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영은 동민이 나간 문을 향해 악에 받힌 목소리로 소리쳤다. 옆에서 보고 있던 서선생이 혜영의 어깨를 두드리자 혜영은 갑자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더니 털썩 주저 않아 울어 대기 시작했다.
동민이 배달 갔던 학원에서 가게로 돌아왔을 때 자신을 바라보는 동석의 눈빛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동석의 시선을 피하려고 괜히 쓸데 없이 이것저것 물건을 들었다 놓았다 했지만 동석이 계속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동석의 시선을 마주하며 말했다.
“형. 학원 선생들이 단골이라는 건 잘 아는데 이까짓 만두 팔려고 자존심까지 팔지는 말자 응?”
“여자가 흥분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를 못했어. 니 말도 한 번 들어보자”
동민은 동석이 의외로 차분하게 나오자 더 무서웠다.
“그러니까 그년이 처음에 3인분을 시켰어. 포장까지 다 해 놓고 출발하려는데 전화가 온거야. 1인분 취소 안되냐고. 열 받잖아 안그래? 안된다고 딱 잘랐지. 근데 출발하려는데 그년 투덜거릴 면상을 생각하니까 졸라 짜증나는거야. 그래서 원하는 대로 2인분을 갖고 갔어. 그러니까 왜 3인분 아니냐며 지랄이네? 형도 그 여자 알잖아. 만두 식었다고 지랄하고, 크기가 평소에 비해 작은 것 같다고 지랄하고, 만두 속 재료에 고기가 별로 없다고 지랄지랄하고”
“그러니까 그 여자가 3인분에서 1인분 취소하면 안되냐고 물었고, 넌 안된다고 말해 놓고는 말도 없이 2인분을 배달한거네. 맞아?”
동민은 동석의 차가운 눈빛을 외면하기 위해 슬며시 옆으로 시선을 돌리며 얼버무렸다.
“뭐 그런거긴 한데…”
동석은 동민의 대답을 듣자마자 벽에 걸린 오토바이 키를 낚아 채 듯이 집어 들고 가게 문을 나섰다.
동석은 학원 강사실 문 앞에서 섰다. 문을 두드리자 안쪽에서 들어오라는 말이 들렸다. 문을 열어 강사실 안을 둘러 보았다. 책상이 대충 15개 정도 있었고 그 중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다섯 명 정도였다. 동석은 문에서 정면으로 늘어서 있는 책상 열의 세 번 째 자리에 앉은 사람이 가게로 전화를 건 여자라고 짐작했다. 사무실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동석을 힐끗 쳐다보았지만 그 여자만 눈길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혜영은 동석이 왔음을 애써 모른 체 했다. 동석이 혜영을 향해 다가가자 혜영의 표정도 굳어졌다.
동석은 여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았다. 배달하는 양아치 같은 놈에게는 굴욕을 당했지만 자신은 그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니란 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했다. 동석은 주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직접 여자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는 비굴함을 보임으로써 여자의 무너진 존엄성을 높여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실례합니다. 만두 가게 주인입니다. 전화 주신 분이시죠? 직접 사과하러 왔습니다.”
혜영의 표정이 복잡미묘해졌다. 처음에는 갑작스러운 동석의 방문에 놀랐고 이제는 배달하는 놈에게 당한 굴욕감을 어떻게 되갚아 줄지, 이 상황을 지켜보는 주위 선생님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직원을 잘못 교육한 제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동석을 투명인간 취급하던 혜영은 천천히 옆으로 고개를 돌려 동석을 노려보았다.
“저희가 평소에 그쪽 가게에서 만두 많이 팔아주는 거 알죠? 우리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그런 양아치 같은 새끼에게 배달을 맡기면서 이 동네에서 장사할 생각을 해요?”
“죄송하다는 말 밖에 드릴 말이 없습니다. 앞으로 정말 주의하겠습니다”
때마침 수업을 끝낸 세진이 강사실 문을 열었다. 혜영은 곁눈질로 세진을 확인했다.
“가게 주인이 직접 찾아와서 이렇게 까지 사과하니까 받아는 들일께요. 하지만 앞으로 절대 그쪽 가게 만두는 사먹지 않을거고, 혹시라도 우리 선생님들 중에서 누군가가 모르고 주문해도 오늘 그 양아치 새끼는 학원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하세요. 아시겠어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가보세요”
차가운 마지막 한마디와 함께 혜영은 고개를 돌려 책상 정면을 향했다. 할말 끝났으니 나가라는 투였다. 동석은 눈길을 외면하는 혜영에게 다시 머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를 한 후, 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가 지켜 보고 서 있던 세진과 눈이 마주쳤다.
당황스러운 재회였다. 동석은 세진에게 짧은 눈 인사를 하고서는 강사실을 빠져 나가 빠른 걸음으로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동석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어느 샌가 세진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만두 정말 맛있더라구요”
“네?”
동석은 세진을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친구가 거기 만두 사왔길래 먹어봤어요. 보통 만두하고는 완전 차원이 다르던데요?”
동석은 세진이 웃으며 만두 맛을 칭찬해주자 다소 긴장이 풀리는기분이었다.
“감사합니다. 좋게 봐주셔서”
“특히 만두 피가 쫄깃쫄깃하고 맛있더라구요.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어요?”
“직접 만듭니다. 대부분 공장에서 만든 만두 피를 사용하는데 저희는 직접 반죽해요. 만두피가 만두 속만큼 중요하거든요”
“혼자서 일이 많겠어요”
“처음에는 혼자 다했는데 요즘은 제 동생이…아까 그 소란을 아시는지 모르겠지만…제 동생이 배달도 하고 반죽도 도와줍니다”
세진은 동석의 대답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시구나…만두피는 동생분이 반죽하는거군요? 동생분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동석은 세진의 질문에 그렇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동석은 어쩐지 엘리베이터 문이 평소보다 훨씬 빨리 닫히는 느낌이 들었고 좁아지는 문틈 사이로 세진의 눈동자가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