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깊어지다 못해 금방 여름이 가까워질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진한 꽃향기가 바람을 타고 아파트 후문과 맞닿은 작은 공원을 날아다녔다. 공원에는 기둥마다 등나무 줄기가 꽈배기처럼 꼬여 올라간 정자가 세 개나 있었다. 기둥을 타고 올라온 등나무들은 지붕 위에서 만나 가지를 무성하게 뻗었고 서로를 붙잡고 하나가 됐다. 잎이 돋아나는 계절이 되면 정자의 지붕은 연녹색으로 싱그럽게 빛나고 이윽고 아름다운 연보라색 꽃송이들이 잔뜩 달렸다. 그 향기가 얼마나 좋은지 공원을 지날 때마다 나는 코를 벌름거렸다. 등꽃이 피면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는 건 나뿐만이 아니어서 온 동네의 벌들과 곤충들이 윙윙 소리를 내며 정자로 몰려들었다.
매년 등나무에 꽃이 폈다는 걸 처음 발견한 날에는 일기장에 날짜를 적었다. 등꽃이 피면 살아있다는 것이 너무 기뻐 기념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꽃이 지고 이파리가 모두 떨어져도 등나무는 초라해지는 법이 없었다. 얽히고설킨 가지 아래의 아늑한 공간을 참새들에게 내어줬다. 정자는 짹짹거리며 바쁘게 드나드는 참새들로 귀엽게 복작였다.
갑작스럽게 몸이 아파 집에서 두문불출했던 날들이 있었다. 가을의 끝이 보이던 그 계절, 오랜만에 집밖으로 나와 공원을 지나는데 등꽃의 추억이 마치 꿈인 것 마냥 정자 두 개가 사라졌다. 정자는 조각나 있었고 함께 잘린 등나무의 잔가지와 아직 녹색이 도는 이파리들이 길 위에 쌓여있었다. “등나무가... 내 등나무들이...” 내가 심지도 않았고 내가 돌보지도 않았으나 나의 나무라 부르며 황망해하다가 공사를 알리는 현수막을 발견했다. 등나무 하중에 의한 붕괴위험으로 등나무를 일부정리하고 퍼걸러(공원 등 야외에 그늘을 만들기 위해 설치된 구조물)를 교체한다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그동안 정자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퍼걸러라는 명칭이 따로 있다는 것도 등나무 줄기가 묵직해 보인다고 생각하긴 했으나 붕괴위험이 있는 줄도 몰랐다. 공원을 관리하는 시청에서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수행했을 뿐이다. 하지만 매년 예쁜 꽃을 피우고 참새가 드나들고 왕벌이 붕붕 날아오르던 아름다운 등나무들에게 안녕이라는 말도 전하지 못하다니. 갑작스러운 이별을 하소연할 곳이 없어 일기장을 펼쳐 등나무가 사라진 날짜를 적었다.
나무는 오래 산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1100년도 넘게 살았다나. 서울만 해도 수령이 몇 백 년이 되는 보호수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나무를 보며 쉽게 이별을 떠올리지 못한다. 나무는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것처럼 굳건해서 나는 나무를 보며 안정과 평온을 얻어왔다. 하지만 모든 생명은 유한하다. 나무도 벼락을 맞고 태풍에 뿌리째 뽑히기도 하며 병충해로 썩어가기도 한다. 인간의 영역에 있는 한 관리라는 이름하에 존재에 위협을 받는다. 나무를 베는 주체에게는 계획이 있고 주민들을 위해 철거계획이 적힌 안내문이 현장에 붙어있기도 하지만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별은 언제나 난데없다. 나무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자신이 베어진다는 것을. 마음의 준비도 없이 어느 날 뜬금없이 애정하는 나무가 그루터기만 남기고 온데간데 없어진 장면을 마주하면 그래서 가슴이 철렁하다. 나무는 오랜 시간을 들여 자랐는데 사람은 나무를 너무 쉽게 잘라내는 것 같아서.
경산에 유명한 능소화나무가 있다고 했다. 집주인의 어머니가 50년 전에 직접 심었다는 이 나무는 여름이 오면 주황색 꽃을 한아름 피워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매년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고. 그런데 누군가 몰래 나무의 밑동을 잘랐고 나무는 말라죽었다. 이 처참한 사건이 뉴스로 보도되었을 때 많은 이들이 분노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오다가다 눈에 익은 나무가 공적으로 베여도 씁쓸한데 오랜 세월 집 앞을 지키며 많은 사랑을 받은 나무가 죽었다니. 뉴스에서는 이 사건을 테러라 표현했다. 범인은 잡지 못했지만 대신 작년 여름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시에서 원래 있던 나무와 크기가 비슷한 능소화나무를 심었고 그 나무가 꽃을 피웠다. 죽은 나무가 되살아난 것 아니지만 집과 사람들은 다시 능소화나무를 되찾았다. 나도 함께 기뻤다. 인간들과 함께 사는 나무들은 그 소유가 누구의 것으로 되어있든 우리 모두의 나무가 된다.
나무와의 이별은 계속된다. 산책길에 손을 줄기에 대며 애정을 쏟던 숱 없는 버드나무가 사라지고, 가늘고 작은 줄기로 몇 개 되지 않는 감을 맺던 아파트 화단의 감나무도, 현관문을 열면 바로 눈에 들어왔던, 병충해로 자주 잎이 시들던 꽃사과나무도 베어져 사라졌다. 강변역 포장마차들이 철거된 후 그 뒤 화단에서 자라던 키 큰 은행나무들이 한그루도 남김없이 잘렸다. 포클레인이 남은 그루터기와 오래도록 땅을 움켜쥐었을 기다린 뿌리들마저 남김없이 뽑아내는 광경을 눈앞에서 지켜보며 나는 가슴이 쓰렸다. 나무들은 다른 곳에서 다시 뿌리를 내릴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사라졌다. 화단은 곧 평평한 보도가 되었다.
공원에는 이제 등나무 정자가 딱 하나 남았다. 길을 오갈 때마다 등나무들이 제대로 있는지 살펴왔다. 얼마 전에도 나무의 무탈함을 확인했다. 드디어 등나무에 꽃이 피는 시기가 왔음을 깨달은 날, 연보라색 등꽃과의 만남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정자를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 마주한 등나무 정자는 정자만 남고 등나무가 몽땅 사라져 있었다. 또 나무를 잃었다. 나는 울지 않았지만 다시 한번 오래도록 허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