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태양은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아이스크림처럼 녹여 버릴 기세였다. 동석은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팔뚝으로 훔치며 가게를 향해 바쁘게 걸었다. 멀리서 가게 앞에 서 너 명이 줄을 서 있는 광경이 보이자 마음이 급해졌고, 가게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가게에 도착해 보니 동민은 만두 포장하랴 카드로 계산하랴 정신없이 바빴다. 동석은 동민을 못 본체 하고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가며 소리쳤다.
“뒤에 손님 주문받을게요 이쪽으로 오세요”
동민은 그제야 동석이 가게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았고 옆에 나란히 선 동석의 엉덩이를 무릎으로 힘차게 걷어찼다. 동민은 ‘흑’하는 비명을 목 안으로 삼키는 동석을 향해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귓속말을 속삭였다.
“배달 주문이 얼마나 밀렸는지 알아? 미쳤어?”
동민은 동석에게 잡아먹을 듯 눈을 흘긴 후 벽에 걸린 오토바이 키를 챙겨 부리나케 가게 문을 나섰다.
동석이 시장에서 만두 가게를 시작한 것은 2년이 조금 안 됐다. 만두라는 것이 한 끼 식사로 독자적인 지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짜장면이나 라면 먹을 때 같이 먹는 곁다리 음식이니 만두만 팔아서는 절대 돈이 안 된다고 다들 말렸다. 그러나 동석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한 달 동안 서울에서 유명하다는 만두 집을 다 둘러보았고 차별화를 위해 이것저것 재미있고 다양한 메뉴를 개발했다. 만두 속도 가게가 자리 잡을 때까지는 이익 생각 안 하고 푸짐하게 만들기로 결심하고 미련하게 밀어붙였더니 한 해가 조금 지나자 입 소문이 나기 시작하더니 올해 들어 손님이 부쩍 늘었다. 7월 들어 날씨가 너무 더운 탓에 손님이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점심시간이나 저녁 시간에는 항상 만두를 사러 온 손님들로 가게 앞이 북적거렸다.
동석이 마지막 손님의 카드를 받아 계산을 마쳤을 무렵 동민이 배달을 마치고 가게로 돌아왔다. 헬멧을 벗은 이마에 땀에 절은 머리카락이 눌려 붙어 있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벽에 걸린 얼룩 투성이 거울부터 찾았다.
“잘난 인물 다 썩는다 썩어. 내가 진짜 이러고 살아야 돼?... 에이… 씨..”
동민은 눌어붙은 앞 머리를 정리하다가 거울에 비친 동석을 발견하고는 몸을 돌려 따졌다.
“미쳤어? 혼자서 바빠 죽을 줄 알면서 어디 가서 뭘 하다가 온 거야? 그 여자랑 놀러 갔냐?”
동석은 대답대신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하고는 동민에게 물었다.
“1시 20분이다. 벌써 20분이나 지났네. 오늘은 네가 갔다 와”
그러자 동민은 훨씬 더 사납게 동석을 노려 보았다. 동석은 동민의 반응을 보고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새끼… 고집은… 내가 갔다 올 테니 가게 잘 보고 있어”
동석은 찜통에서 왕만두를 한 개 꺼내 비닐봉지에 담아 가게 문을 나섰다.
동석이 현관문을 열었을 때 아버지의 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거실 안의 뜨거운 열기는 갈 곳을 몰라 배회하고 있었다. 동석은 거실 벽으로 난 큰 유리 창문을 활짝 열었다. 집안의 공기가 더워서기도 했지만 아버지에게 자신이 왔다는 사실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동석은 부엌으로 가 냉장고 문을 열어 유리 재질의 사각 반찬통 네 개를 꺼냈다. 반찬통 뚜껑을 열고 반찬을 조금씩 덜어 작은 접시에 담았다. 냉장고 맞은편의 전기밥솥에서 밥도 한 그릇 퍼 담았다. 마지막으로 접시 위에 가져온 만두 하나를 담아 놓았다. 아버지의 방을 힐끗 쳐다보았지만 여전히 굳게 문이 닫혀있었다. 동석은 부엌을 빠져나와 현관에서 신발을 챙겨 신고서는 아버지가 있는 방을 향해 말했다.
“설거지는 제가 할 테니까 빈 그릇은 싱크대 속에 넣어 놓기만 하세요”
아버지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동석은 현관을 나와 좁은 마당으로 이어지는 대문을 열고 집밖으로 나왔다. 곧장 가게로 가려다 말고 대문에 귀를 댔다. 철제 대문의 뜨거운 열기로 피부가 타 들어가는 고통을 느낄 때쯤 아버지의 방문이 힘없이 삐걱거리며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동민은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동석이 가게로 들어오자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동석의 말문을 먼저 막으려는 듯 동석을 향해 쏘아붙였다.
“언제까지 밥 차려 줄 건데? 무슨 장애인도 아니고 우리가 집에서 노는 백수도 아닌데 언제까지 끼니때마다 꼬박꼬박 밥을 챙겨줘야 돼?”
“저녁 장사 준비는 다했어?”
동석은 동민의 질문에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동민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말 안 통하는 건 둘이 똑같다니까. 지금 하고 있잖아. 근데, 내가 한 말 생각해 봤어?”
“뭐?”
동석은 금고를 열어 지폐를 세면서 건성으로 대답했다.
“동생한테 관심 좀 가져라 응?”
동석은 동민을 바라보며 정말 생각 안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친구가 소개해 준 회사로 일하러 간다고 했잖아”
“아. 그 영업직? 영업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만두 찌고 배달하는 것보다 더 힘들걸?”
“아무렴 만두 장사보다 못하려고”
동석은 동민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알았어. 해 봐.”
“그럼 이백만 원 주는 거다?”
“이백만 원? 무슨 이백만 원?”
동민의 표정이 밝아지려다가 말고 다시 일그러졌다.
“내가 말했잖아 일 시작하려면 이백만 원 정도 필요하다고. 내 말 제대로 듣기나 해?”
“야 인마. 돈 벌러 일하러 가는 거지 돈 쓰러 일하러 가? 점심은 만두 싸가고 차비는 내가 교통카드 만들어 주면 될 거 아냐. 돈들 일이 뭐 있어? 돈 필요하면 월급 받은 뒤에 써”
동민은 답답하다는 표정이었다.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가게 문을 거칠게 열어 그대로 나가버렸다.
동민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동석이 표정이 어두워졌다. 동민은 한 달 전에 군에서 제대했다. 자신이라면 아직은 아침마다 기상나팔 소리가 환청으로 들려 자동으로 눈이 떠질 것 같은데 어떻게 된 놈인지 제대한 다음 날부터 완벽한 양아치 생활로 되돌아가버린 동생을 보고 기가 찼다. 내심 동생이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해 잘 살아주길 바랐지만 지금 정신 상태로는 어디를 가더라도 일주일 이상 못 버틸 것이라고 확신했다.
다음 날 동민은 평소보다 늦게 가게로 왔다. 어제 일로 단단히 삐쳤는지 동석과는 눈길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늘 하던 대로 밀가루 반죽 대야에 밀가루를 대충대충 부었다. 열받았으니 건들지 말라는 시위를 하는 것 같았다.
“김사장”
만두 가게 옆에서 천 원 샵 콘셉트로 이것저것 다양한 물건을 싸게 파는 장사를 하는 박정태가 가게 밖에서 동석을 불렀다. 동석과 비슷한 시기에 장사를 시작했고 동석이 15살이나 어렸지만 둘 사이는 꽤 가까웠다. 박정태는 동석을 보고 늘 김사장이라고 불렀는데 동석은 처음에 민망해서 한사코 그렇게 불리기 거부했지만 이제는 자기도 ‘박사장님’으로 화답하는 것으로 부끄러운 기분을 덜어 내고 있었다.
“네. 박사장님. 아침 식사하셨죠?”
“우리 가게로 와서 커피 한잔 안 할 테야?”
박정태는 평소와는 다르게 풀이 죽어 있었다. 동석은 그러겠다고 대답하고 가게 문을 나서려는데 한쪽에서 반죽을 하고 있는 동민이 신경 쓰였다. 동민에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뭐라도 한마디 하려다가 관두고 가게를 나왔다.
박정태는 평소 앉아 일하는 먼지 앉은 책상 한쪽 구석에 믹스 커피 두 잔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동석이 들어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종이컵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소주를 마셨을 때나 나오는 장탄식을 했다.
“김사장. 송사장 이야기 들었어?”
“아뇨… 못 들었는데 무슨 일 있어요?”
동석은 박정태를 따라 종이컵을 입으로 가져가며 물었다.
“채사장이 보증금을 삼천만 원 올려 달라고 했데”
동석은 커피를 마시려다 말고 그대로 동작을 멈췄다. 아까부터 박사장의 표정이 어두웠던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휴… 김사장은 6개월 남았지? 재계약하려면?”
“네. 6개월 남았죠”
“난 5개월 남았거든… 우리도 삼천만 원 올려 달라고 하겠지?”
박정태는 한 손으로 종이컵을 허공에서 의미 없이 반복적으로 둥글게 돌렸다.
“그럴 가능성이 높겠네요.”
박정태는 동석에게 속에 있던 말을 꺼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둘이 같이 채사장을 만나보는 건 어때?”
박정태는 돈 문제에 관해서는 티끌만큼도 양보가 없다고 소문이 자자한 건물주를 혼자 상대하려니 영 부담스러웠다. 동석이 성격도 싹싹하고 넉살도 좋아 둘이서 함께 재계약을 협상해 보면 어떨까 싶었다. 동석은 달짝지근한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는데요. 둘이 편을 짜서 자신을 상대한다고 오히려 괘씸하게 생각할 수도 있고. 채사장이 그런다고 호락호락하게 사정 봐줄 사람도 아닌 것 같고요”
“그렇지?... 나도 그게 걱정이야…”
박정태는 충분히 예상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삐쭉 내밀었다.
동민은 입이 댓 발 나온 채로 밀가루 반죽을 주물렀다. 동생이 삐쳐 있으면 그래도 무슨 말이라도 한마디 할 줄 알았는데 말없이 가게를 나가버리는 걸 보고서는 하룻밤 자고 가라앉았던 부아가 다시 치밀었다.
“씨발. 이런 병신 같은 만두 팔아서 뭘 어쩌겠다는 건지”
동민은 목덜미로 흘러내리는 땀을 밀가루 묻은 손바닥으로 어쩌지 못하고 손등으로 목을 훔치며 짜증을 냈다. 그때 손님이 한 명이 가게로 찾아왔다.
“지금 만두 살 수 있어요?”
검은 선글라스가 얼굴을 반쯤 가리는 여자 손님이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다른 메뉴는 없고 왕만두만 있어요. 5개 정도”
“한 개 얼마죠?”
“2,500원이요”
“그럼 네 개 싸주세요”
여자는 주문을 한 뒤 어깨에 메고 있던 핸드백 단추를 열었다. 동민이 만두 네 개를 박스에 넣어 포장한 다음 비닐봉지에 넣어 여자에게 건넸을 때 여자는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여기 학원 근처야. 거의 다 왔어.”
여자는 동민이 건넨 비닐봉지를 받아 들고는 손에 쥐고 있던 오만 원짜리 한 장을 내밀었다. 동민이 금고를 열어 만 원짜리 네 장을 꺼냈을 때 여자는 이미 가게를 떠나 버린 후였다. 동민은 여자를 향해 잔돈 받아가라고 소리치려다가 입을 닫았다. 그리고는 멀어져 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여자는 점점 더 멀어져 갔고 어느 순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 완전히 묻혀 버렸다. 동민은 만 원짜리 네 장을 바지 주머니에 슬그머니 집어넣고는 배시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