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방모임
'어쩌지? 정말.... 어떡해!!'
우리 집에서 주최하는 첫 방모임을 앞두고 나는 밥을 먹다가도, 컴퓨터 앞에 앉아서도, 화장실에 가서도 방모임을 떠올리면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스무 명이 넘는 손님맞이라니! 이 정도 규모는 신혼 초 집들이 때에도 없었다. 요리도 요리지만 내놓을 그릇이며 숟가락, 젓가락 숫자도 모자랄 판이었다. 결혼 준비 때 엄마가 “손님맞이 할 일이 꼭 생기게 마련이야.” 라며 시큰둥한 내 반응에도 챙겨 주셨던 좌식 상 두 개를 떠올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마저도 몇 년 간 쓰지 않아 먼지가 뽀얗게 쌓였겠지. 올망졸망 세 식구 밥을 소꿉처럼 해 먹던 나의 작고 아름다웠던 부엌은 방모임을 몇 시간 앞두고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그간 이 집 저 집 불려 다니며 잘 먹고 잘 놀던 시절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공동육아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방모임을 하는데, 이 모임을 집마다 돌아가며 주최한다. 아이들과 교사, 가족들이 모두 모여 밥 한 끼 먹으며 한 달 동안 지낸 이야기도 듣고, 새로운 달의 활동 계획도 듣는 자리다. 평소 얼굴 보기 힘든 아마(아빠, 엄마의 줄임말)들도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친목을 다질 수 있는 공동육아의 중요한 행사다.
면접 자리에서 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요즘 같은 삭막한 시대에 이웃들을 집에 초대해 밥을 같이 먹다니 참 따뜻한 문화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자기 집에 친구가 오는 걸 엄청 기다리고 좋아해요."라는 말에는 살짝 감동까지 했다. 아이에게 좋은 건 다 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이다지도 무모하다.
첫 방모임인 만큼 제대로 잘 대접하고 싶은 욕심이 컸다. 고민 끝에 거북이와 함께 과감히 하루 연차를 결정했다. 대 인원 손님맞이를 해 본 적이 없으니 음식량을 얼마나 준비해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그래서 무조건 넉넉하게 준비하기로 했다. 양이 많아지니 평소 잘해 먹던 메뉴조차도 손에서 겉도는 기분이었다. 점점 처음의 욕심은 사그라들어 '어떻게든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수준으로만!'이 되었다.
상을 꺼내 놓는데 창 밖으로 푸르른 마당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신혼 초 아이를 낳게 되면 자연에 가까운 곳에서 마음 놓고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남편과 서울 한복판의 오피스텔을 벗어나 마당이 있는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마당에서 먹을까?" 아직 초여름이라 저녁이면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가든파티에 맞춤인 날씨였다. 거북이도 좋은 생각이라며 흔쾌히 오케이 했다. 우리는 푸르른 잔디 위에 돗자리를 깔고 상을 폈다. 마당으로 이어지는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식기와 고기 구울 불판을 날랐다.
"오셨어요? 00이 어서 와~"
손님들이 속속 도착하고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처음 온 친구네 집을 이리저리 살핀다. 어른들은 마당에 깔린 상을 보고 감탄부터 한다.
"두루미네는 마당 있는 집에 살아서 정말 좋겠어요."
자연스레 아파트 살이의 고충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공동주택에서 아이를 기른다는 건 여러모로 마음고생이 많은 일이다.
"엘리베이터에서 아랫집 사람을 만날 때면 늘 대역죄인 된 기분이에요. 눈도 못 마주치고 도망치듯 피하기부터 한다니까요."
"저는 그래서 이사할 때 무조건 1층이나 필로티만 봐요."
"애 키우는 집에서는 1층이 펜트하우스 라니까요."
"애들 한테 뛰지 마 소리만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해대는 게 늘 미안하죠."
사실 방모임의 또 다른 어려움은 바로 '층간소음'이다. 애 하나, 둘만 뛰어도 시끄러운 공동주택에서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 뛰면 어떻겠는가. 보통 고민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집은 바닥에 빈 틈 없이 매트를 깔아 놓기도 하고, 어떤 집은 사전에 아래층에 "실례지만 혹시 집이 비는 날이 언제일까요?" 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기도 한다. 뇌물성 과일이나 떡을 선물하며 양해를 구하기도 하는데 '이거 먹고 참으라는 겁니까?' 하는 눈빛을 쏘며 음식 받기를 거절하는 집도 있다. 이런 어려움으로 한동안은 방모임이 터전에서 이뤄지기도 했다.
좀 전 까지도 음식 준비로 벌벌 떨던 나는 호기롭게 말했다.
"오늘은 마음 놓고 노세요."
신이 난 아이들은 일단 집 안에 있는 모든 장난감을 꺼내와 와르르 쏟아 놓는다. 정신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노는 아이들 뒤로 밥부터 먹으라는 엄마들의 부름과 손짓들이 뒤따른다. 식사가 끝나고 간식으로 준비한 과자를 내놓으니 이번엔 부르기도 전에 귀신처럼 달려든다. 평소 터전에서는 맛보지 못하는 인공적 달콤함에 푹 빠져 정신없이 과자를 먹어치운다. 여기저기 새 모이처럼 흘리고 다닌 과자 부스러기들이 걸을 때마다 발바닥에서 서걱거리며 부서졌다. 친구들에게 장난감을 보여주며 상기된 표정의 안킬로를 보니 '이 정도쯤이야.' 싶다. 방심한 사이 이번엔 발바닥으로 진득하게 들러붙은 주스가 느껴진다.
'아.... 거북이가 못 봤어야 할 텐데. 설마 이불에도 쏟았을까? 지금이라도 안방 문을 잠가 놓으면 이상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당에서 숯불 냄새가 솔솔 올라온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고기부터 먹자!'
마당에서는 어른들이 아이들 못지않게 상기된 표정으로 웃고 떠드느라 정신이 없다. 야외에서 먹는 음식은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가고 술은 달기만 하다. 넉넉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금세 준비한 음식들과 술이 차례로 떨어진다. 누가 시켰는지 모를 치킨, 곱창, 마트 음식들이 줄줄이 배달을 온다. 배달 온 동네 마트 아저씨가 마당에 벌어진 한 상을 보시더니 절로 입이 벌어진다.
"아니, 이 집 오늘 무슨 일 있어요?"
옆 집 아주머니도 빼꼼히 마당을 들여다보며 한마디 하신다.
이런 거 오랜만에 보네~ 너~무 정겹고 좋다. 사람 사는 동네 같네.
아파트에서는 눈살 찌푸리며 손가락질 받을 일이 우리 집 마당에서는 다정하고 그리운 풍경이 되나 보다.
"거북이, 이제 시설이사 일은 할만해요? 많이 귀찮죠? 뭔 어린이집이 하라는 일은 많고.... 설마 들어온 거 후회하는 거 아녜요?"
손바닥 안에 거북이를 들여다보듯 고래가 호탕하게 웃는다.
"후회 많~~~ 이 하고 있습니다."
진심이라 오히려 진심같이 들리지 않는 거북이의 대답에 사람들이 큭큭대고 웃는다.
"저도 그래요. 이거 하느라 얼마나 힘들고 싸우기도 많이 하고 했는지...."
고래가 묵묵히 고기만 굽고 있는 새우(고래 남편)를 노려본다.
"그래도 난 거북이가 시설이사를 맡아줘서 얼마나 든든하고 고마운지 몰라요. 사실 아빠들이 회사 일로 바쁘고 애들 키우는 일에는 한 발짝 물러서 있는 경우가 많은데, 공동육아에서 만큼은 그렇지가 않거든요. 누가 앞에 있고 누군 뒤에 있고가 아니라 함께 키우려고 노력해야지요."
방 안에서 대여섯 명의 아이들에게 붙잡힌 채 비행기가 소리친다.
"제가 그래서 아직 취업을 못하고 있잖아요. 우리 어린이집을 위해서!"
듣고 있던 미나리(비행기의 아내)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술잔을 들었다. 나는 얼른 잔을 들어 미나리의 잔에 부딪혔다.
터전에서는 아이가 처음 등원을 하면 무려 3주 동안의 적응 시간을 갖는다. 처음 일주일은 보호자가 아이와 함께 나들이를 따라가고, 둘째 주에는 보호자 없이 나들이를 다녀온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밥은 셋째 주가 되어야 먹을 수 있으며, 넷째 주가 되면 아이 혼자 나들이 후 밥을 먹고, 낮잠을 잔 후 하원 한다. 요즘같이 바쁜 시절에 어린이집 적응 기간이 이토록 긴 것은 바로 아이들에 대한 기다림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 얼마나 두려울까', '엄마, 아빠가 얼마나 보고 싶을까'를 헤아리고 충분히 적응하도록 기다려주는 것이다. 첫 어린이집 적응에 실패한 안킬로였기에 이 기간에 대해 들었을 때 부담보다는 안심이 되었다.
첫 주, 내 손을 잡고 신나게 나들이를 나가던 안킬로는 둘째 주가 되자 엄마 없이 나들이를 가야 한다는 사실에 어김없이 울음을 터뜨렸다. '여기까지 왔는데 또....' 하는 좌절감이 들 때 마침 교육아마(일일교사)로 들어와 있던 비행기가 안킬로의 손을 잡아 주었다. 울음을 그치지 않자 안킬로를 번쩍 안아 어깨에 앉히고 비행기를 태우며 나에게 괜찮다고 손짓해 주며 입모양으로 '돌아가세요.'라고 말해 주었다. 마음이 놓였다. 내 얘기를 전해 듣던 미나리가 비행기에게 말한다.
"그냥 노는 건 아닌가 보네."
웃는 비행기 위로 신나게 매달려 있는 안킬로가 보였다.
그렇게 놀고 웃으며 먹다 보니 기진맥진 놀다 지쳐 뜬 눈으로 잠든(것 같은 상태의) 아이들이 하나 둘 속출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시계는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이들을 들쳐 매고 다들 집으로 돌아간다. "고생 많으셨어요, 두루미 거북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구석구석 한결같이 처참했다. 그러나 그런 건 이미 아무 상관이 없다. 마음이.... 무언지 모를 온갖 따뜻한 것들로 가득 찼으니까....라고 생각한 순간, 거실 새하얀 실크 벽지 위를 빼곡히 채운 까만 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수십 마리의 날벌레들이었다. 족히 반나절은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안팎으로 나르고 오가며 논 결과였다. 예상 못한 습격에 온몸에 소름이 오도도 돋아났다.
“뭐, 괜찮아. 우리에겐 에프킬라가 있으니까.”
평소 벌레라면 징글징글해하는 거북이가 양손에 에프킬라와 파리채를 들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고 있었다. 거북이가 수십 마리의 벌레 떼에 이 정도로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니. 소름이 쏙 들어가는 기분. 그렇다면 뭐, 괜찮다. 오늘 우리 부부는 이웃집 큰 사람들, 작은 사람들 스무 여 명에게 따뜻한 밥을 대접했으니까. 내 집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즐거웠다는 게 이토록 뿌듯하고 기분 좋은 일 일 줄이야! 그러니까 벌레 즈음이야.... 방모임 즈음이야 정말로 괜찮다.
까무룩 잠든 안킬로의 얼굴이 고단하고도 행복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