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고로호 Sep 23. 2021

이런 것까지 극복해야 하나 싶지만- 벌레

미물일기 #6

여름내 운전연습을 열심히 했다. 장롱면허 20년 차에 처음으로 차가 생기던 전날 밤,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기뻐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앞으로 운전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초조했다. 초보운전인 남편은 연수를 받자마자 바로 차를 끌고 출근을 하기 시작했는데, 자신을 믿지 못하는 데다 겁이 유난히 많은 나는 도로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주말마다 넓고 한적한 공터를 찾아 페달을 밟고 핸들 돌리는 연습만 한 달 동안 했다. 도로에 나가던 날은 목에 담에 올 정도로 긴장했다. 운전대를 움켜쥔 두 손에서 흐르는 것은 땀이 아니라 진액이었고 앞을 어찌나 노려봤던지 눈이 빨갛게 충혈됐다. 집에 돌아와서는 끙끙대며 앓아누웠지만 포기할 생각만큼은 없었다. 절대 익숙해지지 못할 거라고 단정지었던 일들을 전에도 해낸 적이 있으니까. 그중에 하나가 곤충과 친해지기였다.


곤충은 강아지와 고양이와 병아리, 개구리나 지렁이, 물고기와도 완전히 다른 차원의 생명체다. 너무나 달라서 근원적인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정체불명의 까만 벌레가 몸에 붙었다가 사라졌는데 옷 속에 들어간 줄 알고 엉엉 울었고, 플라타너스 나무를 지날 때마다 송충이들이 머리에 떨어질까 미친 듯이 뛰어 도망쳤다. 기분 나쁜 냄새를 내뿜는 노린재가 목에 붙어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얼어붙었고, 수학여행 때 촛불을 들고 부모님에게 감사하는 시간에 허벅지에 앉은 나방 때문에 비명만 질러댔던,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떠올려도 여전히 불쾌하고 소름 끼치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






두려움은 일상에 불편을 가져온다.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까맣고 통통한 바퀴벌레와 마주했을 때 온몸을 타고 흐르는 공포, 그로 인해 발생하는 통제 불가능한 혼란을 생각해보라. 그나마 운전에 대한 두려움은 운전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지구 생명체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곤충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세상에 나쁜 곤충은 없다>라는 책에 따르면 1000조에서 1경 마리, 약 100만 종의 곤충이 존재한다고 한다. 이런!! 작고 작은 것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지. 얼마 전에도 우리 동네 당근마켓에 바퀴벌레가 출현하는 바람에 급하게 집을 뛰쳐나왔다며 바퀴벌레를 잡아주면 3만 원을 주겠다는 글이 올라왔었다. 절박함에 가득한 글을 보며 나도 웃고 있을 처지는 아니었다. 벌레를 보면 잡으려고 달려드는 고양이들이나 시골에서 자라 벌레를 꽤 잘 잡는 남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나도 바퀴벌레 앞에서는 무력하기 매한가지.


다행히 극한의 벌레 공포증까지는 아니었기에  나이가 들어가며 아주 천천히 벌레를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의식하려고 노력했다. 최근 몇 년간 흙길을 걷는 산책을 하며 곤충을 볼 기회가 늘면서는 두려움이 확연히 줄었다. 지금 살고 있는 오래된 아파트 1층으로 이사 오면서 벌레들과 친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얼마나 부자가 되려고 그러는지 돈벌레가 자주 출몰하고, 다리가 기다란 집유령거미가 틈만 나면 거미줄을 친다. 밖에서 들어온 귀뚜라미와 곱등이, 커다란 바퀴벌레도 본 적이 있고 어릴 때나 봤던 집게벌레도 다시 만났다.


그중에서 가장 무서웠던 것은 돈벌레라고 불리는 그리마. 다리가 너무 많고 빠르다. 고양이들이 가끔 벌레를 잡아주지만 살아있는 것보다 두 동강 난 채로 다리가 우수수 떨어져 죽어있는 돈벌레가 더 징그럽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는 익숙해지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막 이사를 왔을 무렵에는 새벽에 무방비로 돈벌레와 대면하고는 소리를 지르며 남편을 깨웠지만 오랜 시간 같이 하다 보니 지금은 능숙하게 벌레잡이 통으로 돈벌레를 잡아 베란다 밖으로 던질 정도의 담력을 갖추게 됐다. 현재 우리 집 방충 방역 담당은 나다.

                                        










운전도 마찬가지다. 무서워도 하고 하고 또 하는 수밖에 없다. 집에 차가 한대뿐이라 굳이 내가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운전연습을 시작한 이상 운전대를 놓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에야말로 운전을 꼭 배워야 했다. 그동안 차가 필요할 때마다 부모님이 시간을 내서 차를 태워줬다. 고양이를 케이지에 넣고 택시를 탈 때면 마음이 불편했다. 운전을 하지 못해서 겪었던 생활의 불편과 한계를 떠올리며 각오를 다졌다. 운전을 할 생각만 하면 식은땀이 나더라도 주말에는 꼭 운전을 했다.  남편이 차로 출근하는 주중에도 감을 잃지 않기 위해 퇴근 시간 무렵 사무실에 가서 남편을 태우고 집에 돌아오는 정성을 쏟았다.


긴장성 복통을 수없이 겪은 후 맞이한 초보운전 100일째, 그동안은 꿈도 못 꿨던 초행길에 도전했다. 강변북로를 타고 잠실대교를 건너 잠실대로를 달리면서 왕왕왕초보로 진땀을 흘렸던 길고 긴 여름날을 떠올렸다. 이것이야 말로 백일의 기적이구나! 오랜만에 맛본 성취감이었다. 곤충과 친해지기 도전과제도 발전이 있었다. 여름 초입에 매미를 손에 올려놓지 못한다고 글을 썼는데 글을 쓰면서 자료 삼아 매미 사진을 여러 번 봤더니 어느샌가 내 마음이 매미를 접촉이 불가한 에이리언의 영역에서 터치 가능한 친숙함의 영역으로 새로 분류를 했나 보다. 아직 기운이 있어 움찔거리는 참매미와 말매미를 길가에서 풀숲으로 옮겨주는 쾌거를 이뤄냈다. 어깨 위에 날아와 앉은 풍뎅이도 자연스럽게 잡아서 날려 보내줬다. 예전 같았다면 윙 소리를 내는 묵직한 곤충의 기척만 느껴져도 광란의 탭댄스를 추면서 오두방정을 떨었을 텐데 침착하게 손을 뻗어 풍뎅이를 잡는 모습이 대견할 정도였다.






처음부터 운전도 수월하게 하고, 벌레도 아무렇지 않게 만지는 사람들과 비교해본다면 이런 것까지 기합을 넣으며 극복해야 하는 겁쟁이의 삶에 허탈한 웃음이 난다. 대신 별거 아닌 일도 하고 나면 해냈다는 기쁨을 두배로 맛볼 수 있다. 가을이 왔다. 이제 나는 부모님을 태우고 근교 드라이브를 나간다. 고양이를 데리고 동물병원도 갈 수도 있다. 주차가 어려운 곳이라 아직 도전은 못해봤지만. 그뿐만 아니다. 길 가는 사람의 등에 풍뎅이나 매미가 붙어있는 광경을 목격한다면 떼어줄 수도 있다.


앞으로 차를 몰고 북악스카이웨이도 가보고 강원도도 가고 싶다. 그전에 주차 연습도 매진해서 전진주차, 평행주차도 마스터하고 싶다. 더 큰 곤충들도 겁 없이 손위에 올려보고 싶다. 집에서 바퀴벌레를 만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잽싸게 잡고 싶다. 두려움을 넘어 조금씩 넓어지는 세계를 만나며 큰 성공 대신 작고 작은 성취로 자주 어깨춤을 추는 삶을 누리고 싶다.



이전 06화 불쌍한 마음이 들어서 - 민달팽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