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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제 Jun 12. 2024

바로 퇴사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갭이어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2022년 11월, 휴직을 떠났다. 이 회사에 입사한 지 6년, 직장인이 된 지 10년이 된 달이었다. 이곳에 내 미래를 맡기지 않기로 했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싶었고, 커리어를 내 힘으로 만들어가고 싶었다. 이직을 준비하면서 가족도 돌보려고 했다. 오랜 육아로 지친 아내를 돕고, 복직을 앞당겨주고 싶었다.


휴직 기간은 6개월. 회사 규정 상 1년까지 쓸 수 있었지만, 확실한 결과를 빠르게 만들고 싶었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휴직을 연장할 각오로. 다시 돌아간다는 생각은 나를 몸서리치게 했다.


내 직장이 선망받던 시절이 있었다. IMF 이후, 사람들은 안정적인 직장을 찾았다. 대학 교직원은 정년이 보장되면서 연봉도 나쁘지 않은 직장이었다. 내가 대학으로 이직한 건 2016년. 예전만큼 선호되는 곳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썩 나쁘지 않은 직장이었다. 안정성을 바탕으로 어느 정도 전문적인 커리어도 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입사 이듬해 가정도 꾸리며 더욱 괜찮은 미래를 향해 가는 듯했다.


완벽한 착각이었다. 연차가 쌓일수록 난 점점 더 흔들렸다. 옛 영광의 시대에 머물러 있는 대학 조직은 더 이상 ‘신의 직장’이 아니었다. 기획 부서에서 일했기 때문일까. 회사와 조직의 병폐와 암울한 미래가 심각해 보였다. 이곳에서 계속 일하는 게 맞을까 의문이 들었다. 고민을 해결할 여유는 없었다. 업무량이 많은 부서에 연달아 발령 받으며 계속 정신없이 일해야 했다.


일 바깥의 삶은 대체로 부족한 게 없었다. 여러 도움 덕에 내 집 마련의 꿈도 이뤘고, 예쁜 두 아이도 계속 건강하게 잘 자랐다. 하지만, 직장인으로서 내 삶은 계속 금이 가고 있었다. 이 불균형은 결국 나를 산산이 깨부수고 말았다.

어떤 결정을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결정한 후에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휴직 후 방문한 도서관에서 눈에 띈 문구




이직을 준비한 곳은 스타트업 관련 분야였다. 대학에서 3년 정도 스타트업 지원 업무를 담당하며 그 일과 관련 분야의 성향이 나와 잘 맞는다는 걸 깨달았다. 업무를 하며 만난 많은 관계자들이 내 역량을 인정해 준 점도 컸다. 조심스럽게 이직 의사를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커리어를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휴직이 시작된 후, 회사를 다닐 때처럼 쉴 틈 없이 바쁜 활동을 이어갔다. 그동안의 업무 성과를 정리하고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작성했다. 관련 행사에도 여러 번 참여하고,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현직자들도 만났다. 6주간의 벤처투자 전문가 교육도 들었다. 휴직이 시작되기 바로 전에 합격했던 취직 연계형 교육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다. 원하는 곳, 나를 필요로하는 곳을 찾아 떠나겠다는 굳은 결심이 너무 쉽게 녹아내렸다. 다양한 활동을 하며 바쁘게 지낼수록, 마음 한편에서 정반대의 생각이 생겨났다. 교육을 들으며 현업의 감각을 익히고, 이직 관련 회사 사람들을 만날수록 그 생각은 자라났다.


어떤 곳이든 도저히 당분간 다시 회사에 다닐 수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회사 생활로 망가진 몸이 전혀 낫지 않았고, 번아웃 후유증 때문인지 정신적으로도 회사 생활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내가 바뀌지 않은 채 회사만 바꾸어 다시 직장인이 된다면, 몇 번이고 똑같은 결과를 맞이할 것 같았다.


휴직 한 달이 지나자, 내 마음은 이직에서 퇴사 쪽으로 기울었다. 단순히 회사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바꾸고 싶었다. 달라지기 위해서는 멈춰야 했고, 잠깐 쉬는 것이 아니라 트랙을 완전히 벗어나야 했다. 계속 휴직 상태로 이런저런 상황을 살피며 처신하고 싶지도 않았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생각은 마음을 약하게 만드니까.


12월 중순쯤, 워크숍을 끝으로 6주 간의 교육이 마무리되었다. 며칠 후, 채용 연계 신청 여부를 묻는 메일을 받았다. 답장을 타이핑하는 손에 망설임은 없었다. 이직을 위한 모든 활동도 멈추었다. 이제 남은 건 내 안의 두려움을 이겨내는 일이었다.

교육 워크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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