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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경 May 16. 2024

한국이 싫어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한국이 싫어서’가 2023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 한국이 싫어서. 이것만큼 현재 나의 원동력을 잘 설명해주는 이유가 있을까? 장강명 작가의 다른 소설을 읽으며, 이 작가의 작품을 다 훑겠다고 생각했다. 과몰입 장인의 특징이지 않는가?


일반인들은 소설이나 영화를 다 보고나면 ‘재밌었어. 슬펐어.’로 마무리하고 나같은 사람들은 그때부터 시작이라고. 영화를 보고 마음에 드는 포인트가 생기면 그 포인트를 집요하게 확인하는 사람.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지만 그렇다. 그게 바로 오타쿠다. 장강명 작가의 ‘댓글부대’ 이 작가 책은 무조건 다 봐야겠다라고 생각하게 만든 책이었으나 아직 실천하지 못한 채, 어느새 작가님의 소설은 영화로 만들어져서 국제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공개됐다. 그래, 줄거리도 모르고 영화도 모르지만 지금 내 마음을 대변하는 단 한 줄 ‘한국이 싫어서’ 한국이 싫어서 열심히 사려고 노력하는 -그러나 마음만큼 쉽지 않은- 나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한국이 싫은 이유에 대해선 밝히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한국이 진짜 싫은 이유가 내가 밝히는 이유의 반박이자 이유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그 어느때보다 영어공부를 열심히 한다. 한국이 싫어서 떠나고 싶을 때 나를 가로 막는 장애물이 ‘언어’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물론 많은 장벽이 있겠지만, 가장 원론적인 장벽은 제거하고 싶다.

 어릴 때도 외국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면서, 그 때 열심히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후회하지만 이미 어릴 때는 너무 지났고, 후회하기에 내 나이는 또 그렇게 많진 않다. 일단 시작하는 게 더 맞는 상황이다. 고리타분하게 느껴졌단 문법, 시제가 왜 필요한지 이제서야 깨닫고 있다. 언어는 보수적으로 공부해야 한다, 언어 공부에는 늦음이 없다를 언제나 되뇌며 책상의 먼지 제조기가 되어버린 ‘grammar in use’를 다시 펴 본다. 여전히 너무 보기 싫은 구성이고 대체 이게 도움이 될까에 대한 의문을 품지만, 지금은 의문을 품을 시간도 없다. 그럴 시간에 하나라도 더 확인하고  복습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왜 이걸 어릴 때 몰랐을까! 또 후회한다) 여전히 영어는 어렵다. 영어가 어려운 것도 많지만, 어린 날의 나보다 표현하고 싶은 말도 많고 의견도 많아졌다. 내 의견을 자세히 전달하고 싶은 욕심만 가득이다. 세세한 표현은 조금씩 늘어가지만 굵직굵직한 표현은 거기서 거기다.

이번엔 큰 맘 먹고 어느 외국어 공부 사이트의 연간 결제도 했다. 책도 샀다. 책의 내용을 보아하니 이들은 초급이라고 가르치지만 이미 오랫동안 쌓인 정보를 봤을 때 절대 초급이 아니다. 한 달에 한 권 씩 진도를 나가는 프로그램이지만 내 생각엔 1년 동안 이 한 권을 끝까지 다 보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큰 공부가 될 것이다. 30일 분량을 아직 이틀치밖에 보지 않았다. 그저 한 권 무탈하게 끝냈으면 좋겠다. 1년에 한 권이 목표다. 그 책에 있는 것만이라도 무사히 다 알았으면 한다.


나는 요즘 그 어느때보다 컨텐츠에 진심이다. 한국이 싫어서 떠나려고 여기 저기 취업 이민을 기웃대지만 사실상 쉽지 않다. 별반 기술이 없는 평범한 문과출신이라는 점이 특히 그렇다. 20년 전 나에게 해주고 싶은 충고가 무궁무진하게 많지만 그 중에 진짜 정말 하고 싶은 말을 하나만 고르자면 (이과를 선택해!다) 나의 커리어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대학을 한국에서 나온 친구들을 기준으로 어떻게 외국에 나갔는 지 확인해보면 두 번째로 많은 수가 어학원 등록 후 카페 알바였고 첫 번째가 결혼이었다. 오죽하면 워킹 홀리데이로 외국에 있는 친구들이 한국에 들어가기 싫어할 때 듣는 말 중 하나가 노숙자 잡아서 호적상 결혼만 하라. 라는 말일까.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다고는 하는데, 사실 주변엔 없고 한국에서 결혼을 해서 남편의 나라로 들어가거나 근무하다가 만난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경우였다.  그런데 나는 두 가지가 다 불가능하다.

나이가 많아서 할 수 없는 건 키즈모델과 고등래퍼뿐만이 아니다. 워킹 홀리데이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나는 그 어느 순간에도 연애가 내 인생의 우선 순위에 올라온 적이 없다. 물론 누군가를 만나고 감정의 교류를 하는 거 무척 소중한 경험이라는 것,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의 이전 데이터를 확인했을 때, 나는 나를 너무 좋아한다. 그렇기때문에 연애-결혼 루트도 나에겐 쉽지 않다.


그렇다면 외국에 취업으로 나가는 것 보다는 컨텐츠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 일명 ‘한달살기’ 사실 한달살기는 너무 여행이고 최소 두 달은 살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일반 회사를 다니며 n달 살기를 하는 건 불가능하니, 프리랜서 또는 창작을 업으로 삼는 컨텐츠 크리에이터가 되어 외국에 있더라도 일을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다못해 네이버 블로그로 광고수익 창출이라도 꾸준히 해야 한다. 몇 달에 한 번씩 정산 받는 소중한 5만원. 그 5만원을 50만원으로 500만원으로 만들고 싶은 바람이 있다. 유튜브는 쉽지 않고, 나의 경우는 글쓰기가 내 티끌같은 재능을 보여줄 수 있는 무언가다. 그래서 티끌같지만 놓지 않고 계속 무언가를 생산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현실로 돌아와서, 한국이 싫어서 한국을 떠나고자 하지만 이 곳에 살아야 할 이유 투성이다. 사랑하는 가족, 치안 같은 진부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결혼을 하지 않으면 잔소리를 듣는다고 하지만 지금 우리 나라는 “에이 그런 말 하는 시대 이제 지났어요~”까지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오히려 외국(여기서 말하는 외국은 서양이다)은 가족에 대해 보수적이라고 들었다. 결혼 연령이 올라가고 출생율은 떨어지는 건 매한가지라고 하지만 여전히 결혼하지 않은 사람, 결혼뿐만 아니라 이성간의 관계에 적극적이지 않은 사람을 이상하게 본다. 문제점이 발생했을 때 극복하려고 하지 않고 피하는 성향을 본다나 뭐라나. 언제부터 그렇게 일처일부제에 진심이었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지 모르겠다.

그리고 소름 돋게 많이 오른 물가임에도 여전히 저렴한 물가도 이 곳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걸 ‘치안’과 연결시키면 정말 재밌는 곳이 바로 한국이다. 상대적으로 치안이 좋으면서 물가가 저렴한 곳이 어디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다지 없다. 치안과 물가는 비례한다. (여기에 위생과 연봉까지 고려하면 선택지는 더 줄어든다) 우리나라도 소름 돋게 비싼 게 부동산의 가격이지만, 비슷한 경제규모의 다른 나라를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의 부동산 가격도 그렇게 ‘소름돋게’ 비싸진 않다. 내가 살 수 있다와는 별개의 문제다.


그럼에도 나는 언제든 기회가 생기면 떠난다는 생각으로 허들을 낮추기 위해 노력한다. 적극적으로 길을 두들이진 않지만, 조금씩 나가다 보면 길이 보일 것이다.가 내 지론이다. 이전엔 노력과 별개로 계획 세우는 걸 좋아했지만 지금의 나는 먼 계획을 세우진 않는다. 특히 나를 많이 뒤흔들게 된 계기는 코로나였다. 코로나로 시작된 외부의 변화는 내 가치관을 뒤흔들며 내 장기계획은 외부 영향 아래 무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요즘 참 좋아하는 말은 “하루는 열심히, 인생은 되는대로” 그리고 “늙더라고, 낡지는 말자”라는 말이다. 첫번째 말은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본인의 좌우명이라며 한 말이고 두 번째 말은 어느 운동에 빠진 할머니가 근육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을 자랑하며 했던 말이다. 요즘의 나는 이 말을 새기며 하루를 충실히 살기위해 노력한다. 한 발 씩 나가다 보면 어느새 내 삶이 조금은 다른 방향도 생각할 수 있으리라, 안주하지 않기 위해 오늘도 노력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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