹 강의를 5회 정도 열었는데, 새로운 도전 자체가 즐거웠고 큰 보람을 느꼈다.
이런 활동이 좋게 보였는지 한 지식 서비스 플랫폼으로부터 지식 크리에이터 제안을 받기도 했다. 내 역량이나 진정성이 인정받는 것 같아 기뻤지만,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면서 제안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지식 크리에이터, 1인 창작자 쪽인가 고민하기도 했다.
퇴사 후 두 달 정도를 이렇게 보냈다. 당시 난 이 시간을 갭이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단지 예전의 좋았던 나로 돌아가고, 더 나은 나로 되어가고, 매일매일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회사 밖에서 나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시간.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하지 않는 시간. 이 달콤한 시간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나조차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