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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고로호 May 09. 2024

작아서 슬펐던 날들을 떠나보내며

어머, 이게 아기 손이야, 어른 손이야?”

 작은  손을  때마다 사람들이 하던 . 작은 키에 작은 손과 , 머리카락마저 힘없고 가늘다. 그나마 살이  붙는 체질이라 통통해지면 무게감이 느껴져 오히려 다행이랄까. 나의 자기 연민은 나의 작음에서 시작됐다. 작다는 말이 약하다는 말과 동의어는 아니다. 우리 엄마는 나보다  작지만 평생 삶에 대한 욕심으로 단단하고 강인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작아서 약한  같았다.


일상이 평화로울 때는 자기 연민도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다 삶을 향해 호랑이처럼 달려들어야 고비를 넘길  있는 고난의 시기가 오면 앞으로 뛰쳐나가기는커녕 뒷걸음치는 이유가  내가 너무 작고 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만다. 직장생활을 하는 내내 운동도 빼놓지 않고 영양제에 홍삼에 한약까지 챙겨 먹었는데도 자주 아팠다. 함께 일하던 동기들은 나보다 키가 크고 뼈가 굵은 보통의 체형이었는데 정신적으로는 힘들어할 망정 육체적으로는 지치지 않았다. 그들이 감기   안 걸리는 동안 나는 옆에서 온갖 잔병치례를 했다.




허리가 아파 점심시간마다 진료를 받던 한의원에서 한의사가 나의 진맥을 짚으며 이런 몸으로  정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몸이라니.  여기저기가 부실한 몸이라는 소리였다.  뒤로 생각보다 험하고 역동적인 지방직 공무원의 업무를 수행하며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내가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한배에서 나왔지만 키가 180센티가 넘고 몸무게 100킬로에 육박하는 남동생의 거대함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키가 160 됐어도, 뼈가 조금만  굵었어도 등판이 조금만 넓었더라면 그것도 아니면 머리카락이라도 두꺼웠다면 나는  아팠을 것이고  나약했을 것이다. 민원인들의 성화에도  의연했을 것이고 조금만 기가 약해도 여기저기 치이기 쉬운 조직에서 콧방귀를 뀌며  자리를 지켰을 것이다.  직업을 견딜  없는 것은  내가 작아서였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야 자기 연민으로 가득 찼던  시절을  발짝 떨어져 바라보게 됐다. 공무원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싶었고 동시에 공무원을 그만두고 다른 일도 하고 싶었다. 작은 몸에 어울리지 않는 과분한 야망이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으니 당연히 실수는 용납할  없었다. 항상 긴장한 상태로 종종거리며 일했다. 나의 꿈은 소중하니까 일이 끝나면 잠을 줄여가며 그림을 그렸다. 자신을 달달 볶았다. 그런 생활을  년이나 지속했으니 작은 몸이 아니라도 아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작아서 약한 내가 아니라 욕심이 많은 나를 불쌍히 여겨야 했나? 아니다. 몸이 컸다면  튼튼했다면  욕심도 충분히 품어냈을 것이다.

일기를 통해 나는 흘러가는 시간을 꼭꼭 씹어 소화하고 차곡차곡 정리해, 그 시간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게 만든다. <망각일기>(필로우,2022)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수십 권의 일기를 썼음에도 나는 항상 소화불량 상태였다. 퇴직  일기를 뒤적이며 직장에서의 날들을 재구성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위에 풀을 가득 담은  나중에 되새김질을 하는 소처럼 오랜 시간을 들여 공무원 생활을 정리하고 나서야 괴로웠던 시간을 완전히 소화하고 경험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던 날들에서 해방됐다.




나는 이제 타고나지 못한 것에 자기 연민을 가지는 대신 작은 몸뚱이와 작은 에너지로 어떻게 하면 삶을 나름 효율적으로   있을까에 대해 궁리한다. 갓생을 살겠다며 일주일 바싹 열심히 살다 감기에 걸리고, 생일 주간이라 연속 3 외출을 하고는 일주일 넘게 진이 빠질 때도 역시 나는 나약해라고 풀이 죽긴 보다는 그런 나를 웃기고 귀여운 인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간 고양이 수발을 드느라, 전업주부는 아니지만 반업주부로 살림을 하느라 아기 같다는 탄성을 자아내던 손은 거칠어졌다. 하지만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쓰레기를 버리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고양이를 돌보는  작은 손이 대견하다.


“참새나 강아지같이 조그맣고 단순한 것들을 나는 사랑한다.  것은 싫다.” 장욱진 회고전에서 만난 화가의 문장. 이제는 작은 내가 불쌍하지 않지만 나는 여전히 나처럼 작은 것들에 연민을 가진다.  것이 싫지는 않지만 조그만 것들을 열렬히 사랑한다. 작은 것들이   세상을 헤쳐나가는 모습에 감동을 받는다. 그래서 자꾸 풀과 꽃과 나무와 곤충과 새와 흔들리는 영혼을 가진 인간에 대해 글을 쓰게 된다. 작지 않았다면 품지 않았을 연민 덕분에 인생을 걸고 바라보고 생각하고 싶은 주제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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