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 역세권, 풀옵션 말고도 월세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
들어가기 앞서 정보성 글이 아니라 개인적 견해임을 밝힙니다.
나는 집이 남향인지 동향인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집은 남향이 좋아, 이런 말을 많이 들어와서 한 번 확인하려고 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기준의 모호함에 언제나 대충 생각했던 게 집의 방향이었다.
남향은 어딜 기준으로 하는 걸까? 문인지 창문인지, 우리 집은 2면이 창문인데, 어느 창문을 기준으로 집의 방향을 결정하는지 알 수 없었다.
동생과 함께 살았던 집은 햇빛이 ‘안’드는 남향 집이었다. 부동산 아저씨가 남쪽으로 창이 크게 나있다고 여러 번 강조했던 기억이 있다. 남쪽으로 창문이 나 있다는 걸 이렇게 강조해서 들은 건 교과서에 실려있던 '남으로 창을 내겠소' 시 이후로 처음이었다. 남향집이 좋다고 어릴 적부터 들어왔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 집 에 가산점을 줬지만, 원룸치고 꽤 큰 창문이 있는 그 집은 햇빛이 그다지 잘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동쪽으로 난 작은 창으로 해 뜰 녘에 햇빛이 더 잘 들어서, 햇빛과 방향이 무슨 관계인지 의문이 들었다. 어차피 잘 들어오지 않는 햇빛, 독립을 준비하면서 남향집에 굳이 살아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집을 구하러 다니며 집의 방향은 크게 고려 사항이 되지 못했었다. 하지만 집을 계속 보고 다니면서 나는 평수, 에세냉(에어컨,세탁기,냉장고)의 여부 그리 고 역세권만큼 월세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압,치안,역세권 등등 많은 것들이 집값에 영향을 미치지만, 소소하지만 지나칠 수 없는 것들 그리고 첫 눈에 판단할 수 있는 것들을 추리자면 그것은 층, 문, 빛.
수없이 많은 것들 중에 나는 1순위로 이것들을 중요하게 여기고, 이것들은 바로 5~10만원정도의 미세한 차이를 불러오는 것들이다. 집을 사는 것도, 아파트를 구하는 것도 아닌 입장에서 내가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것들을 말해보고자 한다.
층 : 벌레가 나오면 집을 버리는 것을 선택하는 나는 3층 이상을 고집한다. 원룸이나 투룸 건물은 확실히 층수가 올라가면 집이 비싸진다. 어쩔 수 없지만 나의 편안을 위해 낮은 층은 절대 안된다. 집이 3층인데 생각보다 저렴하다면?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이전 세입자가 어떤 상황인지를 알아봐야한다.
한 번은 집을 알아보다가 텔레비전에 식기 세척기까지 두고 간 분이 있었다. 깨끗한 건물 적당한 층수 모든 것이 맘에 들었지만 세간살림이 너무 많아서 의문이 들었다.
부동산 중개인은 나에게 '남자분이 살았는데 급하게 발령받아 대전으로 내려가서 살림을 다 두고 간 상태'라고 말했지만, 어플에 올라온 글은 '여자 분이 살던 집이라 깨끗하고 결혼을 했다고 하더라.' 적혀 있었다. 집이 좋은데, 말이 달라서 찝찝하다고 친구에게 전하자 친구가 급하게 옥살이 중 아니냐고 농담을 던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경도 안 쓸 말이었지만, 그때 나에게 너무 합리적인 말로 다가왔다. 그렇다고 집이 마냥 높을수록 좋은 것은 아니다.
빌라 건물의 하이라이트 꼭대기 층. 층간 소음에서 해방될 순 있지만, 추위와 더위가 언제나 함께하고 있다. 간혹 옥상 누수를 신경 써야 하는 집도 있다. 벽지 상태를 꼭 확인해봐야한다. 물의 흔적이 있다면 젖었다 말랐다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문: 확실하다. 문이 많을수록 비싸다. 먼저, 원룸의 문은 기본적으로 2개다. 현관문, 화장실 문. 그리고 좀 더 살만한 집은 부엌과 방을 나누는 문 하나가 더 추가된다. 부엌이 분리되어있는 원룸. 혼자 살 집을 구할 때 나 역시도 원했던 구조이기도 하다.
수없이 많은 냄새로부터 나의 옷과 침구를 보호할 수 있고, 중문이 있는 편이 냉난방에도 더 도움이 된다. 하지만 생각처럼 주방이 분리되어있거나 확실한 기능을 할 수 있는 집은 찾기 힘들다. 신발장 또는 보일러실 한 쪽에 싱크대와 인덕션, 세탁기가 설치해놓고 분리형이라 이름을 붙인다.
물론 사람이 생활할 수 없는 구조라고 해도 분리형이 좋긴 하다. 집에서 생활을 하다보면 세탁기 소리가 생각보다 크고, 환풍구가 있더라도 방금 끓여먹은 라면 냄새는 잘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너무 어이없는 구조를 가진 집들을 인터넷으로 많이 보게 된다. 정말 이럴까? 싶을 정도로. 정말 그런 집들이 집이라고 할 수 있는지, 벽과 문을 설치해 기능별로 나눠놨다고해서 분리형의 기능을 하는지 건물주분이 살아봤으면 좋겠다!
빛: 남향에다가 햇빛이 잘 든다? 그렇다면 부동산 어플에도 꽤 상단에 적혀있을 것이고, 중개인의 영업 멘트에도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북향이거나 서향이라면? 아마 중개인이 굳이 먼저 말하시진 않을 것이다. 스스로 가지고 있는 어플을 수평으로 맞춰서 어느 쪽이 남쪽인지 확인해야 한다.
낮에 한 번, 밤에 한 번 방문해서 빛이 잘 드는지 확인하라고 하는데 이 건 큰 평수 집이나 아파트에 적용되는 말이지, 어지간한 원룸은 항상 불이 켜져 있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 하지만 하나 확인해야 할 것은 있다. 침대를 창문가에만 놓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창문이 동향인지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 이건 진짜 살면서 알았다. 벽하나와 외부가 분리된 집의 뜨거움을.
동향이라면 두꺼운 블라인드를 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름 주말에 늦잠을 즐기는 것 대신, 실시간으로 온몸이 더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꼭 확인하시라. 침대가 들어갈 곳이 어느 방향인지, 창문 옆 말고 다른 곳에 붙일 수 있는지.
내가 사는 집은 층, 문, 빛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지 대입해보겠다.
층 : 일단 나는 3층 이상에 살고 있다. 월세에 가산되는 요소다.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에, 다시 마이너스. 본전치기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택배 기사님들에게 가끔 죄송할 때가 있다. 생수도 생수지만, 얼마 전 가구를 시켰을 때 굳이 전화해서 한 번 더 확인하시는 기사님 께 너무 죄송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추가 비용을 더 냈음에도, 죄송한 것이 나의 몫이었다.
문 : 내 집은 일반적으로 '원룸'이라고 생각하면 떠오르는 구조이기 때문에 방 자체는 큰 가점 사항이 없다. 현관을 열고 들어오면 한눈에 방이 들어온다. 화장실도 벽으로 분리되어있다. (당연한 얘길 왜 하냐 싶겠지만, 가끔 화장실이 벽이 아닌 구조물로 분리가 되어 있는 집이 있다. 대학가일수록 그런 곳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집엔 자랑할 만한 구조가 딱 하나 있으니, 바로 베란다이다. 2평은 족히 차지하고 있는 것 같은 베란다는 빨래방을 가지 않아도 이불을 널 수 있게 해주고 입었던 옷을 탈탈 털어서 환기 잘 되는 곳에 걸어 놓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실내에서 전혀 가늠할 수 없는 바깥 날씨를 예상해보는 공간으로도 쓰인다. 오래된 집이지만 이 집을 선택하게 된 계기도 이 베란다 공간이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낡은 건물 꼭대기 층이지만 하루 만에 계약을 결정했다.
빛: 지금 내가 사는 집은 북동향이다. 빛이 든다고 느끼지 못했던 남향집보다 훨씬 어둡다. 동쪽으로 큰 창이 있어서 덜 어둡긴 하지만, 동쪽으로 난 큰 창이 원룸에 있다는 건, 여름에 창문을 다 열어 놓고 자고 있으면 온몸으로 더위를 만끽하게 된다는 것이다.
북향집에 사는 친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집에 있는 동안 항상 불을 켜둬야 한다고. 빛은 채광의 문제 뿐만 아니라, 생활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아마, 이 글을 쓰는 내내 몇 번이나 등장하게 될 빨래때문이다.
다른 집안일보다 빨래는 정말 집안 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 빨래는 다른 집안일과 달리 시공간, 그리고 경제력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설거지를 못 했다고, 밥을 먹지 못하는 것 도 아니고, 잠을 잘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집에 먼지가 많다고 숨을 쉴 수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집의 여유 공간에 빨래가 가득 널려 있다면? 침대 위에 누워있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나마 햇빛이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집이라면 빨래가 널려있는 시간이 줄어들겠지만, 햇빛이 안 든다면 빨래는 오랜 시간동안 내 공간을 차지하게 된다.
요즘 건조기도 잘 되어있다고하지만, 원룸에서? 건조기요?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빨래방에가서 건조기를 사용하는 편이 더 이득이다. 하지만 또 , 빨래를 이고 지고 빨래방에 가서 오천 원을 쓰고 와야 한다. 결국 시공간을 돈으로 산 셈이다.
우리 집은 집값 가산점에서 0점을 받았다. 층은 높지만 엘리베이터가 없고 문은 적지만 베란다가 있다. 그리고 북향이지만 창이 커서 어둡진 않다.
가산점은 0점을 받았지만, 나의 만족도 점수는 거의 만점에 가깝다. 이상향이 너무 멀다면 고통을 줄여라. 고통을 줄임으로써 나는 만족도를 얻은 셈이다. 집주인도 좋은 편이라 어지간하면 이 곳에 오래 오래 살고싶다. 부디 내가 어느 정도 돈이 모일 때까지 집주인이 집을 팔거나 집값을 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입자의 큰 걱정이자 작은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