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에게 더 이상 도망칠 방법이 없어질 때까지
범죄 수사의 역사를 살펴보았을 때 가장 혁신적인 수사 접근법은 과학적 근거를 활용한 '과학수사'라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범죄자나 피해자가 남겨놓은 생체 흔적들을 활용하는 가장 대표적인 과학수사 방법에는 사람의 DNA나 지문을 확인하는 방법이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졌고, 이러한 수사도구는 실제 범죄 수사에 대한 인식에 있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실제로 최근에는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범인을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경우 DNA나 지문 등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반문하는 경우가 많아져 그 인식의 수준이 과거보다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DNA와 지문, 객관적으로 이들이 가진 범죄 수사에 대한 기여도와 몇 가지 쟁점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1. DNA
현재 과학수사가 활용할 수 있는 생물학적 증거 중 가장 주요한 항목인 DNA는 그 활용의 역사가 길지 않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혈액형(ABO 식)으로 범죄자를 구별해내는 방식을 활용한 점, 그 이후 2010년이 돼서야 우리나라에 DNA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았을 때, 그 활용이 과연 알려진 강력/흉악범죄 이외에 일반적인 범죄에까지 활용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DNA를 용의자 확인에 활용한 수사는 1992년 대전에서 일어난 다방 여종업원 살해사건이었지만, 7명의 용의자 중 누구와도 발견된 DNA가 일치하지 않아 국내 첫 DNA 범죄 수사 활용 시도는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다양한 강력범죄 사건에서 가해가 혹은 피해자를 확인하는 데에 DNA를 활용해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범죄 수사에 활용되는 DNA가 과연 전체 범죄사건에 얼마나 큰 부분을 해결하고 있을까?
1995년 범죄 수사를 위한 DNA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영국의 경우, 매년 해결되는 사건 전체의 0.3%만이 DNA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해결되는 사건들로 나타났다 (2010년 기준). 이는 영국 정부가 전국적인 DNA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범죄 수사를 목적으로 내세워 종종 결백하기도 한 다수의 국민의 DNA를 국가에서 관리한다는 데에 비난을 받고 있는 와중이라 그를 활용한 사건 해결 비율이 낮은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0년 8월, DNA 데이터베이스의 구축이 시작된 한 달 동안 살인과 아동 성범죄자와 같은 강력범죄자 1,145명의 DNA를 채취해 보관, 대조한 결과 47건의 미제사건들이 해결되어 그 미래성이 기대된다는 기사 이후, 국내에서는 명확하게 DNA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전체 범죄의 어느 정도에 해당하는 사건들을 해결하고 있는가 하는 정보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검찰청의 성과보고에서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된 2010년부터 2017년 현재까지 DNA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강력사건 약 5천여 건을 해결한 것을 실무 결과로 내놓은 것으로 보아 연간 약 715건이 해결되었다고 추정하고, 또한 매년 강력범죄의 검거건수가 약 2만 3천여 건(2011년~2015년 검거건수 평균) 임을 감안했을 때, 매년 전체 검거사건 중 3%의 사건이 DNA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해결되고 있음을 추론해 볼 수 있다.
범인을 검거하는 수사과정에서의 DNA 활용도 활발하지만, 반대로 억울하게 처벌받은 사람들을 구제하는데 활용되기도 한다. 미국의 Innocence Project는 억울하게 처벌을 받은 사람들을 돕는 비영리단체로 1992년에 창립되었다. 이 단체는 정당하지 못한 증거나 증언을 통해 수감되게 된 사람들을 도와 결백을 증명하는 활동을 주로 하고 있으며, 이 목적을 위한 주된 수단으로 DNA 검사를 활용하고 있다. 실제로 짧게는 3-4년을 억울하게 복역한 사람들부터 20년 이상을 저지르지 않은 범죄를 저지른 이유로 수감되어있던 사람들이 많은 경우 이 DNA 증거를 통해 범인이 아님이 밝혀지면서 DNA 의 범죄 수사 이외의 활용 또한 그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2. 지문
지문을 활용한 범죄 수사는 DNA보다 훨씬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처음 지문을 활용한 범죄 수사는 1892년 아르헨티나 경찰이 범죄 수사에 지문을 활용한 사건으로, 증언과 지문을 통한 증거가 다름이 밝혀져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강점기 시절 지문을 활용한 사례가 있었지만, 우리나라가 지문감식을 자체적으로 활용한 것은 1948년을 시점으로 여기고 있다.
지문 활용의 경우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국내외를 불문하고 가장 활발히 사용되는 과학수사 항목들 중 하나이다. 지문의 경우 DNA보다 여러 방면에서 효율성이 더욱 뛰어나다. 증거 채취 과정에서 손상될 경우라 하더라도 지문은 사진 등의 기록으로 남겨져 있을 경우 증거로의 활용성을 여전히 가지게 되며, 그 검사 과정 또한 DNA와 같이 고가의 장비가 필요한 경우도 많지 않다 (지문 자동 검색 시스템 등을 갖추는 데에도 많은 비용이 필요할 수 있으나, 일반적인 지문대조를 생각해 보았을 때를 전제로 한다).
우리나라의 지문감식 시스템은 그 어느 나라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 일정한 나이가 되었을 때 전 국민이 열 손가락의 지문을 모두 제출하고 주민등록증을 발급받는 과정은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례적인 제도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범죄경력자나 외국인의 경우에만 나라에서 지문을 요구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국민 모두에게 지문의 제출을 의무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이러한 축적된 국민들의 지문을 활용해 '미제사건 현장지문 재검색 사업'을 통해 정기적으로 미제사건 현장에서 증거로 나온 지문과의 대조작업을 진행, 미제사건으로 남을 뻔했던 사건들을 해결하고 있다. 2010년부터 2016년 7월까지 총 4,285건의 미제사건 범죄자 지문을 재검색해 1,861명의 신원을 확인, 이를 대상으로 수사를 진행하여 528건을 해결하였는데, 해결된 사건들은 절도 318건(60.2%), 성범죄 135건 (25.6%), 강도 69건 (13.1%), 살인 6건 (1.1%) 순으로, 검거자 중 대부분은 범행 당시 미성년자나 외국인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지문의 활용을 통한 긍정적인 결과는 미수로 그칠 뻔했던 범죄자들을 검거했다는 데에 있어서는 훌륭한 결과이지만, 반면 이를 위해 다수의 국민들이 '잠재적 범죄자'가 되어 그 대조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은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우리나라의 지문등록제도가 헌법상 위헌이 아닌가 라는 논란은 2000년경 진행되었지만, 위헌이 아닌 것으로 판결이 나게 되어 일단락 지어지기도 했다.
*관련 글 (브런치 매거진 '범인은 이안에도 있다')
#3. 과학수사 그 이상
DNA와 지문은 이제 더 이상 범죄 수사와 떨어뜨릴 수 없는 위치에 있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생체 증거들의 활용이 일반적인 생각만큼 활발하지는 않고, 모든 사건들이 이를 통해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과 비용이나 시간이 들 수 있고, 잠재적 범죄자로 내 지문이 미제사건 현장에서 나온 지문과 대조될 수도 있다는 사실 등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을 수 도 있다.
그러나 이를 통한 장점들 또한 무시할 수는 없다.
먼저 이러한 생체 증거들이 범죄 수사에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은 실제 범죄를 저지르려고 하는 잠재적 범죄자들에게 부담이 되어 범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이는 실질적으로 실험이나 조사를 통해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이나, 일반적인 자유의지를 가진 잠재적 범죄자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범죄를 저지른 이후 검거될 가능성이 있다고 여긴다면 범죄의지가 줄어들 수 있다는 논리적 결론은 충분히 가능하다.
또한, 이러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지 않았을 경우 미제사건들로 남을 수 있던 사건들이 (그 수가 많지 않다 하더라도) 해결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어떠한 종류의 사건이든 피해자에게 큰 위안이 될 수 있다.
'과학'수사이지만 기술적으로만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범죄학에서의 과학수사라고 여겨진다. 이후 어떠한 종류의 과학수사가 범죄자를 찾고, 피해자를 줄이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그 미래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