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고민에 마침표 찍기
퇴사하기로 마음을 정했지만, 막상 사직서를 제출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대부분의 걱정거리는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었지만, 끝까지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정년이 보장된 직장을 내 발로 떠난다는 것, 이미 얻은 미래의 안정을 포기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돌아가고 싶을까봐 혹은 그만둘 용기가 부족해서 주저하는 건 아니었다. 나의 직업적 안정이 가족의 안정이므로 혹시나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게 아닐까, 감정에 휩쓸려 이기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이 선택 때문에 우리 가족이 힘들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계속 발끝을 붙잡았다.
마지막 용기를 찾기 위해 두어 주 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보냈다. 걷고, 읽고, 쓰고, 생각하며 내 안으로 깊게 파고 들어가 끈질기게 질문했다. 변하지 않는 답은 앞으로의 삶을 위해 내가 바로 이 순간 달라져야 하고, 그 방법은 오직 퇴사와 새로운 도전뿐이라는 점이었다. 계속 확신하지 못했던 건, 퇴사한 후에 무엇을 해야 내가 달라질 수 있는 건지, 달라진 후 구체적으로 무엇을 이뤄내고 싶은 건지, 직업이 없는 상황을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 건지였다. 모든 질문에 정답을 찾아야만 퇴사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최소한 이 선택이 완전히 잘못된 게 아니라는 약간의 확신이 들 만큼만 충분히 묻고 답하고 싶었다. 똑같은 고민만 반복하다가 순식간에 보름 정도의 시간이 지나 해가 바뀌었고 어느덧 휴직 3개월 차를 맞이했다.
어느 날 아내와 함께 아이들을 등원시킨 후, 각자의 자리에 앉아 나란히 책을 읽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바쁜 업무 탓에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변화가 절실해지자 자극을 줄 도구로써 책이 필요했다. 혹시라도 어떤 도움, 내 생각의 틀을 깨준다거나 신의 계시처럼 믿고 따르고 싶은 구절을 찾는다거나 하는, 지금 딱 필요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평소에 거의 읽지 않던 베스트셀러 자기 계발서나 마인드셋이나 도전 정신에 관한 책을 읽을 정도였다. 그날은 왠지 모르게 아내가 몇 달 전에 추천했던 책이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큰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이 책이 지금 나에게 딱 필요한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3년 간의 자기 혁명 프로젝트를 시작하려는 사람은 어떤 형태이든 ‘나의 날'이라는 상징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것이 좋다. … 자신에게 분명하고도 확고하게, '이제는 결코 과거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인시켜라. 그리고 치열한 현재를 살 것을 다짐해야 한다. 이 날을 기점으로 당신은 묻어 두어야 할 과거를 떠나보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스스로 정리한 과거를 단호히 흘려보내라.”
-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구본형
고민에 빠져 같은 고민만 반복하며 멈춰있던 나를 따끔하게 혼내는 말이었다. 실행에 옮기기 위해 내게 필요했던 건 더 이상의 어떤 이유나 변명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내 의지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어떤 단호함이 필요했다. 떠나고 싶었다. 아니 떠나야만 했다. 어디론가 떠나서 그곳에서 스스로에게 마지막 선언을 한 후 차분한 마음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곧바로 책을 덮고 옆에 앉아 있는 아내에게 오늘 밤 떠나야겠다고 말했다.
아내는 항상 나에게 안전한 집이 되어 주었다. 예민한 성격 탓에 회사 생활을 유난히 힘들어하는 남편을 위해 아내는 무슨 일이든 나를 지지해 주었다. 만난 지 1년이 조금 넘었을 무렵, 당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했을 때도 아내는 나를 믿어주었다. 이번에도 그대로였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그 회사에 계속 있기에 내가 너무 아깝다며, 더 좋은 곳과 더 나은 기회를 찾아보자며, 당분간 아무 걱정하지 말고 푹 쉬라며 나를 다독여주었다. 그런 것이었다. 아내가 있었기에 난 여기까지라도, 이만큼이라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한번 아내에게 퇴사라는 말을 꺼낸 후, 우리는 서로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잘 해왔다고, 예쁘고 건강하게 잘 크고 있는 우리 아이들을 보라고, 우리가 부족한 게 뭐가 있냐고, 우리 둘 다 앞으로 멈추지 말고 삶을 헤쳐나가 보자고, 각자 자기 자신과 가족을 위해 더 가치 있는 일을 하며 살아 보자고. 아이들을 재운 뒤 작은 방에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낸 뒤 동네 카페에서, 카페에서 나와 산책을 하며 우리는 서로의 손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그날의 갑작스러운 나홀로 여행 선언 또한 아내는 흔쾌히 받아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완전한 여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는 아내의 말을 듣자 더 이상 주저할 게 없었다. 곧바로 당일 밤 기차표를 끊었다. 목적지는 강릉. 퇴사 여행이라면 왠지 바다에서 굳이 일출을 봐야 할 것 같았을 뿐, 어디로 갈지 잠시도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간단히 옷가지를 챙기고 책 몇 권과 노트북을 가방에 담았다. 아이들을 하원시키고 저녁을 먹이고 씻긴 후, 다음 임무를 향해 떠나는 요원처럼 빠르고 확실한 걸음으로 기차역으로 향했다.
자정 조금 넘어 강릉역에 도착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역에도 거리에도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새벽에 바로 일출을 보러 가기 위해 숙소는 따로 잡지 않았기에 찜질방으로 향했다. 겨울 새벽 살을 에는 추위 때문인지, 인적 드문 어두운 골목길이라 그런 건지, 퇴사 선언을 앞두고 긴장되는 건지 몰라도, 몸이 살짝 떨리고 심장도 빠르게 뛰는 것 같았다.
찜질방에서 몇 시간 정도의 쪽잠을 청하고, 새벽 네 시쯤 일어나 간단히 씻고 아침을 먹은 후 택시를 잡았다. 경포대 바닷가에는 벌써부터 꽤 많은 사람들이 해가 솟아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연인끼리, 일출을 보러 온 다양한 색깔의 인파 속에서 혼자 우두커니 서서 떠오르는 해를 마주했다. 매일 뜨는 해를 바닷가에서 보는 것뿐인데, 처음 보는 경이로운 광경도 아닌데, 회사 다닐 때와 똑같은 그저 어느 하루의 아침일 뿐인데, 왠지 모르게 울컥하는 감정이 벅차올랐다. 세상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데, 지난 몇 달 동안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져 있었다. 순식간에 사라질 짧은 순간의 감정을 붙잡고 싶어서 메모장을 켜고 마음 가는 대로 적어 내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해는 떠오른다.
햇빛이 나에게 왔다.
파도에 내 두려움, 부정적인 생각을 버렸다.
용기 있게 도전하자. 할 수 있다.
내 인생은 내가 만들면 된다.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해가 완전히 떠오를 때까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그 후 바닷가를 쭉 걷고,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벤치에 앉아 좋아하는 책도 읽으며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그동안의 업무, 경험, 주변 사람들 등을 나를 덮고 있던 많은 껍질들을 바라보았고, 내 것이 아닌 모든 것들을 벗어던지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지난 몇 주 동안 스스로에게 묻던 질문들을 되물었다. 얼마나 변화가 절실한가, 무엇이 가장 두려운가, 두려워도 도전할 수 있는가, 지금 내 생각이 정말 내 생각이 맞는가. 나에게 묻고, 내가 대답했다. 다른 어떤 것도 의식하지 않고, 진실된 마음으로. 나도 모르게 맞추고 있던 타인의 생각, 시선, 기준, 판단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혼자 바닷가에서 세 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며 끝내 마지막으로 또 한 번 결심했다. 그래, 퇴사하자. 내 안의 모든 과거를 그만두고 달라지자,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불안해하지 말자, 나 자신을 믿고 새로운 삶으로 떠올라보자.
그렇게 1월 11일 , 강릉 바닷가에서, 약간 유치하게도 떠오르는 해를 보며 딱 한 번만 더 마지막으로 퇴사와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다. 몇 달 동안 수많은 질문과 답을 반복했기에, 단 하루의 짧은 여행으로도 충분했다. 시간의 양보다 밀도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다음 풀어가야 할 것은 실질적인 문제들이었다. 퇴사일을 언제로 할지, 퇴사 의사 표시를 어떻게 할지, 퇴사 과정에서 그동안의 업무와 회사 내 인간관계를 어떻게 마무리할지, 퇴사 후 몇 달 동안 아이들은 어떻게 돌볼지, 아내는 언제 복직하며 우리 가정의 재정은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한 번 마음을 단단하게 굳히자, 높이 솟아 있던 벽이 도미노의 첫 번째 낮은 벽처럼 보였다. 오전 열 시쯤,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바닷가의 무수한 모래알이 반짝거리며 나를 비추고 있었다. 매일매일 해가 뜨는 것처럼, 하나하나씩 무수한 가능성을 헤쳐 나가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