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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제 Oct 22. 2024

첫 번째 편지 - 2023년 11월 1일

처음

OO 안녕? 처음으로 OO에게 편지를 보내.


 곳곳에서 단풍이 들기 시작한 가을밤, OO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 오늘 낮에는 가족과 함께 공원으로 나들이를 다녀왔어. 잠깐 산책을 하며 둘러보니, 올해 단풍은 왠지 예전만큼 아름답지 않은 것 같더라.


 <엮은이 닷 노트> 첫 편지에는 어떤 말을 건네야 할까 많이 고민했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보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어. 좀 싱겁지만 처음으로 OO에게 편지를 보내는 거니까 ‘처음’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해 볼게.



 나에게 거의 대부분의 ‘처음’은 떨리고, 걱정되고, 무서운 일이었던 것 같아. 설레고 즐거운 ‘처음’도 많았을 텐데… 아마도 연약한 내 성격 탓일 거야. 그래서 그럴까?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 나의 ‘처음’도 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처음’ 느꼈던 일이야. 


 초등학교 6학년 때였어. 친한 반 친구랑 방과 후에 과외를 받았지.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수학과 영어 기초를 배우려고 과외를 받았을 거야. 아마도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나와 친구가 선생님 집으로 갔던 것 같아. 선생님은 몸이 불편하셨거든. 어떤 사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다리가 성하지 않으셨고 혼자 걷지 못하시는 분이셨지.


 어느 날 그 ‘처음’이 일어났어. 수업이 끝나고 가방을 정리하며 나갈 준비를 할 때였어. 어떤 말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친구가 선생님의 불편한 몸을 심한 말로 놀렸어. 그 친구는 원래도 장난기가 심한 아이였어. 반에서도 여자 아이들을 매일 놀리고 울리는 아이였지. 그 아이 입장에서 몸이 불편한 선생님은 자기 맘대로 놀려도 되는 약한 존재였던 걸까? 선생님이 그만하라고 해도 친구는 멈추지 않고 즐거워했지. 물론 그 친구도 나쁜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닐 테지만.


 선생님은 그동안 차분하고 어른스러운 모습만 보여주셨는데, 그날은 어린 제자의 말을 도저히 더 참을 수가 없었나 봐. 몇 번 내 친구를 나무라다 잠시 입을 다무시더니, 현관으로 향하는 친구를 급하게 따라오셨어. 불편한 몸으로 다리를 질질 끌면서. 그리고 소리를 지르며 볼펜 몇 자루와 무언가를 친구 쪽으로 세게 던지셨어. 그리고 악에 받친 목소리로 무어라 무어라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친구를 혼냈지. 그 순간 나는 선생님 안의 무언가가 무너졌다는 걸 느꼈어. 선생님은 어리고 어리석은 제자에 대한 분노를 보이는 게 아니었어. 자신의 나약한 모습과 불공평한 세상에게 울분을 담아 소리를 지르시는 것 같았어.


 선생님은 곧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애쓰시며 방으로 들어가셨어.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우리에게 조심히 가라며 인사하셨지. 동네로 돌아오는 길, 친구는 자기가 한 일이 머쓱한 듯 나에게 쓸데없는 말을 많이 했던 것 같아.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


 선생님은 나에게 처음으로 만난 진짜 어른 같은 존재였어. 집과 학교가 아닌 바깥세상에서 가깝게 오랜 기간 만난 첫 어른이었고, 어른의 모습에 대한 이미지를 보여주셨던 분이었어. 선생님의 올바름과 다정함을 느끼며 이런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거든. 감히 선생님의 삶을 재단할 수 없지만, 선생님의 삶은 쉽지 않았을 테고,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으셨을 거야. 그럼에도 항상 우리를 따뜻하게 대해주며 최선을 다해 공부를 가르쳐 주셨어. 바닥에 다리를 끌고 다니며 좁은 방 안에서 교재와 필기구를 챙겨 오는 모습은 잊을 수가 없어.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당당하게 그대로 마주하는 말 그대로 어른다운 모습이었어.


 내게 첫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선생님의 무너진 모습을 보았던 거야. 내가 알고 있던 세계가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졌어. 어른이란 존재는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틀렸단 걸 알게 된 거지.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우리는 어떨 때 강해지고 어떨 때 약해지는 걸까? 강하고 약하다는 것을 타인의 기준에서 평가할 수 있는 걸까? 남에 의해 무너지는 마음과 스스로 무너지는 마음은 어떻게 다른 걸까? 우린 어떤 삶을 살아야 삶의 매 순간을 가장 인간답게 맞이할 수 있을까? 아니, 인간다운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끝없이 고독하고 나약한 존재인 걸까. 외할머니와 있었던 일을 들려줄게. 우리 외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3년 정도 요양원에 머무르셨어. 마지막 1년에서 2년 정도 동안 두어 차례 수술을 받으셔도 호전될 기미는 없었어. 스스로 걷지도 못하셨고, 혼자 용변도 보지 못하셨어. 우리말을 거의 들지도 못하셨고, 말을 거의 하지도 못하셨어. 자애로운 할머니의 모습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삶의 끝을 마주하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은 너무도 고독하고 나약했어.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볼 수도 없었고 바라보지 않을 수도 없었어. 우리 가족, 친척들은 그저 할머니의 마지막 길이 너무 힘들지 않기만을 기도했어. 


 어머니는 노트에 글씨를 크게 써서 당신의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곤 했어. 나도 한두 마디 인사말을 써 드리곤 했는데, “제 딸이 건강하게 나왔어요. 아내도 건강해요.”라고 썼을 때 할머니가 가늘게 미소 짓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나. 할머니 상태가 괜찮은 날이면 삐뚤삐뚤한 글씨로 노트에 짧은 대답을 써주시곤 했어. 할머니는 종종 어머니와 삼촌에게 집으로 데려가 달라고 힘겹게 적으셨고, 그때마다 우리는 눈물을 삼켰지.


 어머니와 함께 찾아뵌 어느 날, 할머니가 유달리 컨디션이 좋지 않았을 때가 있어. 어머니가 여러 생필품과 간식을 챙기실 때 나는 할머니 손발을 주물러 드리며 옆에 있어 드렸지. 힘들게 눈을 뜨신 할머니는 나를 보고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셨어. 그러고는 수납장 위에 놓인 노트를 가리키셨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 꺼내달라는 뜻이었어. 할머니는 눈에 띄게 떨리는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혼신의 힘을 다해 적어 나가셨어. 건네주신 노트에는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이 적혀 있었어.


“우제야 네가 힘이 세다 나를 집에 데려가 다오”


 세 달쯤 지난 어느 날 외할머니는 요양원 중환자실에서 숨을 거두셨어. 몇 년 지난 지금도 그날의 할머니를 떠올리면 마음이 너무 쓰리고 아파.

 즐거웠던, 기뻤던 ‘처음’도 많을 텐데, 나는 왜 이런 순간들을 떠올리는지 참. 이 두 기억으로 인해 나는 사람들을 대할 때 이 사람 또한 나약한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 함께 삶이 주는 고통을 이겨내야 하고,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지.(삶이 고통이라고 단정하진 않아!) 근데 이런 태도로 사는 게 직장 생활에서는 엄청난 결점이 되더라.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내가 준 만큼 받지는 못하더라고. 받고 싶어서 준 건 아니지만 말이야.


 OO야. OO에게 ‘처음’은 어떤 의미야? 가장 먼저 떠오르는 ‘처음’이 있을까? 


첫 편지인데 너무 무거운 이야기를 해서 미안해. 퇴사한 후 요즘 몇 달간 난 심리적으로 안정적인 편이고 행복하다는 느낌을 꽤 자주 받고 있는데, 첫 편지는 잘 써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일까?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둔 이야기가 나와버렸어. 다음부터는 조금은 짧게 써야겠다는 생각도 드네.


 ‘처음’ OO에게 <엮은이 닷 노트>라는 이름으로 편지를 쓴 이 순간을 나는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그리고 OO와 내 삶에는 어떤 의미로 남을까?


 우리는 모두 작고 나약한 존재일지라도, 함께한다는 느낌, 서로를 믿고 지지한다는 느낌만으로도 우리는 때로 가장 강한 존재가 되는 것 같아. 그래서 이 편지를 써. 우리가 직접 만나지 않아도, 우리는 각자의 고독을 다정하게 채워주기로 하자. 힘든 하루 끝에 나도 나약한 인간이구나 생각하게 될 때, 내 편지가 OO에게 작은 힘이 되기를 바라.


 그럼 또 편지 쓸게. 오늘도 다정한 하루 보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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