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날은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맞는 명절이었다. 큰 형님께서 미리 앞으로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선언하셨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어머니가 살던 집은 큰 형님이 가끔 들러 정리하고 있었고, 살림살이도 대부분 처분된 터라 음식을 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그래도 남편과 나는 어머니의 산소를 찾아가 차례를 모시기로 마음먹고 간단한 차례상을 준비해 두었다. 사과, 배, 감을 하나씩과 북어포, 명태전, 소주 등을 가방에 담아 정성껏 챙겼다.
설날 전날, 큰 형님이 가족 톡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내일 거제도로 올 사람?"
나는 얼른 답장을 보냈다.
"제가 11시까지 갈게요."
그리고 준비한 제물 사진을 올렸다. 작은 형님이 떡과 생선을 준비하겠다고 했고, 큰 형님은 밥과 나물을 가져오겠다고 했다. 산소에서 차례를 모실 준비가 차근차근 갖춰졌다. 아랫동서는 집에서 먹을 반찬을 준비하고, 막내는 생수를 가져온단다. 누나들까지 일곱 남매가 설날 아침 어머니의 집에 모이기로 했다.
설날 아침, 거제도로 내려가는 길에 마음이 허전했다.
"어머니가 안 계시니 삶의 목표가 하나 사라진 것 같아."
남편이 물었다.
"삶의 목표가 뭔데?"
"어머니께 자주 찾아뵙고 맛있는 밥을 차려드리는 게 내 삶의 중요한 목표인데, 이제는 그럴 수 없잖아. 어머니가 안 계신 집은 정이 안 가. 가고 싶지가 않아."
남편이 말했다.
"어머니께서 야무지게 살라고 하셨잖아. 야무지게 살면 되지."
그래, 야무지게 살아야지. 시골로 내려가는 내내 남편과 어머니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전 11시, 일곱 남매와 손자들까지 집 안이 가득 찼다.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자식들을 보며 무척이나 반가워하셨을 텐데, 형제들의 얼굴에는 아쉬움과 허전함이 묻어 있었다. 각자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지만, 어머니가 없는 집은 구심점이 사라진 듯했다. 아래동생은 집 안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마당을 서성였다.
"한 숟갈 더 먹어라, 고기도 먹어 봐라, 과일도 먹어 봐라."
어머니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밥을 먹어도 허전했다.
"어머니는 참 훌륭하셨어요. 우리 형제가 이렇게 우애 깊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께서 현명하고 따뜻하게 믿어주셨기 때문이에요." 둘째 형님이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늘 자식, 손자들을 걱정하시며, 힘든 농사일로 거둔 곡식과 채소를 보내주셨다. 우리 형제들이 바르게 자라길 늘 기도해 주셨고, 그 덕분에 큰 탈 없이 잘 살아갈 수 있었다. 산소에 가서 정성껏 차례를 모시고 큰절을 올렸다.
"어머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어머니가 계신 그곳에도 새해가 있나요? 어디에 계시든, 무엇을 하시든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
집으로 돌아와 각자 가져온 음식들로 한 상을 차렸다. 경상도 남자들은 형제들끼리도 서로 안부를 묻거나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같은 공간에서 밥을 나누는 것만으로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함께하는 듯했다.
식사가 끝나자 모두가 조용히 일어섰다.
"다음 명절에 또 보자."
겉으로는 웃으며 인사했지만, 돌아가는 발걸음마다 허망함이 스며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어머니의 사랑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가슴속에서 계속 이어진다는 것을.
"우리, 다 같이 야무지게 살자."
남편이 형제들에게 건넨 한마디가 마음속 깊이 남았다.
어머니는 자식 하나하나에게 소중한 사랑을 주셨다. 이제 그 사랑을 우리가 이어가야 한다. 삶은 계속 흐르고, 우리는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가야 한다. 어머니께서 뿌려주신 사랑의 씨앗을 우리 아이들에게 전하며, 가족의 의미를 지켜 나가야겠다. 어머니께서 늘 바라셨던 것처럼, 우리는 서로 의지하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며 야무지게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