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휴야 Oct 05. 2022

盡人事待天命

盡人事待天命(진인사대천명)

: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서 하늘의 뜻을 기다림.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단지 신체의 변화만 아니다. 생각의 노화. 생각도 나이를 먹는다고 생각한다. 좋게 말해 성숙해졌다고 표현해본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외적인 모습을 보지 않아도 나의 청춘 중간지점 지나갔음을 짐작한다. 열정은 사라지고 경험은 남는 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었을까.


사무실에서 키보드를 다닥거리며 모니터를 바라보는 나의 눈은 생기를 잃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것도 귀찮아 힘을 풀고 반만 눈을 떴다. 반만 뜬눈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니 거울을 보지 않고도 짐작 가능.



3n연차 사람으로 살다 보면 원하던 원하지 않던 경험들이 쌓인다.


이것이 옳은 경험인지 그렇지 않은 경험인지 당장은 판단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이것들이 나이와 비례할 만큼의 경험치를 만든다. 나잇값 정도는 하면서 사는 것 같아 다행이다.



친한 친구가 얼마 전 애인과 이별했다. 이별의 여파가 큰지 친구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힘든 마음을 털어놓았고, 이후로도 자꾸자꾸 털어놓다. 안쓰럽고 걱정되고 귀찮았다.



일 년 넘게 솔로인 내게, 연애의 감을 잃어가는 내게, 연애 혹은 이별 상담을 하는 이 친구는 진짜 친구가 맞는 것 같았다. 소중한 친구를 위해 친구 역할에 집중한다.


이전의 경험들을 되새김질하며, 이전의 감정들을 되짚어보았다. 미련이 남을 것 같면 붙잡아보는 방법이 있고, 가능하다면 깔끔하게 정리하는 방법도 제시해보았다. 다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늦게나마 그것을 나도 알았다.


하고 싶은데로 할 건데 용기가 부족하니 내 입에서 본인이 원하는 답이 나오길 기다린듯하다. 한 친구가 아니었다면 당분간  연락하지 않고 싶었다.



미련을 최대한 줄여보자고, 나중에 하면 진상에 스토커가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과하지 않는 선에서 해보, 무릎이라도 꿇던가 하고 친구를 놀렸.. 아니 나름에 조언을 건넸다.



어차피 미련과 수치심은 친구의 몫이 언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친구의 힘든 시간이 잘 지나가길 기도했다.



친구는 용기 내어 헤어진 연인을 붙잡았고, 여전히 헤어진 연인인 것을 보아 서로의 인생에서 마침표를 찍은듯했다. 


친구가 말했다. 본인이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진인사대천명,, 어쩌고 하며 뒷말을 이어갔지만 순간 나에게는 당황스러운 감정이 들었다.



내가 아는 진인사대천명은 아저씨들이 *톡 프로필에... 친구의 입을 통해 이 말을 들었을 때 너도 아저씨가 되었구나. 너랑 나랑 친구니까 나도 아줌마가 되었겠지, 우리 나이가 벌써 이렇게 됐네,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던 어른은 왜 진인사대천명이라는 글을 *톡 프로필로 올려놨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 역시도 그 말에 깊이 동의한다. 한다고 했는데, 그게 만약 최선이 맞는데도 안 되는 경우라면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 거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까.


최선을 다했을 때 원하는 결과가 따라오지 않는다면 실망감이 무척이나 크다.



하지만 무척이나 실망해야 될 때도 있는 것이다. 삶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다는 것. 그것에 순응해야 할 때도 있다는 것. 이십 대에는 인정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는 조금씩 알아간다.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한 타협. 진인사대천명. 어쩌면 이것은 비겁하지만 현명한 어른의 타협 일지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반갑게 인사할 준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