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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과 연필

소정의 일상 큐레이팅

by 별빛소정

주말 잘 보내셨나요? 소정의 일상 큐레이팅 시작해 볼게요. 소소한 일상 속에서 느낀 감정들이, 어쩌면 여러분의 마음에도 작은 울림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토요일은 2월의 첫날이었죠. 새벽부터 내리던 비를 뚫고 독서 모임에 다녀왔답니다. 독서 모임은 제 삶의 등불 같아요. 그곳에 갈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새로운 에너지가 가득 채워져 돌아오곤 하죠. 모임이 끝나고 2차로 차를 마시러 갔지만, 딸이 서울로 떠나는 날이라 서둘러 나왔어요.


집에 도착해 딸을 위해 점심을 준비했습니다. 좋아하는 삼겹살, 샐러드, 그리고 구수한 된장찌개로 한 상 가득 차렸죠. 함께 집밥을 먹으며 새 직장 이야기, 이사 이야기, 친구 이야기까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니 시간이 참 빠르게 흘렀어요. 점심을 다 먹고 12시쯤 딸을 지하철 역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서울로 떠나는 딸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어요. 아직 제 눈에는 한없이 어린아이 같은데, 혼자서 직장 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한편으론 든든하기도 하더군요.


집으로 돌아와 딸의 흔적이 남아있는 식탁과 방을 정리하며 쓸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잠시 후 남편이 스크린 골프를 마치고 돌아왔어요. 딸이 떠났다는 말에 "내 방이 다시 생겼다!"라며 좋아하더라고요. 그 모습에 허탈한 웃음이 났어요.


그날 오후는 새로 시작한 그림 공부를 하러 가는 날이었어요. 비가 와서 남편에게 차로 데려다 달라고 했습니다. 화실에 도착해 앞치마와 팔토시를 끼고, 네 자루의 다양한 연필로 선 긋기 연습을 했어요. 가로선, 세로선, 그리고 굵기가 달라지는 선들까지 차례차례 그려나갔죠. 나뭇잎과 은행잎도 그려보고, 점선도 그려봤어요. 처음 잡아 본 연필에 힘을 얼마나 줬던지, 팔 근육이 얼얼하더군요.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아무 생각없이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두 시간이 훌쩍 지나고, 남편이 데리러 왔어요. 책을 빌리기 위해 금정도서관에 들렀습니다. 은유 작가님의 '해방의 밤', '다가오는 말들' 등 다섯 권이나 빌렸어요. 한강 작가님의 '바람이 분다, 가라'도 함께요. 대출 기간이 2주라니, 이틀에 한 권씩 읽어야 할 것 같네요.


도서관을 나오면서 남편이 요즘 회를 안 먹어서 몸이 아프다고 하더군요. 무슨 말인지 몰라도, 너무 먹고 싶다는 신호로 이해하고 횟집에 갔습니다. 모둠회와 소주한병을 나눠 먹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초저녁부터 눈꺼풀이 무거워지더라고요. 7시쯤 잠이 들었는데, 12시가 넘어서 잠에서 깼어요.


요즘 글쓰기에 푹 빠져 있거든요. 하루 종일 글 생각만 해요. 밥을 먹으면서도, 남편과 대화를 하면서도 ‘이것도 글이 될까?’라는 생각을 해요. 새벽에 깨어, 4시까지 글을 적었습니다. 열심히 적었지만 아침에 읽어보니 썩 맘에 들진 않더라고요.


돌아보니 오늘도 열심히, 따뜻하게 보냈네요. 시간이 흐를수록 깨닫게 돼요. 인생은 거창한 목표를 이루는 것보다,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내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걸요. 딸과 함께한 점심 한 끼, 집중해서 그린 연필 선 하나, 남편과 나눈 소소한 대화까지, 이 모든 순간들이 모여 제 삶을 이루고 있겠지요.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 대신, 오늘 하루를 소중히 살아내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결국 인생은 지금 이 순간, 그리고 오늘의 연속이니까요. 여러분도 오늘 하루, 따뜻하고 의미 있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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