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남겨진 고추나무 50그루에는 줄줄이 고추가 열렸다. 고춧가루를 만들고도 남편은 하나도 버리지 못했다. 열린 고추가 어머니의 마지막 유산이라 생각하니, 하나같이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지난 주말, 남편은 거제도 시댁에 가서 고추와 고춧잎을 50리터 봉지 한가득 땄다. 나는 친정집에 고추를 나눠 주자고 했지만, 남편은 본인이 직접 처리하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일주일 내내 남편이 몰입하고 있는 일은 고추를 처리하는 일이었다. 아침마다 눈만 뜨면 고추를 다듬기 시작하고, 밤늦게까지 도마질 소리와 건조기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그야말로 고추 처리 대작전이 시작되었다. 먼저 고춧잎 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고춧잎을 깨끗이 씻어 건조기에 넣어 말린 후, 프라이팬에 덖어 손으로 비벼가며 정성스럽게 차를 만들었다.
다음은 고춧가루 만들기. 빨간 고추는 따로 건조기에 말려 믹서기에 갈아 고춧가루를 만들었다. 전에 만든 고춧가루는 너무 곱게 갈렸다고 하여, 이번에는 갈다 만 듯한 두꺼운 고춧가루를 완성했다.
고추를 썰어 냉동실에 차곡차곡 쌓았다. 땡초, 오이고추, 일반 고추, 빨간 고추로 냉동실이 빽빽하게 채워졌다. 생으로 먹기 적당한 고추는 상하기 전에 밥 먹을 때마다 된장에 찍어 열심히 먹었다. 한 끼에 스무 개 정도는 거뜬히 먹었다.
고추를 길게 썰어 씨를 빼고 간장, 설탕, 식초를 끓여 넣어 고추장아찌도 만들었다. 고추를 일일이 곱게 다지고 멸치와 조선간장을 넣어 고추장물도 만들었다. 부드러운 고추에 구멍을 내고 간장과 식초를 부어 간장절임도 만들었다.
일주일 내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고추를 썰고 말리고 덖고 씨름을 했지만, 고추의 양은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게다가 빠른 속도로 상하기 시작했다. 특히 고춧잎은 아무리 빨리 말려도 돌아서면 상해버리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밥에도 고춧잎을 넣은 솥밥을 만들어 먹었다. 요즘 우리 집 메뉴는 고춧잎밥에 고추장물을 비비고, 고추된장국에 고추장아찌를 먹고, 생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는 고추 잔치 밥상이다. 밥을 먹은 후에는 고춧잎 차를 마신다.
남편은 일주일 내내 고추를 다듬고 써느라 지문이 없어졌다고 엄살을 부렸다. 핸드폰 지문이 안 찍힌다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그러게 좀 작작할 것이지' 나는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지만, 안 매운 고추는 좋아한다. 하지만 요즘 나오는 고추들은 가을볕에 바싹 약이 올라서 매웠다.
'언제까지 고춧잎 밥에 고추 반찬만 먹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 무렵 반 자루쯤 남아있던 고추가 보이지 않았다. “고추 어떻게 했어?” 물어보니, 남편은 다 처리했다고 했다. 혼자서 온갖 고추 처리 방법을 고민하다 도저히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남은 고추를 아랫집, 윗집, 옆집에 다 나눠주고, 정수기 코디네이터에게도 한 봉지씩 안겨줬단다.
고추를 다 처리하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고 말하는 남편. 그런데 돌아오는 주말에 또 고추 따러 가자고 한다. “뭐? 또 우짤라고?” 묻자, “내가 고추 박사가 되었잖아. 이젠 더 맛있게 만들 수 있다고.”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유산인 고추를 도저히 시들게 놔두지 않겠다는 모양이다.
“당신이 원한다면 언제든 고추를 따러 갈게요. 하지만 제발 더 이상 내게 매운맛은 먹이지 마세요.”
한 자루의 고추를 다 처리하고도 고추와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남편의 고추 박사 변신은 계속될 것이고, 우리 집은 앞으로도 고추로 가득 찰 것이다. 어머니의 마지막 유산 고추는 또 어떤 모습으로 변신해서 내 앞에 나타날까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