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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제 Jul 03. 2024

회사가 아니라 내가 싫어서

갭이어는 이렇게 시작되었다(내면 일기 편)

사람이 싫다거나 회사가 싫은 건 괜찮았다. 누구든 직장에서 그런 마음이 들 수 있으니까. 때마다 찾아오는 번아웃도 괜찮았다. 내 마음 딱 절반 정도만 충전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 끝내 버티지 못한 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싫어졌다. 긴 시간 동안 나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결국 완전히.




꽤 오랫동안 나 자신을 괜찮은 사람으로 여겼다. 청소년기에 헤맬 때도, 대학 생활을 쓸데없이 낭비할 때도, 고시 공부에 철저히 실패했을 때도, 첫 직장에서 쓴맛을 봤을 때도,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인생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나 자신을 그럭저럭 좋게 봐주었다.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헤매다가 운 좋게 들어간 첫 직장. 바로 원하는 부서로 배치되어 원하는 일을 맡아버렸다. 꿈같은 일을 담당했던 그 순간만큼은 반짝이는 사람이 된 듯했다. 자격이 없었던 걸까, 그 일이 끝나자 내 눈앞엔 어둠만 가득했다. 결말은 허무한 퇴사였다.


대학으로 직장을 옮기고 새로운 일을 경험해도 달라진 건 없었다. 일에 대한 열정은 사라졌고, 그저 몸에 베인 책임감 때문에 언제나 최대치로 움직일 뿐, 일과 직장은 그저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었다.


결혼을 하고 첫 아이가 생긴 후, 이 정도의 삶도 꽤 괜찮다는 생각에 젖어들기도 했다. 그저 맡은 일을 책임감 있게 해내고,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가정에서 괜찮은 남편이자 아빠가 되는 정도. 딱 그 정도 평범함이 내가 받아들인 괜찮음, 내 삶의 최대 밝기였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고 예측하려 해서도 안된다던가. 커리어 측면에서 많은 걸 포기하고 있었던 대학 4년 차쯤, 우연히 스타트업 지원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창업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었지만, 새로운 분야의 일을 배우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게 의외로 큰 에너지가 되었다. 내가 해내는 만큼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도 순수하게 즐거웠다. 반짝이는 여러 창업자를 만나며, 그리고 점점 더 일에 몰입하면서 내 안의 무언가도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이 길 위에서 무언가 해낼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일에 더욱 매달렸다.


겨우 일에 대한 열정이 다시 생겼는데, 왜 또 퇴사라는 결말에 닿은 걸까.



입사 5년 차가 지난 어느 날, 식사도 거른 채 넓은 사무실에 혼자 남아 야근을 하고 있었다. 밤 열 시쯤 되었을까, 갑자기 속 깊은 곳에서 울컥하면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올라왔다. 한참을 당황한 표정으로 멍하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겨우 감정을 가라앉히자 서류 더미 너머 모니터에 비친 내 얼굴이 보였다. 화면 속 나는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 자신이 싫다는 느낌이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기분이 더러웠다. 그런 이상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그 순간을 마주하기 전 몇 달 동안, 내가 나 자신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 적이 많았다. 평소의 나라면 품지 않을 생각, 나라면 뱉지 않을 말, 나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종종 했다. 일이 많아서, 야근이 잦아서, 건강이 나빠서, 사람 스트레스가 커서. 이런 일차원적인 사정의 영향도 있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나조차 그 현상의 정확한 이유를 전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수년 동안 축적된 어떤 복잡한 원인과 상황으로 마음이 꼬일 대로 꼬여서 이렇게 되었으리라 짐작할 뿐이었다. 하루에 몇 번씩 나를 원망하고 미워하면서도, 비틀린 나를 돌려세울 방법이 없었다.




그동안 회사가 싫다든지 동료 선후배가 실망스럽다든지 온갖 이유로 부정적인 감정이 든 적은 많았다. 그런 감정이 쌓이고 그 감정에 적응할수록, 어릴 때 빛나고 싶어 하던 마음은 그저 어린 마음이었구나, 이렇게 평범한 직장인으로 사는 것도 대단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구나 생각했다. 마음 한 편엔 내가 동경하던 빛에는 절대 다다를 수 없다는 결론이 굳어지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버틸 수 있었다. 그냥 이렇게 우물 안에 갇혀서 서서히 달아오르며 뜨거운 것도 모르고 살아가도 괜찮겠구나 싶었다. 회사에서는 이렇게 살아도, 집에서는 너무 행복하니까 괜찮지 않을까? 더 어려운 사람도 많은데 이런 감정도 다 사치가 아닐까? 이런저런 그럴듯한 이유를 대며 나를 속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그날 밤 이후로 내 마음이 완전히 달라졌다. 스스로 작아지는 마음과는 완전히 다른 파괴적인 감정을 느껴서일까? 딱 한 번 그 불쾌한 감정이 들자, 더 이상 나는 나를 속일 수 없었다. 내가 싫은 내가 싫었고, 그 마음을 알면서도 싫은 행동을 계속했던 내가 싫어 더 괴로웠다. 남을 미워하는 것보다 나를 미워하는 게 나를 갉아먹는 일이었다.


이 불쾌한 감정을 없애고 싶었다. 예전처럼 나 자신을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기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다시 나 자신으로 살아갈 만큼만 나를 치유하고 싶었다. 어떤 일을 해도, 어느 회사에 가도, 어떤 환경에 처해도, 나 자신을 싫어하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 트라우마가 새겨진 곳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미 몇 년 동안 주변 환경을 바꾸거나 환경에 맞춰 나를 바꾸려는 시도는 해볼 만큼 해봤다. 다른 방법을 찾아볼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유일한 가능성은 완전히 멈추는 선택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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