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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은솔 Jan 21. 2024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2024 낫저스트북클럽 2월의 책

읻다는 낫저스트북스의 시작부터 함께한, 개인적으로도 제가 참 애정하는 출판사입니다. 국내에 잘 소개되지 않던, 하지만 꼭 있어야 하는 시와 철학, 인문사회 분야의 번역서를 주로 출간하던 곳에서 지난해 동네서점주들에게는 익숙한 이름의 작가의 신간을, 그것도 인터뷰집을 발간한다며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좋아하는 출판사에서 믿고 읽는 작가의 책을 냈다니 당연히 주문해서 읽어보려는데 표지에서부터 멈칫했습니다. 제목 밑에 ‘한국 시 번역가 인터뷰 산문’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시 번역가’라는 직업도 생소한데 ‘한국 시 번역가’라니? 한문을 쓰던 옛 시절의 시를 현대어로 번역한다는 말일까? 오리무중 한 상태로 책장을 펼쳤고, 마지막 장까지 싹싹 긁어 비우며 다 읽은 후의 경험은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좋아하는 익숙한 동네를 걷다 이게 뭐지? 싶은 장소의 문을 약간의 두려운 마음으로, 별 기대 없이 열었는데 별천지 같은 동네 책방을 발견한 기분이랄까요.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게 될 것들로 가득 찬, 자주 찾고 싶고 오래 머무르고 싶은 공간인데 심지어 나만 알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책방 말입니다.


“한 편의 시는 ‘네가 세상에 무엇을 더하였는가?’라는 엄혹한 질문에 버텨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에게 글을 쓰는 일은 저 엄정한 물음에 성실하게 대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나의 노동은 세상에 무엇을 더하고 있나. 나는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고 있나.

글쓰기라는 행위 이면에 넓게 자리한 글 쓰는 이의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작가 은유는 이 책에서 한국 현대시를 해외 각국의 언어로 번역하고 소개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7인을 만나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정성스럽게 엮었습니다. 시와 번역이라는 다소 낯선 분야를 각 개인의 시선으로 소개하며 한 사람에게, 한 사회에 시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나아가 문학이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이야기합니다. 당연한 결과로 이 한 권의 책을 읽으며 읽고 싶어지는 시와 알고 싶은 시인들이 많이 생겨나 시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그만큼 커지게 되니 시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독자에게는 실용적인 면도 있습니다.


원래 더 많이 사랑하면 더 많이 상처받는다. 일을 대하는 온도와 태도가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무신경, 무감각, 무지를 감당해야 한다.

베스트셀러 위주의 도서 소비 유행에서 벗어나 잘 알려지지 않은 양서를 소개하며 한 권의 책을 읽는 경험으로 읽기 전의 나보다 읽은 후의 내가 더 나은 방향으로 다른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이것이 제가 서점을 하는 이유이자 낫저스트북클럽을 통해 매달 한 권의 책을 집중 소개하는 목적이기도 한데요,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가 바로 여기에 딱 들어맞는 책입니다. 북클럽을 통해 한줄평을 해본 적은 없지만 이번에는 한 번 해보려고 해요. 이 한 문장만으로도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은유, 읻다, 시, 번역가, 그리고 순수한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세상. 

별 다섯 개.


책 읽는 즐거움을 함께 누리는 낫저스트북클럽, 2024년 2월의 책

은유 작가의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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