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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경 Oct 12. 2022

서울사람 다 됐네

그러게요. 

아직 '서울말'보다 사투리를 더 쉽게 사용하는 나. 그렇지만 나도 스스로 이제 나 서울에 산 지 좀 됐구나, 또는 주변에서 오래 산 사람보다 더 잘 하네? 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바로 내가 지하철 타는 것 보다 버스를 타고 다니는 걸 더 잘한다고 말할 때이다.  


아니, 진짜, 정말 어플이 너무 잘 되어 있다구요!


요즘은 승하차 알람까지 있어서 예전처럼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아도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게 어렵지 않다. 바깥 풍경을 보면서 시공간의 움직임과 함께 서울을 한껏 즐긴다. 부산 사람은 오지랖이 넓다는데 나는 내향인이라 직접적인 오지랖은 떨지 못하지만, 간접적으로나마 오지랖을 떨고 다니는 공간이 바로 버스 안이다. 새로운 곳을 보는 것도 좋고 사람들을 보는 것도 정말 재밌다. 대중교통 안에서는 내 멋대로 궁금해 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나는 부산에서도 버스타고 다니는 걸 좋아했다.


벚꽃이 필 때면 벚꽃이 아름다운 길을 따라 달리는 버스를 탔고, 바다가 보고 싶으면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버스를 타기도 했다.

학교를 기준으로 나와 반대쪽에서 등교하던 친구가 있었다. 내가 타는 버스의 종점은 시장이었지만, 그 친구가 타는 버스의 종점은 송정 해수욕장이었다. 학교 근처의 버스정류장에 내려 골목을 하나 가로질러 맞은 편 길로 나가면 친구가 탄 버스가 내리는 정류장이 있었다. 우린 그 곳에서 만나서 등교를 같이 하곤 했다. 어느 날 아마도 방학 보충수업이었던 것 같은데 학교에 무지하게 가기 싫었다. 나의 마음과 친구의 마음이 같았는지 친구는 버스에서 내리지 않았고 나는 그 버스를 지체없이 탔다. 우리는 그 버스를 타고 버스 종점까지 그냥 쭉 바깥을 구경하며 타고 갔다. 솔직히 바깥을 봤는지 수다를 떤건지 뭘 했는 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생각보다 종점까지 가는 버스는 멀고 지루했으며, 바닷바람은 무척 차가웠고, 교복을 입고 있는 우리는 너무 튀었다. 친구와 나는 다신 이런 행동을 하지 말자고 생각하진 않았고 여름에 다시 오자! 라고 다짐을 했다. 그 후로도 종종 우리는 버스를 타고 바닷가까지 가곤했다. 여름엔 사람이 너무 많고 겨울은 너무 추웠기 때문에 자율학습을 빠지고 가거나 시험 마지막날에 버스를 타고 바닷가까지 가곤했다.


 이런 생활은 서울이라고 달라지진 않았다. 저 아파트는 얼마일까, 저 차 번호 특이하네. 언주역의 뜻은 뭘까? (참고로 언주역은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이었어서 언주라고 한다. 언주동이 아니었다니!) 지하철을 타고 다닐 땐 발견하지 못하는 궁금증들을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하나하나 발견한다. 덜컹거림때문에 지하철보다 폰에 덜 집중되는 공간이기도 하고 새로운 것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버스이기도 하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덜컹거리는 버스에서 책을 읽으면 멀미가 날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바깥을 보거나 친구와 수다를 떨기에 어떠한 대중교통보다 버스가 적합하다.


그리고 진상도 지하철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적다. 지하철 환승역에 진입하면 나도 모르게 전투력이 올라간다. 내리자마자 멈춰서 길을 막는 사람, 내리지 않았는데 타는 사람, 내려야 하는데 문 앞에서 비켜서지 않는 사람 등...출퇴근 지하철은 타는 것 만으로도 고통이고 화를 부른다.


이렇게 버스를 좋아하는 나지만 내가 사는 곳은 지하철역에서 정말 가깝고 많은 호선들이 지나간다.

나는 개인적으로 서울대입구와 낙성대사이의 집이 더블 역세권이 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환승역 하나 없이 같은 노선 사이에 있는 것은 더블 역세권이 아니라 이것은 어디도 가깝지 않다는 것을 뜻이다. 적어도 더블 역세권이라면 한 역정도는 환승역이어서 2개 의 노선이 지나야 비로소 지하철 더블 역세권이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집은 트리플 역세권이다. 강남-교대처럼 두 역을 뚫는 하나의 노선이 있고 두 역 모두 환승역이라 총 3호선의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다. 이런 곳에 사는 장점은 어지간한 곳은 지하철이 훨씬 빠르다는 것이다. 지하철로 가는 게 더 느린 경우는 지하철이 가지 않는 곳 밖에 없다. 생각보다 너무 가까워 이사온 직후에는 몇 번 내릴 역을 지나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역시 출근길을 제외하고는 버스를 좋아한다. 가끔은 퇴근길에는 한참을 걸어 버스를 택하기도 한다. 에어컨이 틀려있지만 공기 순환이 안 되어 순간적으로 땀이 확 날 때, 조금 더운 바람이지만 버스의 속도가 더해져 빠르게 불어 땀을 식혀주는 바람이 좋다. 그늘 하나 없는 한강 다리 위, 교통체증으로 버스가 정체중일때 따뜻하게 달궈진 버스에서 꾸벅꾸벅 조는 것이 좋다. 버스 창문에 붙어 있는 투명 스티터 광고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버스를 타고 광화문을 지나거나 독립문을 지날 때면 때론 관광지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은마 아파트를 지나고 있으면 여기가 그 은마 아파트! 하며 놀라기도 한다.


버스를 타고 멍하게 앉아있으면 도시에 속해있으면서도 한 발짝 떨어져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 느낌이 정말 좋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느낌. 이 느낌 때문에 나는 오늘도 지하철로 십오 분이면 갈 거리를 버스를 타고 삼십 분 이상 걸려가며 돌아가는 것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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