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태어나서 어른이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30년도 더 지난 일이고 그때 겨우 7살이었는데도 그 기억의 선명함이란 도무지 무뎌질 기미가 없었다.
항상 습하고 어두웠던 우리 집 부엌 한구석엔 쌀통이 하나 있었다. 길쭉한 네모 상자 모양에 높이가 대략 1미터 조금 못되었고 상자의 아래 부분엔 1, 2, 3이라고 적힌 세 개의 레버가 달려 있어, 1번 레버를 당기면 쌀이 조금 밑으로 쏟아지고 3번을 당기면 쌀이 제법 많이 쏟아지는 쌀통이었다. 부엌은 나와 동생이 함께 쓰는 방과 작은 쪽문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집밖으로 나가려면 부엌과는 반대 방향으로 연결된 안방을 지나야 했지만 나는 부엌과 연결된 좁은 마당 구석에 위치한 뒷문을 선택했다. 안방을 통과할 때마다 밥 먹을 시간 전에는 돌아오라는 어른들의 잔소리가 귀찮았다.
그날 부엌문을 열었을 때, 익숙한 뒷모습을 한 어른이 쌀통에 매달린 1번 레버를 부서져라 난폭하게 누르고 또 누르고 있었다.
엄마였다.
속이 비어 깃털같이 가벼운 쌀통은 엄마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이리저리 들썩거리며 움직일 뿐, 단 한 톨의 쌀알도 뱉어내지 않았다. 엄마는 반응 없는 쌀통의 레버를 당기다 말고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치기 시작했다. 주먹이 가슴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와 말 못 하는 짐승의 신음소리 같았던 괴이한 엄마의 울음소리가 한데 섞여 내 귓속으로 난폭하게 밀려들었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부엌을 드나들던 나의 존재를, 엄마의 처절한 뒷모습을 아무런 준비 없이 마주할 수도 있었던 나를 그 순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엄마를 항상 원망하며 살았다. 엄마는 정말 무결한 존재였고 나처럼, 나보다 어린 동생처럼, 서럽게 울 수 있다는 생각은 내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처음 처음 본 순간이었다.
기괴한 울음소리만이 허공에 맴돌던 어둡고 좁은 부엌이 갑자기 끔찍하게 무서워졌고 나는 슬며시 부엌문을 닫고 내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리고는 한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때부터 겁쟁이가 되었다. 엄마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울게 만들었던 그 무엇이 도대체 무엇인지 몰라 두려웠고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아 더 무서웠다.
그 뒤로 항상 꿈꾸던 것이 하나 있었다. 시간을 되돌려 엄마가 빈 쌀통의 레버를 당기기 전으로 되돌아가 동네 다방에서 한심한 무리들과 어울려 헛된 망상에 빠져있던 아버지에게 쌀 한 포대를 집어던지고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 쌀통에 쌀을 채워 넣으라고 욕을 퍼붓고 싶었다. 나이가 들어 그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에는 엄마가 울고 있었던 그 장면과 내가 느낀 공포에 대한 기억을 현재의 행복한 일상으로 조금씩 덧칠해 결국에는 완전히 없애버리고 싶었다.
엄마가 마지막 눈물 한 방울을 떨어트리며 눈을 감던 날, 엄마에 대한 나의 기억은 그날 부엌에서의 모습 그대로 박제되었고 오랫동안 굴레처럼 나를 붙들어 매고 있었던 공포를 벗어던질 기회가 영원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그녀를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 아마 그녀도 엄마를 잃어버린 다는 것이, 엄마에 대한 기억이 그 지점에서 멈춘다는 사실이 너무 무서웠을 테니까.
- 동석의 일기
시장은 하늘에서 보면 십자가 모양이었다. 200미터 조금 안 되는 중앙 도로를 50미터 정도의 좁은 길이 십자가처럼 직각으로 가로지른 형상이었다. 두 길이 교차하는 사거리에는 네 개의 가게가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일 년 내내 빨간색과 핑크색 중간쯤 되는 조명을 켜 놓은 정육점과 그 맞은편 과일 가게, 과일 가게 건너편에는 ‘커피 익는 마을’이라는 촌스러운 간판이 달린 작은 카페가 자리 잡았고 카페의 맞은편은 만두 가게였다.
사거리는 비린 생 살코기 냄새와 달짝지근한 과일 냄새, 쓰고 시큼한 커피 향과 고기 익는 냄새가 뒤 섞인 기묘한 공간이었다. 어떨 때는 역한 비린내가, 어떤 날에는 달달한 냄새가, 또 어떤 날은 여러 냄새가 섞여 분간이 안 가는 묘한 냄새가 항상 거리를 가득 채웠다.
동석은 가게 밖 가판대에 설치된 양철 찜통의 뚜껑을 열어 하얀 김이 몸체를 휘감은 주먹만 한 만두 다섯 개를 꺼내 스티로폼 재질의 흰색 박스에 하나씩 담았다. 즐거워 보이는 표정이었다. 동석과 달리 그의 동생 동민은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다. 동민은 밀가루 반죽을 주무르다 말고 양손으로 반죽을 위로 집어 들었다가 반죽 그릇 속으로 있는 힘껏 패대기쳤다.
“날씨는 진짜 덥고 손모가지는 끊어질 것 같지, 내가 이런 시시한 일이나 해야 돼?”
바깥에서 만두를 포장하고 있던 동석이 들으라는 말이었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동석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만두 장사 계속할 거야? 많고 많은 장사 놔두고 뭔 이런 쓰레기 같은 장사야? 이왕 할 거면 휴대폰 대리점 같은 거 얼마나 좋아? 깔끔하고”
동석은 만두를 담은 스티로폼 박스의 덮개를 덥고 손목에 걸어 두었던 노란 고무줄 두 개를 빼내 능숙하게 박스를 두 번 감은 후 박스를 검은 비닐봉지에 넣고는 가게 안을 바라보았다.
“넌 일을 주둥아리로 해? 빨리 끝내. 조금 있다 사람들 들이닥치는 거 몰라?”
사나운 자동차 경적음이 울린 것은 그때였다. 가게 밖에 있던 동석은 물론 홀 안에 있던 동민도 날카롭고 난폭한 경적음에 깜짝 놀라 두 사람의 어깨가 동시에 움츠러들었다.
“씨발! 깜짝이야.”
동석은 눈을 부라리며 가게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동민을 향해 손바닥을 펴 보이며 말렸다. 뒤를 돌아보니 군데군데 녹이 슬어 험상궂게 생겨 먹은 파란색 2톤 용달차와 연식은 오래됐지만 관리가 잘돼 깔끔해 보이는 흰색 소형차가 사거리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대치 중이었다. 방금 전의 신경질적인 경적음은 느낌상 용달차가 내지른 것임에 분명했다.
시장을 가로지르는 중앙 도로는 자동차 두 대가 지나가기에 충분한 폭이었지만 대부분 가게 밖으로 가판대를 설치해 놓아 원래보다 도로 폭이 좁아졌고 장 보는 사람들이며 물건 나르는 카터, 곡예하듯 달리는 배달 오토바이들로 하루 온종일 혼잡했다. 초보 운전자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진입했다가는 곤욕을 치르고 나가는 도로였다.
파란색 용달차는 다시 경적음을 신경질적으로 두 번 연이어 울렸다. 동석은 흰색 소형차 안을 유심히 살폈다. 선팅 때문에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운전석에 앉은 사람은 여자로 보였다. 동석은 소형차로 다가가 운전석 창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창문이 ‘징’하는 모터 소리를 내며 밑으로 반쯤 내려갔을 때 얼음같이 차가운 공기가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여자는 양손으로 핸들을 꽉 움켜쥐고 있었고 이마에는 작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애써 동석을 향해 미소를 지었지만 동석은 여자의 눈동자 속에 자리 잡은 공포심을 느낄 수 있었다.
“제가 빼드릴까요?”
여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위아래로 고개를 흔들었고 바로 차문을 열고 운전석에서 내렸다. 동석이 운전석에 앉은 후 여자가 보조석에 앉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때 핸들에서 촉촉한 물기를 느꼈다. 여자가 조수석 시트에 앉은 뒤 문을 닫자 동석은 능숙하게 핸들을 크게 두 번 돌려 용달차의 오른쪽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용달차가 거칠게 소형차를 비켜 지나가자 차를 후진시켜 사거리로 이동한 후 좌회전을 해 10미터가량을 이동한 뒤 차를 세웠다.
“이 길로 쭉 나가면 큰 도로로 연결돼요. 차가 별로 안 다니는 길이라 아까처럼 그런 일은 없을 테니 걱정 말고요”
동석이 왼손으로 차 문을 열고 내리려고 할 때 여자는 망설임 끝에 말을 꺼냈다.
“저기요… 혹시… 근처까지만 대신 운전해 주실 수 있나요…”
여자의 얼굴은 창백했다. 동석은 여자의 눈에서 아까보다 더 짙어진 공포를 보았다.
“가까운 곳이라면… 어디?”
“상록빌딩이요… 거기 유한학원이라고 있거든요…”
동석은 여자의 목적지가 가까운 곳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여자가 안심하기 바랐다.
“유한학원이면 요 앞 큰 도로가에 있는 입시 학원 말씀이죠? 그 정도 거리면 가능합니다”
여자는 동석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가 몸을 오른쪽으로 돌려 안전벨트를 매고 머리를 눕혀 좌석에 기댔다. 그리고는 마치 수면 마취를 한 것처럼 스르르 눈을 감았다.
동석과 여자를 태운 차는 빌딩 지하 주차장에 보기 좋게 멈춰 섰다. 동석이 자동차 시동을 끄자 여자는 핸드백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 조심스레 건넸다.
“유한학원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어요.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길을 잘 몰라요… 운전도 아직 서툴고…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동석은 명함을 받아 들고는 조금 과장된 소리로 웃었다.
“선생님이시군요. 저는 김동석이라고 합니다. 아까 그 시장에서 만두 팔고 있어요. 명함 같은 건 없습니다.”
“아…네... 괜찮아요”
여자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동석은 명함을 바지 호주머니에 집어넣다가 갑자기 인상을 찌푸렸다.
“참.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동석은 급하게 인사를 한 후 차문을 열어 밖으로 내리려다 말고 여자 쪽으로 몸을 틀었다.
“나중에 우리 가게 한번 오세요. 만두 진짜 맛있거든요”
동석은 여자를 향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리고는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었다. 여자는 뛰어가던 동석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잠시 후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여자는 핸드백에서 전화기를 꺼내 검지 손가락으로 액정 화면 여기저기를 터치한 후 얼굴에 갖다 댔다.
“경희야. 내일 점심 먹으러 우리 학원으로 올래?”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