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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Dec 20. 2024

대방어의 느끼한 유혹

찬바람이 불면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얼굴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 속에 입안은 이미 대방어의 노르스름한 기름맛을 그리워한다. 방어는 차가운 소주와 함께해야 제맛이다. 왼손으로 방어 한 점을 집어 와사비를 살짝 올리고 간장에 찍어 김에 싸서 준비한다. 오른손에는 소주 한 잔을 든다. 소주를 먼저 들이켜 알코올의 기운이 입안에 남아 있을 때, 김에 싼 방어를 입에 쏙 넣는다. 탱글탱글한 날것의 생생함이 먼저 느껴지고, 곧 고소한 기름맛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마지막으로 와사비의 알싸함이 느끼함을 딱 잡아준다. 이 조화로운 맛의 향연이 바로 겨울이 주는 행복이다.



겨울의 대표 주자, 대방어의 진수


이 맛을 잊을 수 없어 매년 겨울이면 대방어를 찾는다. 하지만 모든 방어가 같은 맛을 내는 건 아니다. 6kg 이상의 대방어만이 특유의 고소한 기름 맛을 낸다. 중방어는 부시리같이 평범할 뿐이다. 그렇다고 대방어를 배 터지게 먹는 건 쉽지 않다. 몇 점만 먹어도 기름의 느끼함에 금세 물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방어만 먹기보다는 감성돔이나 광어 같은 흰 살 생선과 함께 먹는 것을 즐긴다.


방어를 먹기 전 빠질 수 없는 일도 있다. 바로 기름기 자르르한 방어 사진을 찍어 자랑하는 것이다. 사진을 받은 사람들은 “앗, 방어다!” 하며 침을 질질 흘리는 이모티콘을 보내온다. 그렇게 방어의 유혹은 카톡을 타고 전염병처럼 퍼져나간다. 며칠 뒤에는 친구로부터 방어 사진이 답장으로 오고, 나는 또 대방어가 먹고 싶어져 입맛을 다시게 된다.


어제는 서울에 있는 딸내미에게 방어 사진을 보냈다. 딸은 "부럽다"며 "노량진 시장에서 사 먹는 방어는 맛이 없어요"라고 했다. "당연히 그렇지. 방어는 엄마가 사준 게 최고지." 사회초년생이 최저임금을 갓 넘는 피 같은 월급으로 사 먹으면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겠나. 설날에 부산에 오면 맛있는 대방어를 실컷 사주기로 약속했다.


남편은 일주일간 회를 안 먹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고 한다. 봄도다리, 여름참돔, 가을전어 등 제철 생선을 찾아 매주 횟집을 간다. 소주 한 병과 회, 매운탕까지 다 먹고 나올 때마다 꼭 하는 말은 늘 똑같다. “아, 지갑을 안 가져왔네!” 물론 핸드폰 결제가 가능해도 계산은 늘 나의 몫이다. “마누라가 사준 회가 제일 맛있다”며 너스레를 떠는데, 나는 이게 칭찬인지, 핑계인지 모르겠다. 친구들과 만나서 본인이 술값을 내면 자제하면서 먹게 되고 맛도 없다고 한다. 마누라가 사주면 마음껏 먹고 최고로 맛있다고 주말마다 횟집에 가자고 성화다. 나도 남이 사주는 회가 맛있지만 매번 지갑을 안 가져왔다는데 그저 웃음만 나온다.  



겨울 준비는 대방어로

올겨울 들어 벌써 대방어를 다섯 번이나 먹었다. 방어 사진을 여기저기 보내며 방어전염병을 퍼트리고 있는 중이다.  두툼한 방어 뱃살은 입안에서 녹고, 따뜻한 겨울의 맛이 되어 준다. 방어를 먹으며 가족과 나눈 대화, 친구들과의 웃음 섞인 카톡들이 더해져 추운 계절도 즐겁기만 하다. 겨울을 더 따뜻하고 행복하게 보내고 싶다면, 대방어 한 점의 유혹을 받아들여 보자. 입안 가득 퍼지는 그 고소함은 올 겨울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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