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블랙 로펌 12화

그놈의 취직, 그리고 이직

변호사 '인력시장'에 관한 소고

by 익명의 변호사
An 'unemployed' existence is a worse negation of life than death itself.
-Jose Ortega y Gasset

1.

법조계의 일자리는 소송과 관련된 업무를 하는 이른바 '송무(訟務)'와 '그 외의 직역'으로 나뉜다. 송무에 종사하는 이들은 흔히들 생각하는 변호사다. 모르겠으면 동네변호사 조들호 보시면 된다. 쉽게 말하면 의뢰인과 위임계약을 맺고 소송에서 이들을 대리해 각종 서면을 내며, 증거를 정리하고, 법정에서 변론하는 그런 전통적인 변호사들의 일이다(물론 그 이면에는 파트너 변호사에게 깨지고 의뢰인과 1:1로 카톡방에서 자문에 응해야 하며, 재판에 출석했다가 하루에 두세 건씩 서면을 쓰느라 주 6일, 새벽까지 근무해야 하는 업무강도가 전제되지만 이는 다른 글에서 다루기로 한다). '그 외의 시장'은 변호사가 일하는 나머지 모든 직역을 포함한다. 공무원에서부터 사내변호사, 법조 전문기자 등의 부차적 법률 업무를 수행하는 직역이었다. 적어도 과거에는.


그동안 변호사들이 받아들이는 '시장'은 송무 직역에 한정됐다. 당연한 얘기인 것이, 변호사가 불과 수십 명씩 배출되던 과거에는 사무소를 열기만 해도 일이 넘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2007년까지만 해도 한국의 인구 1000명당 변호사 수는 0.17명으로 OECD 최저였다(우리나라 서비스업 진입장벽 현황 분석 보고서. 한국은행, 2007). 인접 자격(법무사, 변리사, 세무사, 공인노무사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수치지만, 적어도 변론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던 시기가 분명 있었다.


이젠 더 이상 아니다. 송무시장이 매년 소화할 수 있는 신입 변호사들의 수는 제한돼 있다. 통상 700~800 명선이라고 보는 게 일반적인데, 이는 기존 변호사들의 사망 및 휴직 등의 이탈, 법률사건 수요 상승 등을 고려한 수치다. 덕분에 지금은 다들 송무를 염두에 두지만 그 외의 직역도 마다하지 않는 지점에 이르렀다. 법학전문대학원에서는 매년 1500여명씩 변호사가 배출되고, 변호사 수가 2만 명을 넘어섰다. 잘못하다간 이삼 년씩 집에서 손가락만 빨아야 하는 시기다. 심하게 말하면 바야흐로 변호사도 굶어 죽을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양 직역의 간극은 더 벌어졌다. 특수직종에 있었거나 로펌에 오래 있다가 그 외 직역으로 가는 경우, 어쩌다 실력으로 이름난 케이스가 아니라면 그 외 직역에서 일하다 송무시장으로 재진입하기란 쉽지 않다. 예컨대 사내변호사로 상당 기간 일하던 갑 변호사가 다시 송무시장으로 진입하려 한다 치자. 예전처럼 송무를 할 수 있을까? 물론 할 수는 있다. 다만 사건을 수십, 많게는 백여 건씩 들고 다니는 송무변호사들에 비해서는 감각이 무뎌졌을 수밖에 없다. 회사 소송대리인으로 일하는 것도 한도가 있으니(서울변회는 사내변호사의 수임한도를 연 10건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 갑 변호사가 송무시장으로 들어가려 할 경우 연차는 높으니 연봉 역시 높다. 1~2년 차 변호사와 비슷한 실력인데 돈을 더 많이 주어야 한다면? 파트너 입장에선 아쉽겠지. 즉, 안 뽑는다.


물론 저도 이런 우아해보이는 책상을 갖고 싶습니다. 현실은 ㄹᆢ


2.

송무시장은 수요보다 공급이 많다고 전제하였고, 실제로 원하는 직장을 구직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인사를 담당했던 친구의 말을 들어보면 변호사수 20~30 명선의 중형 로펌의 경우에도, 공채를 내기만 하면 구직을 원하는 변호사의 이력서가 기본적으로 수백 장은 몰린다. 실무수습(변호사시험 합격자들은 법상 5년 이상 경력 변호사 밑에서 6개월간의 실무수습을 마쳐야 사건 수임이 가능하다)을 원하는 신입 변호사들은 물론이고, 개인 법률사무소에서 일하거나 회사에서 송무로 넘어오려는 변호사들까지 다들 원서를 내기 때문이다. 스펙도 생초짜 변호사를 제외하면 다들 '괜찮다'는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경쟁이 치열하다.


그 외의 직역은 아직 레드오션 수준까지는 아니다. 이쪽도 나름 치열하지만 송무시장만큼은 아니라는 소리다.

민간경력 공채, 공공기업 등의 공직

일반 기업의 사내변호사(법무팀)

스타트업의 창업 멤버

법조 전문기자


저 중에 내가 근무할 곳 하나 없단 말인가


두서없이 적자면, 가장 많은 TO를 차지하는 것은 일단 사내변호사일 것이다(2000명 정도, 전체 변호사 중 1/10 정도를 차지한다). 회사는 자문을 내부적으로 처리하고자 하는 수요가 있고, 작게는 사무실 임대차부터 합작회사설립계약(JVA)까지 기본적으로 크고 작은 계약들을 체결한다. 기본 법무 수요는 생각보다다. 코스닥이나 코스피 상장사 정도만 돼도 법무팀이 있게 마련이고 삼성같은 곳은 변호사 공채가 따로 있을 정도다. 4대 그룹 정도면 대형 로펌에서도 이직수요가 실제로 있다(다만 경쟁률이 엄청나다). 특히 급격히 망하거나 흥하는 회사의 경우에도 법무 수요가 높다. 다만 처음부터 실무수습중인 변호사를 구하는 중견기업 이상의 법무팀은 생각보다 드물다는 점 참고할 것(1년차 변호사가 얼마나 공포스러운 존재인지는 의뢰인들이나 기업이나 다들 안다). 외국계의 경우에는 준법감시인(지원인) 등 컴플라이언스 경력직 수요가 제법 있으며 헤드헌팅 업체를 이용하는 곳이 상당수다. 외국계를 노린다면 괜찮은 곳에 영문 비테를 넣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스타트업 창업 멤버로 변호사가 참여하는 것도 드물지 않다. 월급은 적다. 지분으로 대박을 노리는 루트다. 이들을 다룬 뉴스도 심심찮게 나왔으니 검색해보자. 최근에는 지급명령을 대신해주는 등 간단한 서비스 대행을 필두로 틈새시장을 노린 기존 법무법인이나 법률사무소가 새로운 브랜드를 내세우며 뛰어들기도 한다. 그만큼 창업이 쉬워졌다. 이 직역도 슬슬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기자의 경우엔 조금 특수하다고 말할 수 있는데, 아직 '변호사인 기자'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특기할 만하다. 20대에서 30대 초반이고 언론에 관심이 많다면 나쁘지 않은 커리어다. 다만 언론사 특유의 강력한 기수문화, 기존 사회경력에 대해 우대하지 않는 구성원들의 성향, 변호사가 아닌 기자로서의 능력을 더 선호하고 향후로도 배워야 점이 더 많을 것이라는 점 등은 분명 마이너스 요소일 것이다. 최근 조선일보가 기자(신입, 변호사 우대)를 모집하였고 머니투데이 더엘(L) 등에서 변호사 대상 채용을 진행하는 등 나름대로의 수요가 있다.


3.

마지막으로 이직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스스로 원칙을 정할 필요가 있다. 연봉이냐,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냐(이 단어 싫어하지만), 사람이냐, 앞으로의 커리어냐.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는 백인백색이다. 하나만 명심하자면 어쨌든 이직은 확률이기에 잘 풀릴수도 있고 나쁘게 풀릴 수도 있다는 사실. 사람이 싫어서 옮겼는데 더 엿같은 놈이 사수로 앉아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팁은 결국 정보수집이다. 새로운 공고가 떴다면 주변 사람들을 통해 탐문하자. 생각보다 이 업계는 많이 좁아서 두세 단계만 알아보면 환경에 대해서는 감을 잡을 수 있다. 정말로 '그냥' 옮기면 그 이직은 말 그대로 도박이나 다름없다. 만족하는 사람이 30%쯤은 될까.


아 오늘도 퇴근 후에 횡설수설하고 쓸데없는 글을 길게 써서 보람차다.


Compared with the employed, the jobless are less likely to vote, volunteer, see friends and talk to family. Even on weekends, the jobless spend more time alone than those with jobs.
- Arlie Russell Hochschild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