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블랙 로펌 14화

이직

인하우스 이직시 간단히 고려해야 할 점들

by 익명의 변호사


휴직하겠습니다.


1.

드디어 '건강상의 문제를 이유로 휴직을 신청했다. 말이 건강 문제고, 이직 준비를 하기 위해서다. 그보다, 상무가 꼴 보기조차 싫은 게 더 이상 다니면 문언 그대로 내가 '암이 걸릴 것 같았'다. "뭐…라고…?" 상무의 동공에 지진이 나는 것을 보니 진작 쉴 걸 그랬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곧바로 상무가 실무수습 변호사 두 명을 데리고 방에 들어가더니 '이대로면 너희를 채용할 수 없다'며 갈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이제 난 저기서 벗어난다. 소격효과가 느껴졌다.


원래 법무실에는 나 외에도 실무실습 중인 변호사님 두 분이 계셨다. 두 분 가운데 한 명만 채용할 예정이었다. 물론 내가 휴직, 아니 퇴직하는 경우엔 얘기가 다르다. 하나만 있으면 곤란하다. 변호사님이 휴가라도 내거나, 아프기라도 하면 상무가 직접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재앙이다. 상무가 아니라 회사에. 이틀 정도 병가를 낸 적이 있었는데, 상무가 끙끙대다가 결국 밀려들어온 계약과 자문에는 손끝 하나 대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인턴 이름으로 발송할 수는 없으니까. 돌아와서 100통 가까이 고스란히 쌓인 메일을 보며 한숨 쉬는데 신나는 얼굴로 칼퇴하던 걸 보니 정나미가 떨어졌다. 대체 어떻게 이런 자가 변호사라고 일하고 있는지 답이 없다 싶었다. 변협 휴업신고까지 했으니 말 그대로 직장인이시긴 하지만.


2.

윗 문단은 한 달쯤 전에 쓴 글이다. 어떻게 참았나 싶다. 휴직이라는 미명하에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왔고, 아내가 슬슬 바가지를 긁으려던 즈음 조건이 맞는 회사에 운 좋게도 이직을 했다. 지난달의 일이다. 여전히 글을 쓴다. 바뀐 건 있다. 좀더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늘었다. 근무 부서는 어찌 보면 프론트 부서다. 다만 예전에 하던 업무는 그대로라 재미도 꽤 붙어 즐겁게 일했다. 덕분에 회사에서 '지난달 가장 인생을 회사에 갈아넣은 사람에게 주는 상' 같은 이름의 상도 탔다. 몸은 고달프지만 마음은 편하다는 게 지금 상황이다.


3.

이직을 세 번 정도 했다. 변호사의 이직은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다. 뒤늦게 후회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여러 조건이 있지만 무엇보다 내게 중요한 건 주변 사람이다. 먼저, 능력이다. 결국 이 업종은 사람 장사라 뛰어난 (평판을 가진) 변호사님 밑에서 배우는 것만큼 더 좋은 배움이 없다. 특정한 업무를 '해본 변호사'와 '안 해본 변호사'의 차이는 천지 차이다. 다양한 업무를 하는 곳이 좋았다. 어차피 일정 수준 이상 올라오면 변호사들의 업무 수준은 평준화된다. 시간투사의 정도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떤 의미로는 같이 일하는 분들의 인격을 의미하는데, 이건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인내심의 크기 말이다. 블랙 로펌이라는 연재물에서도 읽어보았겠지만 일단 욕을 듣기 시작하면 얼른 도망쳐라.


두 번째로 처우다. 여기서의 '처우'란 지급받는 봉급을 포함하고, 그 외의 복지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일반 법무법인의 경우 세후로 지급되는 높은 월급이 장점이다. 송무변호사에서 다른 법무법인으로, 사내변호사에서 인하우스로 옮기는 경우 기존의 연봉을 기준으로 협상하면 될 것이지만 송무를 하다 인하우스로, 혹은 그 반대의 경우는 약간은 계산을 할 필요가 있다. 소소하게는 휴정기와 관계없이 쓸 수 있는(혹은 없는) O일의 연차, 복지포인트, 콘도미니엄 이용, 가족에게도 제공되는 보험, 건강검진 등에 가치를 각각 매기고, 이를 연봉에 합쳐 지금의 연봉과 비교하면 될 것이다. 지금 위치에서의 연봉 상승률도 감안해야 한다. 퇴근 시간도 빼놓지 말고 고려하여야 한다.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어느 정도나 될 수 있는지. 참고로 난 5시 반 칼퇴근에 2000만원의 가치를 부여했었다.


나아가 고려할 기타 사항들이 있다. 이직하려는 기업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산 직전인지, 총수가 구속 위기에 처해 있는지,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이슈에 휘말려 있는지 등 업무강도의 문제), 변호사를 부르는 호칭(사내변호사의 위상 문제), 기존 법무팀이나 변호사 및 법무직원의 유무(변호사 한 명으로 로펌 전체를 고용한 효과를 내려는 블랙인지의 문제), 새로운 환경에 자신이 얼마나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지 등이다.


3.

책을 쓰겠다는 일념은 어디가고 게으름뱅이만 남았는가…졸필임에도 들러주시는 분께 감사드린다. 글을 안 쓰니까 구독자와 방문객수가 점점 늘어나는 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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