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대학을 졸업하고 4월에 취업했던 딸이 처음으로 부산 집에 돌아왔다.
“엄마, 저 왔어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딸은 동묘에서 샀다는 커다란 잠바에 대학교 때 입던 낡은 패딩까지 껴입고 있었다. 화장기 없는 맑은 얼굴에 똑같은 안경까지. 그 모습이 고등학생 시절 그대로라 웃음이 나왔다.
“어쩜 이렇게 하나도 안 변했니? 아가씨가 된 게 아니라 그냥 그대로네.”
나는 볼을 꾹 눌러 뽀뽀를 해주고, 엉덩이를 툭툭 두드렸다.
“변할 게 뭐 있나요? 그냥 저죠.” 딸은 멋쩍게 웃었다.
딸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감탄을 연발했다.
“우리 집이 이렇게 넓었나요?”
다섯 평짜리 원룸에서 살던 딸은 마치 집을 구경하듯 거실을 거쳐 부엌까지 열 발자국도 채 되지 않는 거리를 어슬렁거렸다. 소파에 몸을 푹 던지고 TV를 켜며 웃는다.
“서울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늘 치이는 기분인데, 부산은 여유가 있어서 참 좋아요.”
장을 보지 않아도 냉장고에 음식이 가득 차 있고, 물을 사지 않아도 정수기에서 마실 물이 나오는 평범한 집. 보일러를 틀지 않아도 늘 따뜻한 방. 그런 사소한 것들이 딸에게는 천국처럼 보이는 듯했다.
딸은 1월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2월부터 새 회사로 옮기기로 했다. 새 회사는 업계에서 알 만한 큰 회사라며 기대에 차 있었다. 하지만 낡은 옷을 입고 있는 딸의 모습이 신경 쓰였다. ‘새 회사에 들어가려면 외모부터 세련돼 보여야 할 텐데…’ 하는 마음에 백화점에 데려가 이것저것 사주려 했지만, 딸은 관심이 없다.
“회사에 출근할 때 이런 옷 입고 다니는 거야?”
“우리 업계에서는 청바지가 정장이에요. 대부분 추리닝 차림인데요. 어떤 사람은 팔꿈치에 구멍 난 옷도 입고 다녀요. 우리 회사에서 제일 패셔니스타가 위아래 세트 추리닝 입은 사람인 걸요.”
딸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애니메이션 원화를 그리는 딸의 회사 사람들은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할 뿐, 외모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했다. 어린 시절, 어디엔가 깊이 빠져 살던 ‘오타쿠’ 출신들이 많은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외모보다는 작품이 곧 자신을 대변하는 세계였다.
딸의 회사 얘기를 듣다 보니 세대 차이가 확연히 느껴졌다. 딸은 회사에서 직원들끼리 점심을 같이 먹는 일이 거의 없다고 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각자 조용히 나가 자기 시간을 보내고, 끝나면 자리로 돌아와 다시 업무를 시작한단다.
나는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딸에게 “선배들에게 인사를 잘해야 한다”거나 “일보다 인간관계를 잘해야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는 조언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 세대에게 회사 인간관계 자체가 거의 없어요. 공적인 관계와 개인 생활은 철저히 분리돼 있어요.”
딸의 말처럼, 회사에서의 인간관계는 더 이상 스트레스의 대상이 아니었다. 3개월마다 주어지는 과제를 통과하지 못하면 회사를 떠나야 하는 엄격한 룰만 있을 뿐이었다. 업무 협조는 모두 메신저로만 이루어지고, 부당한 지시나 갑질이 끼어들 틈조차 없었다.
옛날 방식으로 지금의 새내기를 가르치려면 말이 안 통하는 건 당연한 것 같다. 딸의 이야기를 들으며 회사의 신입들에게 예전 방식으로 가르치려들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연휴 동안 뭐 할 거야?”
“글쎄요. 그냥 뒹굴뒹굴 아무것도 안 해볼라고요.”
서울의 햇빛도 들지 않는 다섯 평짜리 방에서 구겨지듯 지내던 딸은 소파에 나무늘보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아무 걱정 없이 사지를 축 늘어뜨리고 몸과 마음을 쭉 펴기를 바란다. 충분히 기지개를 켜고, 쌓였던 피로와 구겨진 마음을 천천히 펼치길. 필요한 순간마다 언제든 다시 시작할 힘을 얻기 위해서.
부산의 여유로운 공기 속에서 딸이 천천히 자신을 회복해 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