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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인 Aug 27. 2017

범죄학자가 되고싶었다?

이것은 흔한 범죄학자의 고백


나는 공대 출신이다.


초등학교 시절 나의 꿈은 발명가였고, 중학교 때 발명가는 직업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부터는 과학자였고,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 대학을 가야 한다는 생각에 선택한 것이 공대였다.


우리나라의 많은 수험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대체 무엇을 하는 곳이 공대인지, 내가 선택한 과는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른 채, 초중고를 다녔던 그 관성으로 대학까지 자연스럽게 입학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아무리 해도 흥미는 없었다. 기존에 해왔던 그대로 나도 그 기술을 따라서 무엇인가를 해야만 했다. 나의 두뇌와 열정은 그 안에서 무언가를 우수하게 만들거나 새로운 것을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다 떠난 1개월 정도의 유럽 배낭여행은 나에게 영어의 필요성을 시사했고, 그렇게 영어를 배우겠다고 갔던 일 년의 어학연수에서 '범죄학'을 만났다.


첫 대면은 그렇게 수월하지 않았다.


어쩌다가 듣게 된 '범죄학(criminology)'이라는 단어는 생소하기 그지없었다. 범죄와 관련된 일은 검사 혹은 변호사와 같은 법조계나 경찰 정도가 전부였던 나에게, 영어공부를 하면서 즐겨 보아왔었던 미국 범죄 수사 드라마 CSI가 생각났고, 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범죄'라는 것에 '학자'가 있을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후 범죄학에도 다양한 분야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이미 나름 알려진 분야였던, 범죄자의 심리를 아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범죄심리학', 나아가 '프로파일러'가 되는 것을 택할 것인지, 범죄를 사회현상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범죄사회학'으로 그 방향을 정할지, 범죄자를 잡는 수사학 중 과학을 기반으로 하는 '과학수사'를 택할지를 결정해야 했다.


공대생이었던 나에게 가장 수월할 것 같았던 부분은 '과학수사'였다. 아무래도 이제껏 해왔던 조금은 익숙한 과학을 기반으로 가는 것이 수월하지 않을까 했지만, '내가 왜 공대에 흥미가 없었던가'를생각해보니 이것도 쉬운 것은 아니었다.


다음으로 고려했던 것이 '범죄심리학'. 알려지기도 잘 알려져 있었고 가장 흥미 있고 매력적인 분야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내가 범죄자의 심리를 속속들이 알고 싶을 만큼, 그것을 통해 그들의 패턴을 알고 추적해 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범죄자'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나는 왜 '범죄학'에매력을 느꼈던 걸까? 경찰이나 프로파일러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고, 범죄 수사에 도움이 되는 직업을 원하는 것도 아닌데. 20년이 넘도록 '범죄학'이라는 단어도 모르고 살아온 사람이 갑자기 '이것을 해야겠다'라고 느낀 것은 아마도 더 오래 전의 일 때문이었다.




그때는 여름이었고, 나는 아마도 유치원도 가기 전의 나이였다. 할머니 댁에 맡겨져 지내고 있던 나는 동네 친구들과 동네를 돌아다니며 노는 일이 많았다. 어느 날, 남자 어린이 친구와 놀고 있던 나에게 젊은 남자가 다가와 맛있는 걸 사주겠다는 말에 나는 그 남자를 따라갔고, 남자 어린이 친구는 집에 가라며 보내는 그 젊은 남자에 대해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은 없었다.


그렇게,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혼자 남겨진 나는 갔던 길을 되짚어 집을 찾아 돌아왔고, 그 일을 잊고 살았다.



그 기억은 안타깝게도 나를 영원히 떠나지 못했다. 중학교 무렵부터 다시 떠오른 그 기억은 누구에게도 나눌 수 없었고, 해소될 기미 없이, 해결방법도 알 수 없는 채로 나와 함께 살았다.




'범죄학'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의 나의 솔직한 심정은 '나는 왜 그렇게 되었어야 만 했는가'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대외적으로 '복잡하고 답이 없는 것에 대한 갈구'로 그럴싸하게 포장해 왔지만, 사실은 그렇게 나 스스로 그 답을 찾고 싶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런 와중에 결정했던 것이 '사회학'이었다. 아주 근원적으로 따지자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공부하는, 그곳에서부터 공부를 하게 되면 내가 원하는 답의 근처에 조금은 갈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으로 사회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나의 범죄학'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렇게 공부를 해 나가면서 더 이상 내가 '피해자'일 필요가 없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피해자'가 아닌 '전문가'로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이런 내 입장은 범죄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데 있어 양날의 검처럼 나를 보람 있게도, 괴롭게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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