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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원 Aug 09. 2024

새로운 인연, 새로운 실험(2)

선글라스를 낀 여자는 상록빌딩이라고 새겨진 나무 재질의 입간판이 입구에 붙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잠깐 기다렸다가 문이 열리자 세진이 활짝 웃으며 양팔을 벌렸다.


“경희야! 얼마만이야. 온다고 힘들었지?”


세진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걸어 나오는 경희를 격하게 껴안았다.


“참 빨리도 불렀다. 너 이사간 지 한 달이 다 돼 가. 알아?”


경희는 타박하 듯 한 손으로 세진의 등을 두 번 때렸다.  


“강사 휴게실이 있으니까 거기로 가서 이야기 하자”


세진은 경희를 감싸 안았던 양 팔을 풀고 경희의 손을 잡아 복도 끝으로 이끌었다.

경희는 선글라스를 머리 위로 올리고 들고 온 비닐 봉지를 휴게실의 테이블 위에 조심스레 올려 놓았다.


“어떻게 됐어?”


세진은 진지한 눈빛으로 경희에게 물었다.  


“불합격”

“그래?”

“뭔가 분위기도 건들건들하고 불량해 보이고 별로던데?”

“젊은 남자였지?”


다시 확인하듯 묻는 세진은 미련이 남는 눈치였다.


“응. 뭐가 불만인지 오만상을 쓰고 밀가루 반죽하고 있더라. 어떻게 찾은 남자야? 시장에서 만두 파는 남자라니 좀 의외다?”

“음…”


세진은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한동안 테이블 위에 놓인 만두에 시선을 고정했다.


“만두나 먹자”


세진은 잠깐 동안의 침묵을 깨고 생각을 떨쳐 내 버리려는 듯 테이블 위의 나무젓가락을 집어 들어 종이 포장지를 힘껏 뜯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생각난 듯 호주머니에서 오만원을 꺼내 경희에게 건넸다.


“맨날 부탁만 하네. 이번에도 고마워 경희야”


경희는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뭐래. 오늘 만두는 내가 사는 거야. 집에 돌아갈 때 만두 가게 찾아가서 잔돈 돌려 받을거니까 신경쓰지마.”





경희와 만나고 몇 일이 흘렀다. 세진이 강사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맞은편 책상을 쓰는 권혜영이 평소와 달리 반가운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이선생님 점심 안 드셨죠? 만두 어때요? 근처에 진짜 맛있는 만두집이 있거든요”


세진은 아침을 늦게 먹어 점심 생각이 없었고 강요하는 듯한 혜영의 말투가 마음에 안 들어 거절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만두라는 말에 생각을 바꿨다.


“네 그렇게 해요”


혜영은 세진이 쉽게 승낙하자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그럴 줄 알고 이선생님 것까지 미리 시켜놓았다니까요. 서선생님도 같이 먹을 거라서 3인분 시켰어요. 제가 카드로 결제할 테니까 나중에 주세요. 1인분에 오천원이에요”


그때 밖에서 누군가 강사실 문을 거침없이 두드렸다. 안에서 들어오라는 말도 하기 전에 급하게 사무실 문이 열렸다. 헬멧을 쓴 남자가 들어와 매너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어투로 소리쳤다.


“만두 배달이요”


헬멧이 얼굴 윤곽을 가리기는 했지만 세진은 배달 온 남자의 얼굴이 몇 일 전 자신 대신 운전을 해준 남자가 아니란 것을 바로 알아 차렸다.


“저쪽 휴게실로 갖고 와요. 서선생님, 이선생님 휴게실로 가요”


혜영은 배달 온 남자와 세진에게 휴게실로 가자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헬멧을 쓴 동민은 잠시 멈춰 섰다가 혜영이 시키는 대로 휴게실로 이동한 후 검은 비닐 봉지에서 만두 한 박스를 꺼내 테이블 위에 조심성 없이 던지듯 놓았다.


“2인분 만원이요”


혜영은 놀란 눈으로 동민에게 물었다.


“2인분? 아까 1인분 취소 안 된다고 했잖아요? 3인분 아니에요?”

“원하는 대로 2인분 갖고 왔잖아요”

“3인분 온다고 해서 지금 세 사람이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잖아요. 여기 세 사람 안보여요?”


혜영은 자신의 말이 옳지 않느냐는 듯 서선생과 세진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동민은 살짝 한숨을 내 쉬고는 대답했다.


“그럼 기다려요. 1인분 더 갖고 올 테니까”

“지금 그게 말이 돼요?”


서로 성격이 만만하지 않겠다고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던 두 사람의 대화는 최대한의 자제심으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있다가 동민이 당긴 방아쇠로 폭발하고 말았다. 동민은 테이블 위에 놓아 두었던 만두를 집어 들어 다시 비닐 종이 속으로 거칠게 구겨 넣었다.


“먹지마. 안 팔아”


동민이 만두를 집어 들고 휴게실을 나가버리자 혜영도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뭐 저딴게 있어. 야! 너 몇살이나 처 먹었어. 장사 똑 바로 해”


혜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동민은 가던 길을 멈추고 휴게실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난폭하게 헬멧을 벗고 혜영을 노려보며 쏘아댔다.


“만두 들고 왔다갔다한다고 사람 우습게 보여? 너 평소부터 싸가지 없어서 진작부터 벼르고 있었어. 알아? 그렇게 잘났으면 만두 같은 싸구려 음식 먹지 말고 비싼 거 처먹어 이년아”


동민은 세진과 서선생도 위협하듯 흘깃 쳐다보고는 휴게실을 빠져나갔다. 혜영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두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완전 또라이 새끼 아냐. 가게 전화번호 어딨어. 어디서 저런 쌩양아치 새끼한테 배달을 맡기는거야”


혜영은 동민이 나간 문을 향해 악에 받힌 목소리로 소리쳤다. 옆에서 보고 있던 서선생이 혜영의 어깨를 두드리자 혜영은 갑자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더니 털썩 주저 않아 울어 대기 시작했다.




동민이 배달 갔던 학원에서 가게로 돌아왔을 때 자신을 바라보는 동석의 눈빛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동석의 시선을 피하려고 괜히 쓸데 없이 이것저것 물건을 들었다 놓았다 했지만 동석이 계속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동석의 시선을 마주하며 말했다.


“형. 학원 선생들이 단골이라는 건 잘 아는데 이까짓 만두 팔려고 자존심까지 팔지는 말자 응?”

“여자가 흥분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를 못했어. 니 말도 한 번 들어보자”


동민은 동석이 의외로 차분하게 나오자 더 무서웠다.


“그러니까 그년이 처음에 3인분을 시켰어. 포장까지 다 해 놓고 출발하려는데 전화가 온거야. 1인분 취소 안되냐고. 열 받잖아 안그래? 안된다고 딱 잘랐지. 근데 출발하려는데 그년 투덜거릴 면상을 생각하니까 졸라 짜증나는거야. 그래서 원하는 대로 2인분을 갖고 갔어. 그러니까 왜 3인분 아니냐며 지랄이네? 형도 그 여자 알잖아. 만두 식었다고 지랄하고, 크기가 평소에 비해 작은 것 같다고 지랄하고, 만두 속 재료에 고기가 별로 없다고 지랄지랄하고”

“그러니까 그 여자가 3인분에서 1인분 취소하면 안되냐고 물었고, 넌 안된다고 말해 놓고는 말도 없이 2인분을 배달한거네. 맞아?”


동민은 동석의 차가운 눈빛을 외면하기 위해 슬며시 옆으로 시선을 돌리며 얼버무렸다.


“뭐 그런거긴 한데…”


동석은 동민의 대답을 듣자마자 벽에 걸린 오토바이 키를 낚아 채 듯이 집어 들고 가게 문을 나섰다.  




동석은 학원 강사실 문 앞에서 섰다. 문을 두드리자 안쪽에서 들어오라는 말이 들렸다. 문을 열어 강사실 안을 둘러 보았다. 책상이 대충 15개 정도 있었고 그 중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다섯 명 정도였다. 동석은 문에서 정면으로 늘어서 있는 책상 열의 세 번 째 자리에 앉은 사람이 가게로 전화를 건 여자라고 짐작했다. 사무실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동석을 힐끗 쳐다보았지만 그 여자만 눈길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혜영은 동석이 왔음을 애써 모른 체 했다. 동석이 혜영을 향해 다가가자 혜영의 표정도 굳어졌다.


동석은 여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았다. 배달하는 양아치 같은 놈에게는 굴욕을 당했지만 자신은 그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니란 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했다. 동석은 주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직접 여자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는 비굴함을 보임으로써 여자의 무너진 존엄성을 높여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실례합니다. 만두 가게 주인입니다. 전화 주신 분이시죠? 직접 사과하러 왔습니다.”


혜영의 표정이 복잡미묘해졌다. 처음에는 갑작스러운 동석의 방문에 놀랐고 이제는 배달하는 놈에게 당한 굴욕감을 어떻게 되갚아 줄지, 이 상황을 지켜보는 주위 선생님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직원을 잘못 교육한 제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동석을 투명인간 취급하던 혜영은 천천히 옆으로 고개를 돌려 동석을 노려보았다.


“저희가 평소에 그쪽 가게에서 만두 많이 팔아주는 거 알죠? 우리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그런 양아치 같은 새끼에게 배달을 맡기면서 이 동네에서 장사할 생각을 해요?”

“죄송하다는 말 밖에 드릴 말이 없습니다. 앞으로 정말 주의하겠습니다”


때마침 수업을 끝낸 세진이 강사실 문을 열었다. 혜영은 곁눈질로 세진을 확인했다.


“가게 주인이 직접 찾아와서 이렇게 까지 사과하니까 받아는 들일께요. 하지만 앞으로 절대 그쪽 가게 만두는 사먹지 않을거고, 혹시라도 우리 선생님들 중에서 누군가가 모르고 주문해도 오늘 그 양아치 새끼는 학원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하세요. 아시겠어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가보세요”


차가운 마지막 한마디와 함께 혜영은 고개를 돌려 책상 정면을 향했다. 할말 끝났으니 나가라는 투였다. 동석은 눈길을 외면하는 혜영에게 다시 머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를 한 후, 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가 지켜 보고 서 있던 세진과 눈이 마주쳤다.


당황스러운 재회였다. 동석은 세진에게 짧은 눈 인사를 하고서는 강사실을 빠져 나가 빠른 걸음으로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동석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어느 샌가 세진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만두 정말 맛있더라구요”

“네?”


동석은 세진을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친구가 거기 만두 사왔길래 먹어봤어요. 보통 만두하고는 완전 차원이 다르던데요?”


동석은 세진이 웃으며 만두 맛을 칭찬해주자 다소 긴장이 풀리는기분이었다.  


“감사합니다. 좋게 봐주셔서”

“특히 만두 피가 쫄깃쫄깃하고 맛있더라구요.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어요?”

“직접 만듭니다. 대부분 공장에서 만든 만두 피를 사용하는데 저희는 직접 반죽해요. 만두피가 만두 속만큼 중요하거든요”

“혼자서 일이 많겠어요”    

“처음에는 혼자 다했는데 요즘은 제 동생이…아까 그 소란을 아시는지 모르겠지만…제 동생이 배달도 하고 반죽도 도와줍니다”


세진은 동석의 대답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시구나…만두피는 동생분이 반죽하는거군요? 동생분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동석은 세진의 질문에 그렇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동석은 어쩐지 엘리베이터 문이 평소보다 훨씬 빨리 닫히는 느낌이 들었고 좁아지는 문틈 사이로 세진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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