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집에 온 첫날 기억을 되새겨보자면 얼굴은 왕감자 손은 알감자였다.
내 주먹보다 조금 더 큰 얼굴 속에 작고 반짝거리는 두 눈을 꿈뻑인다. 코는 작고 낮았으며 입술은 얇고 세모 냈다.
입을 쩝쩝 거린다. 이가 없어 잇몸의 형태가 완벽히 보였으며, 짧은 혓바닥이 움직인다. 모습이 가히 충격적이게 귀엽다. 마치 아기새를 연상시켰다.
지금껏 나를 포함한 타인의 혀에 대해 느낀 바는 이러하였다.
'혀-백태-냄새=더럽다'
천사 같은 아기 앞에서 백태나 지껄이는 이상한 이모가 되지 않기 위해 급하게 생각을 전환했다.
아기는 귀엽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은 곳이 단 한 곳도 없었다. 원래 아기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동생의 아기라 그런지 더 예쁜 것 같기도 했다.
아기가 예쁘다고 말하면 주변 사람들은 '니 애는 더 예쁠걸'이라고 말했다.
'나 아기 안 낳을 건데?'라고 말하면 반박하는 말들이 쏟아졌다.
난 그저 그 당시의 의사가 그렇다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그랬던 내가 아기를 예뻐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다시 관찰로 돌아와 꼭 쥐고 있는 주먹이 얼굴크기에 비해 너무나도 알감자스러웠다. 손가락은 마치 닭ㅂ... 아니다. 비교하지 않겠다.
그렇게 나는 아기의 모습을 천천히 관찰한다.
터진 울음에 목청껏 감정을 쏟아내던 아기의 표정은 꽤나 언짢아 보였다. 그 모습이 얼마나 하찮고 귀엽던지 아기를 안고 한참을 토닥였다.
아기는 틈나는 대로 울어댔다. 동생은 하루 종일 아기를 달래고 지키며 드라마에서 보던 아기엄마가 되어있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동여매고, 허리와 손목에 보호대를 찼으며 아이가 토한 분유가 어깨에 묻어있는 동생의 모습이 낯설었다.
아기는 울고 울고 계속 울었다.
아이의 불편함을 찾기 위해 초보엄마, 아빠는 무척이나 애를 쓰며 70일이 넘게 아기를 돌봐왔을 것이다.
고단한 낯빛을 한 동생을 보니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이곳에 있는 동안 내가 많이 도와줘야지 결심도 했다.
우는 아기를 보며 아기가 '우는 게 당연하지',
'쉬고 있어', '내가 할게' 고단한 동생을 위해 노력하자고 마음먹었건만 일주일 후 나의 대화는 달라졌다.
'아기는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을 것 같아'
'왜?'
' 이렇게 힘든데 천사 같은 외모는 줘야 돌볼꺼아니야 '
`...ㅋ`
모성애를 모르는 이모도 아기의 사랑스러움을 알아버렸다. 또한 육아의 쓴맛도 간접경험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