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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Oct 30. 2022

떠난 줄 알았던 불안과의 재회

첫 토플 시험, 그리고 실패


그렇게 쉽게 극복한 줄 알았던 불안한 마음을 다시 마주하게 된 건 토플 시험장이었다. 8월 4일 토요일. 생애 첫 토플 시험을 보기 위해 시험 장소인 강남역으로 향했다. 시험을 앞두고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노력한 것보다 점수가 잘 나오길 바라는 마음도 살짝 들었지만, 처음 겪는 시험과 낯선 시험장에서 잘 해내지 못할 것만 같은 걱정이 더 컸다.


오전 10시 시험이어서 오전 9시 반쯤 시험장에 도착했다. 처음 보는 진풍경에 긴장감이 더 커졌다. 건물 지하에 있는 시험장으로 가는 계단에 수험생들이 빼곡히 줄을 서 있었는데, 입장 대기 줄이 길어도 너무 길어서 통로를 한 바퀴 돌고도 부족해 건물 밖까지 나와 있었던 것이다.


상황을 파악하려고 두리번거리며 줄 서 있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하나같이 앳된 얼굴들이었다. 대학생들이 대부분이었고 중간중간에 중고등학생도 몇 명 있었다. 심지어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아이들까지 부모와 함께 와있었다.


그때부터였다.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들. 내가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장소에 온 기분. 가슴이 점점 세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심호흡을 깊게 해도 심장 박동수가 떨어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모두가 나를 쳐다보며 '저 아줌마는 여기 왜 왔지?'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이 줄을 서는 게 맞는지, 서류는 이렇게 쓰는 게 맞는지 혼란스러운 것 투성이었지만 불안하고 부끄러운 나는 주변 학생들에게 당당하게 물어보지 못했다.





시험 시간인 10시가 한참 넘은 10시 반쯤이 되어서야 시험장에 입실할 수 있었다. 모든 수험생이 동시에 시험을 시작하는 토익 시험과 달리 토플 시험은 시험장에 입실하는 순서대로 시험을 볼 수 있었다. 리딩과 리스닝, 스피킹, 라이팅 순서로 진행됐는데, 이제 막 입실한 내가 리딩 시험을 볼 때 일찍 입실한 학생들은 이미 스피킹 문제를 풀고 있었다.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 키보드 치는 소리, 마우스 클릭 소리, 수험생이 계속 입실하는 소리가 계속 내 시선을 빼앗았다. 장날 시장통 한가운데에서 시험을 보는 기분이었다. 도저히 집중할 수 없는 상황에 나는 한껏 예민해졌다. 몸은 경직됐고 공부한 내용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으며 손에 땀이 흥건해졌다. 중간에 포기하고 시험장을 나서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토플 시험 과목 중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괴롭혔던 과목은 스피킹이었다. 주어진 시간 내에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얼마나 정확하고 유창하게 하는지가 관건이었다. 처음 듣는 질문에 당황한 나머지 나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든 건 옆자리 남학생이었다. 그 학생은 나보다 먼저 스피킹 시험을 치르기 시작했다. 남학생의 유창한 말솜씨에 나는 기가 죽었고, 버벅대며 대답하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그 학생이 속으로 '거 참 되게 못하네'라고 생각하며 나를 흉볼 것만 같았다. 시험에만 집중하기도 모자란 4시간 동안 나는 불안에 잠식되고 주변 환경에 내 집중력을 빼앗겼다.


시험을 마친 나는 탈진 직전 상태였다. 기력이 달리고 배도 고팠다. 내 머릿속 안테나가 문제 풀이에만 주파수를 맞췄어야 했는데, 불안한 마음에 온갖 군데에 주파수를 잡고 다니느라 남들보다 두 배 이상의 에너지를 쓴 듯했다.


집으로 돌아와 일상에 복귀했지만 그날 겪었던 여러 불편한 감정들은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잠들려고 침대에 누우면 그날 창피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 나를 괴롭혔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마음이 힘들 때마다 꾸던 수능 시험을 다시 보는 꿈을 꿨다.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그날의 불안했던 감정이 불쑥 올라왔다. 대부분 수치심과 창피함이었다.





처음 겪는 실패의 아픔 그리고 재도전


한 달 뒤 시험 결과가 나왔다. 혹시나 행운이 따르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가 무의미해질 만큼 낮은 점수였다. 나는 목표 달성에 완벽히 실패했다. 예상보다 더 형편없는 점수를 마주하니 한동안 정신이 멍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다 실망감과 속상함, 창피함, 허탈함, 아쉬움, 한심함이 실타래처럼 뭉쳐서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나는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선택해야 했다. 여기서 그만둘 것인가. 아니면 좀 더 해볼 것인가. 첫 시험만 보고 좋은 경험이었다고 자위하면서 도망칠 수도 있었다. 꿈같은 거 포기한다고 해서 당장 굶어 죽는 것도 아니니 내가 힘들면 그만둬도 된다고 나 자신에게 위로의 모습을 한 유혹의 말을 건넸다. 실패를 마주하는 건 불안이 높은 내게 공포 그 자체였기 때문에, 더 크게 실패하기 전에 그만두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도망치기는 내가 늘 해왔던 일이었다.


나는 살면서 도전다운 도전을 해본 적이 없다. 실패할 게 뻔한 일은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수가 무서워서 대학교를 하향 지원했다. 아쉬웠지만 내게 재수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최악의 공포였기 때문에 안전한 선택을 했다. 대학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배워보고는 싶지만 어려워 보이는 과목은 수강하지 않았다. 관심 없어도 성적을 받기 비교적 수월한 과목들 위주로 수강 신청했다. 이를테면 발표 과제가 있는 과목 대신 객관식 시험을 보는 과목을 택하거나, 팀 프로젝트 대신 혼자 하는 과제가 있는 수업을 수강하는 식이었다.


회사를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회사보다 합격할 확률이 높은 곳에 지원했다. 그리고 첫 면접을 본 회사에 합격해 바로 입사했다. 딱히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시 취업준비생이 될 자신은 없었다. 다니다 보면 좋아질 수 있을 거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나 자신을 설득했다. 실패를 요리조리 피하는 것도 재능이라고 합리화하면서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한 번도 넘어져 본 적 없다는 사실이 우울을 키우고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자 나는 점점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고 그 선택을 내린 나를 미워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이 부러워졌다. 그 당시에 가장 자주 했던 말은 '부럽다'와 '나도 저렇게 살고 싶었는데...'였다.


내가 보기에도 남들이 보기에도 내 인생은 딱히 나빠 보이지 않았다. 좋은 직장에서 적당한 월급을 받으며 일한다. 내 옆에는 아낌없이 사랑해주는 남편이 있다. 크고 화려하진 않지만 단정하고 따뜻한 보금자리도 있다. 일 년에 한두 번씩 빼놓지 않고 해외여행도 다녔다. 시부모님도 친정 부모님도 모두 나를 아껴주신다. 아무 문제없는 삶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항상 공허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여행을 해도 마음의 허기짐을 채울 수가 없었다.





깨달음의 순간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죽음의 문턱을 다녀온 것도, 인생 영화나 책을 보고 깨우친 것도 아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저녁 식사를 하며 뉴스를 보고 있었다. 앵커는 어제와는 다른 새로운 사건 사고 소식을 전했다. '또 한 명의 분이 이렇게 황망하게 돌아가셨구나...'라고 생각하다 문득 저 사고가 나에게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도 백세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도 언제든지 사고와 재해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죽는 순간에 무엇을 가장 후회하게 될까?'였다. 나는 눈을 감는 순간에 아니 영혼이 되어서도 '이생에서 후회 없이 잘 살았다'라고 말하고 싶은데, 지금 당장 사고를 당하거나 천재지변으로 죽게 된다면 과연 후회 없이 살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목이 메더니 갑자기 눈물이 났다. 동시에 후회스러운 일이 너무도 많이 떠올랐다. 그중에서 나를 가장 속상하게 한 건 '실패가 무서워서 아무 도전도 하지 않았던 과거'였다. 잘하지 못할까 봐 애초에 시도도 하지 않거나, 결과가 안 좋을 것 같으면 도망쳐버린 내가 떠올랐다. 어쩌다 나는 겁쟁이 어른이 되어버린 걸까.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어쩌면 내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상상을 해봤다. 내가 지금 이 순간 병원 침대에 누워 우측에 난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고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해볼 것 다 해봐서 후회는 없다고 생각할까? 두려워도 한 번 해보기나 할 걸 후회하고 있을까.


모든 것이 확실해진 순간이었다. 나는 인생 마지막 순간에 웃고 싶다. 그러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보기로 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남들이 비웃더라도, 그래서 실수하고 실패하는 것이 무섭더라도 일단 부딪혀보기로 했다. 안 해봐서 아쉬운 것과 해봤지만 안된 것은 천지 차이이니까.


그날 나는 난생처음으로 용감하게 실패해 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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