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거주지를 공유하는 사이답게
기존 가족+여동생+아기+제부(주말)
한 달 정도 함께하니 어느덧 바뀐 일상에 80% 이상 적응한 것 같다.
아기를 중심으로 나머지가족들 적응만 하면 된다.
아침이면 가장 일찍 일어나시는 어머니(실제로는 엄마라고 부름)가 아기가 깨면 기저귀를 갈아준다.
나의 어머니는 아기의 분유를 타지 않는다. 아마도 분유량을 아기 기상시간에 따라 늘이고 줄이는 아기엄마의 뜻을 100% 반영하기 위함이라 짐작한다. (아기엄마특징 아기 관련한 일에는 잔소리 심함, 시간엄수, 용량엄수 노력하는 편.)
우리랑 있을 때는 몰랐는데 아기에 관한 일에서는 깐깐하고 철저한 편이더라.
나의 어머니는 아기가 강력하게 울어버리면 분유를 먹이라고 한다.
" 아직 시간 안 됐는데?"
" 애기 응가해서 배고픈 거야."
자식 넷을 양육한 경력자이니 설득력이 없지는 않지만 초보엄마는 소아비만을 언급해 버린다.
아기가 운다고 무조건 분유를 먹이면 안 된다는 타당성 있는 말들을 했지만 이것저것 다 시도해도 아기가 울면 초보엄마와 이모는 정신력을 한 줌 모래가 되어버린다.
이모인 나는 울지 않지만 아기엄마는 가끔 아기와 함께 운다.
가족들의 눈을 피해 우는 것 같지만 아기엄마의 언니로 30년 이상 살아온 나는 안다
`재가 울었구나'
미숙한 나와의 공동육아가 힘들어서인지 걱정이 된다.
아기아빠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건 어떤지 살짝 물었다. 아기엄마는 여기서 한번 울 거 가면 세 번 운다고 말했다. 가면 아기아빠가 퇴근하고 돌아올 때까지 낮시간은 꼼짝없이 독박육아라고.
아기엄마는 육아휴직 중인 간호사이다. 아기아빠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가장이다.
그들은 신생아시절 아기의 새벽분유를 함께하는 등 육아동지로 신뢰를 굳혔갔지만 아기가 밤잠을 길게 자기시작하며, 아기아빠가 출근한 낮시간을 함께해 줄 육아동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게 바로 나와 우리의 어머니다.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져서인지 나의 조카 '호'가 참 예쁘다.
처음에는 너무 작아서 귀엽고 신기했는데, 지금은 귀엽고, 귀하다.
아기는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는데 거의 없어서 마음이 쓰인다. 하나부터 열까지 보호를 받아야 하니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쌓이는 정이 어마무시한 것 같다.
분유도 잘 마시고, 트림도 잘하고, 밤잠도 잘잔다.
'호가 참 예쁘다'
딩크희망자가 아이를 예뻐하면, 그러니까 낳으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닌 것 같다.
아기가 예쁘다고 낳는 건 조금 무책임한 것 같다. 아기가 커서 말 안 듣는 중2청소년이 되어버리면 어찌할 것인가.
나는 아이가 싫어서 딩크를 희망하는 것이 아니다.
내 앞가림도 하기 힘든 세상에서 누군가를 온전히 책임진다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한 아기의 우주가 되어 그를 괜찮은 어른으로 성장시킬 자신이 없는 것이다.
요 며칠 아기엄마를 관찰한 결과 내 동생이 엄마 같아진다. 위대한 엄마가 되어가는 길 초입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 모습이 퍽 안쓰럽다.
앞으로 '호'를 양육하며, 삶에 있어 나보다 깊은 성장을 해나가겠지. 그러나 나에게 '호'의 엄마는 동생일 뿐이다.
유난히 볼이 통통하고 귀엽던 아기. 언니한테 볼꼬집혔다고 엉엉 울며 엄마한테 이르던 꼬맹이.
얘가 힘들다고 찾아오면 나는 언제나 '호'를 안아줄 것이다. 동생을 사랑하니까. 그게 내 사랑의 표현인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