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수연 Oct 19. 2022

옵션쇼크! 키클롭스 꼬리를 밟은 사람들(4)-연재소설

1.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다-04


키클롭스

(포식자 4)     

 전 부장의 제안이 있었던 토요일 운동 이후 일요일 하루 내내 고만해는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며 선택을 놓고 고민을 이어갔다. 제안에 대한 응답 마감 시한을 전 부장이 얘기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일요일 오후가 되자 그는 마감이 다가온 수습기자처럼 다급하고 초조했다. 

“뭔 일 있냐? 생전 잘 눕지도 않던 애가 온종일 침대와 씨름을 다 하고. 직장이 어렵냐? ” 

어머니는 그녀의 모성 본능에 따라 고만해의 갈등을 눈치챘다. 어머니는 자식의 낯선 모습을 보며 망설이다 저녁 밥상머리에서 한마디 한 것이다. IMF 위기 이후 주변에 직장 잘 다니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는 것이 일상화되고 있었다. 경제가 고속 성장하며 일자리가 넘쳐나고 평생직장이 미덕(美德)이던 시대는 어느새 옛말이 된 것이다. 고만해의 어머니는 학교 다닐 때 똑똑한 자식을 어려운 형편으로 도와주지 못해 자식의 사회적 성공에 한계를 만들고 말았다는 것을 늘 죄스러워했다. 그러나 고만해가 자기 형편에 대한 불평 없이 학교도 무난히 마치며, 직장도 '척'하니 갖는 것을 보고 자식에 대한 부채감으로 눌린 가슴을 어머니는 쓸어내렸다. 회사 생활을 시작한 후 고만해가 처음 갈등하는 모습을 목격한 그의 어머니는 직장 문제겠지 추측하면서도 다시금 제대로 돕지 못해서 고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과 걱정이 앞섰다. 그녀는 돈이 있는 자와 없는 자, 권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그리고 그 자식들 사이에 놓인 잔인하고 높은 벽을 평생 살아오면서 잘 보았기 때문이다

“회사가 문 닫거나 내가 일자리를 잃는 것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갑자기 누가 좋은 기회를 제안해서 고민 좀 해 보고 있었어요.” 

어머니는 그제야 조금 걱정이 가신다는 표정이다.


어머니(일러스트-조수연)

“나는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다 믿어. 다만 투기는 하지 마라. 전주 작은아버지는 네가 증권회사 다닌다고 하니 투기하는 거 막으라고 신신당부하고 걱정하더라.”

 처음 증권회사에 입사한다고 했을 때 고만해의 어머니는 탐탁스럽지 않았다. 주식에 투자하다가 망했다는 소리가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들렸고 특히 아버지가 세상 등진 후 정신적으로 의지했던 작은 아버지의 걱정이 컸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일이 공부하고 연구하는 일이라며, 투기와는 상관없다고 설득해 그의 어머니는 마지못해 안심하는 분위기였지만, 어쩔 수 없이 노인에게 불안감은 세상을 사는 본능적이다. 평생 두뇌에 축적한 데이터베이스에서 우러나오는 불안감은 그녀 삶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노인에게는 불안감은 적자 치부책과 같이 버리지 못하고 항상 노인의 행동을 제약한다. 어머니는 돈 번다니 좋기는 하지만 투기라는 단어가 자식의 인생에 끼어드는 것이 꺼림칙했을 것이다. 그녀는 놀음과 연관돼서 결과가 좋은 사람을 보지 못했다. 나라가 백성들에게 증권을 통해 공개적으로 투기하게 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에게 중간에 증권회사에서 자산운용회사로 옮긴 것을 자세히 얘기하지 않았다. 한참 젊은이들에게도 복잡한 증권 산업의 구조는 이해가 어려운데, 어머니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넘어 공포로 다가갈 수 있다. 특히 노인에게는 불안과 공포는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그래서 어머니는 고만해가 회사를 옮긴 것은 아는데 같은 증권회사로 옮긴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제 어차피 다시 증권회사의 본격 투기판으로 돌아갈 작정을 하는 중이니 어머니의 충고는 다시 유효해졌다. 어머니와의 대화 중에 고만해가 삼양동을 벗어나려는 동기가 더욱 선명해졌다. 지금이 봉급쟁이 생활로는 삼양동을 벗어나는 것은 요원할 것이다. 자신도 삼양동 골목을 고향으로 느끼며 하루하루 인생을 소비하는 덫에 걸릴 수 있다는 공포가 어른거렸다. 어머니의 얼굴에 깊어진 주름이 그에게 나침반처럼 갈 방향을 지정하는 것 같았다. 월요일 아침 오전 부서 회의를 마치자마자 고만해는 전 부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말씀하신 제안에 응하겠습니다’

이후 고만해의 이직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가 이직할 프로이센 증권은 유럽계 글로벌 금융 그룹의 한국 신설 자회사다. 프로이센 은행은 은행장이 2005년 새로 부임하면서 주주들에게 25%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보장하겠다고 공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프로이센 은행은 원래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지역 기반 은행으로 독일에서 100년 가까이 성장해 왔으나, 이 선언으로 하루아침에 이익 추구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주주가치와 자기자본이익률 극대화에 방해가 되는 것은 사람이고 조직이고 가차 없이 정리해 나갔다. 도덕적 해이도 회사의 영업이나 수익 앞에서는 거추장스러운 것에 불과했다. 또 수익을 한 푼이라도 짜내기 위해서 은행은 공격적 경영을 서슴지 않았으며, 그 목적으로 은행은 신흥국 시장을 선별하여 공략하기 시작했고, 가장 역동적으로 커가는 한국 증시도 그들의 메뉴판에 올랐다. 한국은 금융시장 시스템도 선진국 못지않았고 특히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과실만 따 먹고 튀기가 가능한 시장이다. 여기에 아직 금융 산업이 제도적 보호에 의존해 먹고사는 형편이라 글로벌 경쟁력도 높지 않아 그들이 하는 짓을 눈치채기가 어렵고, 지식인의 사대적인 경향이 강해 글로벌 금융기관이라면 무턱대고 신뢰하는 것도 큰 장점이다. 한국 금융 산업은 학맥, 인맥 등만 잘 신경 쓰면 자국민 상대로 편하게 먹고살 수 있으니 굳이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일반산업은 선진국이 넘긴 중화학 등 공해 산업을 중심으로 키워서 세계시장 경쟁력을 제법 키웠으나, 무형의 서비스 산업인 금융시장은 전형적인 후진국 산업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더구나 외국인의 입김에 한국 시장은 크게 반응함에 따라 그들이 편하게 시장을 주무를 수 있는 것도 매력적이다. 그들이 보기에는 큰 사슴만큼은 아니지만 배고픈 호랑이 앞에서 눈을 가린 채 알짱거리고 있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토끼로 보였음이 틀림없었다. 한 푼의 이익이라도 담아 주주를 만족시켜야 하는 프로이센 은행은 부랴부랴 한국에 증권회사를 세웠다. 한국 증권 산업에 선진 금융 서비스를 하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지만, 사실은 한국에 거래 창구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프로이센 증권은 지난 2년간 한국 증권시장에서 성실한 증권회사로 비즈니스 경력을 착실히 쌓았다. 한국 현지 법인의 임직원들은 본사의 속내를 알 수 없었고, 건실한 증권회사로 인정받기 위해서 노력했다. 고만해도 이러한 그림 퍼즐의 잘 맞는 한 조각이었을 것이다. 


 그의 이직 과정은 복잡하고 신중했지만 쫓기는 듯 신속했다. 전 부장에게 이직 의사를 전한 이후 3일 동안 임원진 면접과 사장 면접이 있었다. 고만해는 차장급으로 채용하는 것으로 들었는데 직급과 비교해 면접 절차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면접마다 프라임 브로커를 국내 최초로 육성한다는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차장급 채용에 사장 면접까지 하는 것은 그가 생각하기에 의외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중요한 인물이 된 것 같아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고만해 씨는 프로이센 증권에서 무엇을 하고 싶나요?”

프로이센 사장, 샌디 정은 미국 대학의 MBA를 나와 싱가포르의 미국계 투자은행 아시아 본부에서 기업 상대 영업을 하다가, 한국 프로이센 증권이 설립되면서 CEO로 스카우트된 인물이다. 당연히 한국계라는 장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고, 당시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그가 다닌 미국 대학 출신이었으며 그의 인맥 족보도 재계와 정계에 영향력을 가졌다는 소문이다. 한마디로 국제 금수저였다. 면접하면서 글로벌 무대 경력을 가진 사람 특유의 세련미를 전달하려는 노력이 사장의 질문에 나열된 언어 마디마다 묻어났다. 고만해는 사장의 질문에 형식과 아부로 답한다.

“프로이센 증권이 아시아 금융허브로 진출하는 회사로 성장하는 데 이바지하겠습니다.”

40대의 젊고 도전적인 사장은 의외로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고맙습니다. 아마 고만해 씨는 자기의 역할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군요. 한 가지 더 물어보죠. 우리는 모회사인 프로이센 금융 그룹과 많은 일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글로벌 시장과 한국 시장은 시장 제도나 문화, 금융역량에서 차이가 상당합니다. 고만해 씨는 글로벌 무대를 위해 회사가 육성하는 인재인 만큼 이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과제일 겁니다. 어떤 시각에서 이것은 국내 증권 산업에서 생각하는 상식선을 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차이에 직면할 때도 회사 또는 그룹을 위해 충성도를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고만해는 전혀 예상치 않은 질문에 당황했다. 그러나 한국 금융시장이 모두 모방하고 싶어 하는 선진 금융회사인 프로이센 그룹이 그에게 신뢰를 묻는 데 주저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프로이센 그룹의 성장에 참여할 기회를 얻는다면 제가 오히려 영광이겠습니다.”

정 사장은 눈빛이 반짝였다. 고만해가 추측하건대 아마 영광이라는 단어가 그의 귀에 들릴 무렵인 것 같다. 정 사장이 보기에 엘리트가 되려는 열망하는 욕망과 상명하복 문화, 그리고 배고픔이 잘 조합된 한국 젊은이의 향기가 고만해로부터 물씬 피어나고 있었다. 

“한번 기대해 보겠습니다. 고만해 씨”

 고만해는 사장 면접에서 마지막 이 기대한다는 말만 기억에 남았다. 그러나 고만해의 운명을 가른 대화 내용은 충성 서약 부분이었다는 것을 그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3년 후 벌어질 그림 퍼즐의 전체 모습이 조명에 얼비치듯 나타났다가 사라졌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이후 고만해에게 닥친 변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했다. 다니던 자산운용회사에 사표를 제출하겠다고 전하자 담당 부장이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잠깐 만류했으나, 적극적으로 붙잡지는 않았다. 그만큼 펀드 매니저 자리를 희망하는 인력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담당 부장이 자기 인맥 관리를 위해 고만해가 비운 자리가 필요했을 수도 있다. 전문성이 필요한 인력 시장은 표면적으로는 생산성이 가장 중요한 평가 요인이지만 그 평가의 문을 여는 키는 같은 값이면 학맥과 인맥이 닿는 사람에게 전해질 가능성이 크다. 고만해는 인수인계를 포함 퇴사하는 데 고작 일주일이 걸렸다. 사실 고만해도 기왕 선택한 거 프로이센 증권 측에 일찍 출근하겠다고 요청했다. 그러나 그런 의사를 표현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오래전에 프로이센 증권은 시나리오를 준비한 듯 보였다. 처음 출근한 날 아침 전 부장 안내로 담당 임원 방에 가서 인사를 한 후 부서 직원들과도 간단한 신고식을 마치고, 고만해는 자기 책상에 앉았다. 그는 새로 받은 업무용 다이어리를 책상 위에 펼쳐 놓았다. 책갈피 끈을 만지작거리며, 불과 열흘 만에 벌어진 변화가 놀랍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생각을 굴려보았다. 약 30여 평의 법인영업부 사무실에 직원들은 2~3개의 모니터를 번갈아 보거나 전화를 들고 열심히 통화하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시간이 오전 9시를 넘어 증권시장이 개장했기 때문에 그들은 거래 법인으로부터 증권을 사거나 파는 주문을 받고 이를 처리하고 있다. 펀드나 기관투자가의 투자 운용과 관련된 매매주문은 펀드 매니저의 투자전략에 따라 복잡하고 다양하므로 펀드 매니저의 전략과 의도를 잘 이해해야 한다. 또한 증권시장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가격 동향을 읽어 가장 좋은 가격에 거래가 체결되도록 해야 하므로 전문성이 필요하고 아울러 신속성은 물론 정확성도 필수적인 업무이다. 또한 기관투자가의 주문은 거래 금액 단위가 크기 때문에 잘못 알아듣고 거래 주문을 입력하면 큰 손실이 발생한다. 이런 사고가 발생하면 거래 주문을 처리하는 증권회사가 손실을 부담해야 하고, 기관투자가로부터도 투자업무를 원활하게 진행하지 못한 벌칙으로 일정 기간 주문을 유예하는 등 회사의 회사 수익 감소의 피해가 발생하므로 직원들은 거래 마감 시간까지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고만해는 주문을 내는 ‘갑’의 처지에 있다가 하루아침에 그들을 상대해야 하는 ‘을’의 입장으로 바뀌어 이들이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니 이것이 잘한 선택인가 하는 착잡함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그리고 꼭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뒤섞이며 잠시 멍해졌다. 

 오전 내내 고만해는 업무용 수첩의 책갈피 끈을 이리저리 꼬며 궁리하고 필요한 메모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점심 식사 시간이 되자 전 부장이 같이 먹자며 사무실 문을 앞장서 나섰다. 건물의 여의도 공원 반대쪽 출구로 나서서 여의도역 인근에 다다르자 거리는 점심 식사를 재촉하는 직장인 인파로 북적였다. 지하도를 건너서 여의도 촌사람들이 먹자 빌딩이라 부르는 건물 3층의 오래된 일식집으로 들어섰다. 전 부장과 고만해는 벌집같이 밀집한 방들을 지나 비교적 한산한 안쪽 방에 들어가 대구탕을 주문하고는 음식 나오기를 기다렸다. 방문 밖의 부산한 발걸음 소리를 잠시 듣고 있다가 전 부장이 말을 먼저 꺼냈다.

“고 팀장 아니 이제 고 차장이지요. 영어 좀 한다고 인터뷰 때 들었는데 맞나요? 저 같은 구닥다리로 영업만 하던 사람은 별로 해당하지 않는 얘기라서”

“영어요? 뭐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듣고 말하는 정도입니다만.”

“아마 다음 주에 해외 파견 겸 연수 명령이 날 겁니다. 아마 화요일쯤일 거 같은데. 그리고 이제 말은 좀 편히 할게요. 고 차장?”

“네. 편하게 말씀하세요. 부장님. 그런데 다음 주에 제가 해외 파견이라고요?”

“좋아요. 편하게 말할게요. 석 달 전에 프로이센 은행 싱가포르 본부에서 요청이 있었지. 글로벌 투자 운용본부에서 한국 시장에 투자할 예정이니까 전담할 팀을 구성해달라는 요구였어. 전담 인력은 싱가포르 본부에서 직접 교육을 진행한다고도 했고. 마땅한 사람을 채용했다고 보고를 했더니 빨리 연수 보내라고 성화야. 어제도 또 재촉하는 요청이 있어서 더는 시간을 미룰 수가 없는 상황이야. 고 차장이 정신없겠지만 한 일주일간 준비하고 빨리 가 줘야겠어. 괜찮지?”

“그렇지만. 저는 아직 업무 숙지도 못했는데요?”

“고 차장 업무는 거기 가서 배워온 후에 스스로 만든다고 봐야지. 프라임 브로커를 육성한다고 내가 얘기했지? 고 차장은 그걸 위해서 채용된 사람이니 시간 지체할 필요 없어. 사장님도 기대가 크니 마음 단단히 먹고.”

갑작스러운 통보에 고만해는 얼떨떨한 가운데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식사를 마쳤다. 

싱가포르(일러스트-조수연)

 고만해는 일주일 후 서둘러 싱가포르로 출발했다. 출발 전에는 국제 법인영업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정 사장도 프로이센 은행 그룹 차원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이니 특히 잘해달라는 당부를 했다. 그렇게 고만해는 싱가포르로 떠났고 거기서 운명의 남자 제이슨을 만났다. 그는 영국인이었고 젊은 프로페셔널이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중심은 뉴욕과 런던이다. 이 두 지역이 세계 금융자본을 움직이는 선진 금융시장이라고 할 수 있고, 아무래도 국제금융에서 역사가 짧은 아시아는 자본력이나 인력, 노하우 그리고 인프라 측면에서 한 수가 아니라 십여 수 아래 일수밖에 없다. 한편 고만해가 출장을 가는 싱가포르는 홍콩과 함께 아시아의 국제금융 허브다.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지역 투자나 영업을 위해 모이는 거점 도시라는 뜻이다. 이곳으로 글로벌 금융회사가 모이기에 그들을 따라 돈이 모이며 아시아 금융시장을 대상으로 한 금융 비즈니스가 활발하다. 프로이센 은행은 중국과 한국 금융시장의 성장에서 유럽의 고객들의 투자 수요를 충족할 금융상품을 개발하고 아울러 자기 자본(proprietary) 투자 기회를 찾기 위해 지구 반대편에 진출한 것이다. 

  그러나 고만해에게는 싱가포르 현장 교육은 쉽지 않았다. 동아시아 투자 담당인 제이슨은 아주 까다로웠고 고만해는 아시아인의 능력을 깔보는 영국인 엘리트의 유사 인종 차별도 감당해야 했다. 약 6개월 동안 고만해는 업무에 시달리면서 제이슨의 언어와 생각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수 있었지만, 제이슨은 차별의 강도를 누그러뜨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싱가포르의 푹푹 찌는 더위와 제이슨의 닦달이 뒤섞여, 차가운 에어컨 바람 속에서도 고만해는 늘 스트레스성 두통에 시달렸다. 짧은 영어 실력도 곧 바닥났고 제이슨의 업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만해는 평일은 물론 주말까지도 사무실에서 데이터와 자료 더미 속에서 빠져 있어야 했다. 연수 기간 내내 흔한 싱가포르 유명 관광지인 센토사섬은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달동네 출신의 끈기로 고만해는 악착같이 버텨 보겠다고 다짐하며 하루하루를 넘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제이슨은 아침 출근하자마자 불러 세우더니 그에게 더 교육하기 어렵다고 강제 교육 종료를 선언했다. 싱가포르 올 때도 얼떨떨했지만 교육의 끝은 더 황당했다. 그는 연수를 제대로 못 받았다고 귀국 후 해고될지도 모르는 불안감이 앞섰다. 급하게 쫓겨나듯이 부랴부랴 귀국 준비를 하면서 그가 묵었던 호텔의 숙소 벽에 제이슨에게 평생 할 욕을 다하고 말았다. 싱가포르에 다시는 눈길도 돌리지 않으리라 그는 마음먹었다. 조기 귀국 상황을 전 부장에게 보고하자 그도 놀라는 기색이었다. 전 부장은 자세한 얘기는 들어와서 하자며 그동안 고생했으니 입국 후 하루는 쉬고 사무실에 나오라고 했다. 고만해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너무 건조한 반응이었다. 1년 예정이었던 출장을 6개월 만에 마치고 돌아오자 어머니는 반가움 반 의아함 반으로 맞이했다. 그는 하루 쉬고 출근했지만 의외로 회사의 반응은 조용했다. 회사에서는 아무도 싱가포르에서 연수 조기 종료 사유 같은 것은 묻지 않았다. 사장에게 귀국 인사를 하러 간 자리에서도 사장은 의례적인 인사만 주고받았을 뿐 역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고만해는 고민하며 변명할 거리를 준비했는데 허탈하기까지 했다. 고만해만 빼놓고 모두 모종의 합의를 본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고만해는 곧 남상문과 한 팀을 꾸려 약간의 거래 법인을 배정받고, 신규 법인 개척 영업을 시작했다. 그의 팀은 고만해의 과거 펀드 매니저 네트워크를 영업 자산으로 작용하면서 나름으로 활발하게 영업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여기에 글로벌 은행의 해외 연수 경력까지 갖췄으니 고만해의 스펙은 영업 현장에 차별화하기에 충분했다. 펀드 매니저에서 법인영업 브로커로의 전격적인 전업도 기관 펀드 매니저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규모는 아직 크지 않았지만, 속도를 더해가는 영업 실적은 시련을 넘어서 고향으로 향하는 오디세이처럼 미래에 대한 기대로 고만해를 설레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에게 제이슨의 불쾌한 기억은 어느덧 잊히고 있었다. 고만해는 법인영업에 적응하며 한창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는 2008년의 봄에 마치 새로운 고만해를 찾아낸 기분이었다. 그러나 금융시장은 녹록지 않은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고만해가 영업을 새로 시작한 2007년 10월에 코스피는 역사상 처음으로 2,000pt를 넘어섰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2007년 2월부터 금융시장의 불안감을 우려하는 뉴스가 간간이 나오고는 했다. HSBC은행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금융상품에서 손실을 보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벤 버냉키 미 연준 의장이 5월 미국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시장이 심상치 않다고 말한 이후, 6월에는 베어스턴스(The Bear Sterns)의 헤지 펀드가 손실을 보았다. 그 영향이 메릴린치, JP 모건 체이스, 시티그룹, 골드만 삭스 등 글로벌 탑 은행에도 확산하기에 이르렀다. 글로벌 은행이 전성기를 구가하는 미국의 부동산 관련 금융상품 투자에 실패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주식시장은 이 뉴스를 대수롭지 않게 일시적인 촌극으로 넘겼다. 서브 프라임(비 우량)이라는 명칭의 금융상품을 잘 몰랐고, 사소한 진동이 있어도 거대한 미국 시장이 설마 흔들리지 않을 거란 맹신이었다. 이런 맹신을 증명하듯이 코스피 지수는 연초 1,300pt에서 10월에는 50% 이상 상승했다. 

버냉키와 헬리콥터 머니(일러스트-조수연)

 그러나 미국 부동산 시장이 흔들린다는 뉴스가 계속되며 뉴욕 증시가 동요했고 한국 증시도 내림세를 면치 못했다. 2008년 3월까지 코스피는 25%가 하락했다.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지만, 그런데도 증시가 출렁이는 변동성이 커지자 이에 대처하기 위한 기관투자가의 거래량은 증가했다. 이에 따라 고만해의 영업 실적은 증가했고 실적에 비례하는 인센티브(성과 보수)도 애초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었다. 알칼리 용액에 담그자 파랗게 변한 리트머스 시험지를 보는 것처럼 그는 자신의 인생 색깔이 변하는 신기한 현장을 그는 목격했다. 인생 포지션을 바꾼 그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이 현실로 입증돼 가는 중이라고 그는 자신했다. 

 하락했던 증시는 5월 중반까지 1,888pt로 반등했으나 다시 급락세를 만났다. 원래 자산 버블의 폭발 직전은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정신이 또렷해지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버블이 최후의 불꽃놀이를 벌이는 것이다. 마침내 9월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은 일시에 붕괴했다. 훗날 대 금융 위기, 영어로는 Great Financial Crisis라고 이름 붙이는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이전에는 전쟁이나 정치적 사건을 중심으로 인플레이션 또는 디플레이션을 동반하며 경제가 침체하거나 핫머니가 경제를 교란하는 사건이 지역적으로 발생했다면, 이번에는 전 세계 금융시장이 한 번에 예측할 수 없이 참화를 당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코스피에도 이 충격은 고스란히 전해져 2008년 10월 중반에는 5월 전 고점에서 그야말로 반 토막이 나고 말았다. 세계 금융시장이 핵 공격에 피폭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자 전 세계 금융, 무역 거래의 기축 통화인 달러의 발권 은행 미연방 준비은행이 도산 위기에 몰린 글로벌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 달러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무차별 달러 공급을 헬리콥터로 돈을 살포하는 것 같다고 ‘헬리콥터 머니’라고 언론에서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한국 중앙은행도 미 연준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면서 한국의 달러 표시 보유 외환은 안정되었다. 이후 물밀 듯한 달러 쓰나미에 세계 금융시장은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적극적인 금융시장 안정책을 시행한 미국이 경제와 금융시장 모두 안정세를 찾았지만, 약한 연결 고리로 단일 통화 권역을 형성한 EU는 적극적인 공동 해결책을 유보하고, 복잡한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히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선진국발 금융 위기의 불씨가 유럽에서 꺼지지 않고 메케한 연기를 피우고 있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부지불식간 찾아온 디지털 머니,화폐 혁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