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정거장을 향해 걸어가는데 길가에 집에 가는 버스가 두 대나 정차 중이었다. 내가 이용하는 버스는 노선이 길어 회차역을 지난 직후 버스기사들이 화장실을 사용하거나 배차 간격을 맞추기 위해 잠시 정차를 할 때가 있다. 평소 같으면 별생각 없이 버스정거장까지 걸어가 다음 버스를 기다렸겠지만 그날은 집에 조금이라도 빨리 가고 싶었다. “기사님~ 저 지금 이 버스 타도 될까요? “ 친근하고 예의 바르게 말을 걸면 버스에 타라고 허락을 해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막상 입을 열려니 밀려드는 수줍음. 말을 걸까 말까 잠시 망설이는 사이에 기사님은 건물 안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버스 타도 된다고요? 어머, 정말 감사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기사님. 하하 호호!” 이렇게 웃으며 버스에 올라타고 싶었는데. 나는 어릴 때부터 부끄럼이 많은 아이였다. 중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수줍다.
작년 여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옥수수 트럭 앞에서 줄을 섰는데 내 앞에 있는 사람과 사장님이 주거니 받거니 수다를 떨고 있었다. 사장님은 “자, 멀리서 왔다고 하니까 서비스!”라고 외치며 그 사람에게 옥수수를 하나 더 줬다. 당연히 자주 옥수수를 사는 내게도 서비스가 있겠지 하고 기대했다. 그런데 내게는 서비스를 주지 않는 것이었다. “어머, 사장님! 나 오늘 이만 원 치나 샀는데 왜 서비스 안 주시는 거야? 섭섭할뻔했네. 다음에 또 이러면 나 여기서 옥수수 안 산다!” 넉살 좋게 사장님의 어깨를 치며 웃었다. 속으로. 현실에서 나는 얌전하게 안녕히 계시라는 인사를 남기고 조용히 물러났다. 그래놓고 엄마랑 통화를 하며 옥수수 사장님이 앞사람만 서비스를 주고 나는 안 주더라며 장난 섞인 하소연을 했다. 옥수수 하나 때문이 아니었다. 사실은 그런 상황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한 숫기 없는 내가 실망스러웠다.
요즘 일주일에 한 번씩 풀과 나무를 공부하고 있다. 숲해설가 선생님은 꽃을 볼 때마다 강조한다. 꽃은 다 그렇게 생긴 이유가 있다고. 제비꽃은 옆에서 보면 꽃송이 뒤로 꿀주머니가 길게 튀어나와 있다. 이는 모든 곤충들이 수분을 매개해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에게 유용한 곤충을 가려내기 위함이라고 한다. 꽃가루를 옮겨주는 꿀벌은 혀를 길게 늘일 수 있어 꽃 안쪽 깊숙이 들어있는 제비꽃의 꿀을 먹을 수 있다고. 꽃을 보면 예쁘다고만 생각했지 꽃들의 생김새가 다양한 것도 나름의 까닭이 있는 것도 몰랐던 식물 초보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꽃들이 제각각 다르게 생긴 이유가 있다면 혹시 나도 그런 건 아닐까?
낯선 사람에게는 말을 잘 걸지 못하고 너스레도 떨지 못한다. 직설적으로 속마음을 드러내기를 주저한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서야 할 때는 땀이 나고 할 말을 까먹는다. 숫기가 없다는 건 불편한 일이어서 나는 수줍은 게 싫었다. 원래도 웃음이 많은 편이었지만 더 많이 웃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말할 때도 친한 사람들과 말할 때도 웃었다. 웃음으로 나의 수줍음을 감추려 했다. 대학교 신입생 때 누군가 내게 항상 웃고 있어 이상하다는 멘트를 롤링페이퍼에 남긴 적이 있다.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웃지 않으면 말을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스스로가 보기에도 이상했다.
부끄럼 많은 아이로 살기 싫었던 나의 노력은 사회생활을 하며 최고조에 달했다. 수줍지 않은 사람인 척하는 일에 아주 능숙해져 원래 수줍은 사람이라는 사실도 잊어버렸다. 동료들과 스스럼없이 잘 어울렸고 낯선 민원인들과 스몰토크를 주고받으며 친절하고 상냥하다는 칭찬을 달고 살았다. 나이차가 많이 나고 대하기 어려운 높은 직급의 상사들에게도 붙임성 있게 다가갔다. 조직생활을 하는 내내 나의 최고의 장점은 밝고 활기차고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대인관계라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퇴직과 함께 역할이 사라지고 그냥 내가 되어버린 후 내 진짜 모습은 바뀌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직장인으로의 나는 주어진 역할을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낮의 성격 좋은 사회인이 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끌어 쓰고 밤이 되어 혼자가 되면 진이 빠져 자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버스를 놓치고, 마땅히 내 것이 되어야 했을 옥수수 하나를 잃으면서. 길을 잃어도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일이 부담스러워 같은 길을 뱅뱅 돌거나 좋아하는 작가의 북토크까지 가서 열렬한 애정을 고백하지 못하면서. 식당에서 반찬을 리필받고 싶어도 말을 삼키고 산책하다가 멋진 강아지를 만나도 견주에게 개가 너무 멋있다는 칭찬을 건네지 못하면서 나는 수줍게 산다. 아주 가끔은 수줍은 성격 때문에 세상을 더 많이 더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건 아닌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예전처럼 웃음으로 수줍음을 감추고 활발하고 붙임성 좋은 척을 하는 대신 생긴 대로 살고 싶어 진다. 부끄럼 많은 성격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마음 편하게. 시시때때로 얼굴을 붉히고 작은 목소리로 주춤거리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수줍게 태어났으니 수줍게 사는 거지 뭐. 꽃이 다 그렇게 생긴 이유가 있는 것처럼.
기사님에게 말을 걸지 못하고 정차 중인 버스를 지나쳐야 했던 그날, 오래 기다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다음 버스가 빨리 왔다. 노선은 같지만 정차해 있던 버스와는 번호가 다른 버스는 아직도 대기 중인 버스를 제치고 빠르게 먼저 서울에서 경기도로 향하는 여정에 올랐다. 수줍어서 하고 싶은 말을 못 했지만 수줍어서 피곤한 몸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집에 뉘일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