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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어른이집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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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바다집 Oct 18. 2021

기분 좋은 발소리

첫 나들이

고래는 꼭 화가 난 것 같았다. 몇몇 어린이집에 상담을 받으러 갔었지만 이렇게 냉랭한 대우를 받은 적이 있던가? 얼굴을 떠나지 않는 미소와 친절한 말투, 꼼꼼한 설명.... 모두들 그렇게 미래의 고객에게 최선을 다 하고 있었는데.... 여기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공동육아는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마치 취조라도 하듯 무뚝뚝한 얼굴로 고래가 물었다. 딱히 반기지도 않는 듯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간절해졌다. 나와 내 아이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이가 계속 울어요.”

사실 내 아이는 몇 달 전 첫 어린이집을 이미 경험했었다. 두 돌을 넘긴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전전긍긍하다 급히 아파트 단지 내 가정 어린이집을 찾았던 것이다. 나는 아이를 낳기 전까지 남편과 함께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남의 회사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직원이라야 달랑 남편과 나, 아르바이트생 정도인 조그만 회사에서 휴직, 복직이 마음 편히 이뤄질 수 없었다. 급하면 아이를 안고 회사에서 업무를 보기도 하고, 남편이나 친정 엄마가 봐 주실 동안 일을 처리하기도 했다. 엄마와 프리랜서, 날라리 회사원 같은 어중간한 자리에 내가 있었다. 그러다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는 미팅이나 중요한 업무들이 생겨났고, 급히 어린이집을 찾았던 것이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실감이 안 날 정도로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순조롭게만 풀릴 리 없었다. 그날부터 안킬로(공룡 덕후였던 아이는 그 당시 자신을 안킬로 사우루스로 불러주길 요구했다)의 눈물샘은 마를 날이 없었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등원시키고 나오려고 하면 아이는 내 머리카락이나 치맛자락, 뭐라도 붙잡고 놔주려 하질 않았다. 온갖 말로 아이를 달래고 금방 오겠다 해도 소용이 없었다. 선생님이 아이를 억지로 빼앗듯 안아가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문을 열고 나오면 두꺼운 쇠문을 뚫고 아이의 통곡소리가 날아와 가슴을 찔렀다. 문 앞에서 울음이 그치길 간절히 기도하며 서성이던 나날들.... 회사에 출근해 일을 해도 마음은 어린이집 문 밖에 있었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아이가 밥을 안 먹는다며 우유를 싸 보내 달라고 했고, 도통 낮잠을 자지 않는다고도 했다. 한 달 여가 지나자 아이는 이제 아예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도 않았다. 적응을 위해 일주일을 아이와 함께 등원해 어린이집 안에서도 있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차라리 어린이집 환경이나 선생님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면 뭐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다른 아이들은 잘 웃고, 먹고, 놀았다. 내 아이만 불안한 눈빛으로 끊임없이 엄마를 확인했다. 처참한 마음으로 홀로 어린이집을 나와 걷고 있는데 아파트 주민인 듯한 여자 둘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여기 일층 어린이집 보내는 엄마들 이해가 안 돼,
애들이 어떻게 쉬지도 않고 하루 종일 울어?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 하루 종일 우는 그 아이는 내가 우주 전체에서 제일 사랑하는 아이였고, 나는 이해 안 되는 나쁜 엄마였다. 다음날 오전 근무만 마치고 바로 어린이집을 찾았다. 현관문 앞에서 원장 선생님에게 퇴소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때 사랑반 아이들이 나들이를 가기 위해 신발장 앞에 줄을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안에 안킬로가 있었다. 멍한 눈으로 한 곳만 응시하느라 아이는 바로 옆에 서 있는 엄마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저 가만히 서서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해주는 대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를, 뭔가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저 생기 없는 눈빛과 얼굴은 내가 알던 안킬로가 아니었다. 원장 선생님은 자신이 어린이집을 두 곳이나 운영하고 있으며, 다른 한 곳은 대형 어린이집으로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전엔 대기업의 인재 훈련 전문가로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나만한 전문가가 없다. 공동육아는 골치 아픈 곳이다.... 그런 얘기들을 바람처럼 스쳐지나 나는 안킬로를 번쩍 안아 들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그리고 집에 돌아와 한 동안 안킬로와 붙어 지냈다.

"아이에게 많이 미안했어요."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고래는 가타부타 대답 없이 두 번째 질문을 했다.

나들이 같이 가실래요?

다소 말투가 너그러워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얼떨결에 우리 세 가족은 이 낯선 집단의 꼬리 그룹에 섞여 ‘첫나들이’를 가게 되었다. 크고 작은 아이들 여섯, 일곱 명이 모자를 쓰고 작은 삽이나 분무기 모양의 장난감을 집어 들고 나들이를 나간다. 아무도 줄을 서지 않았다. 누구는 천천히, 누구는 빠르게, 누구는 손을 잡고, 누구는 멈춰 앉아 땅을 바라보며 길고 느슨한 행렬이 이어졌다. 어린이집 안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모습이 그대로 옮겨져 나온 것 같았다. 나들이 장소는 동네의 한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놀이터였다. 아이들은 놀이터가 보이자 달려가.... 바닥에 풀썩, 풀썩 자리를 잡았다. 거기, 부드럽고 보송하게 마른 모래들이 널려 있었다. 맨 발로 밟아도 다치지 않고, 담는 대로 담기고 또 흩어져 원래로 돌아가는 모래 위에서 아이들은 집을 짓고, 밥을 짓고.... 자꾸만 뭔가를 지어냈다.

안킬로는 다른 아이들을 가만히 지켜보았고 고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안킬로가 내 손을 놓고 달려가 모래 위에 앉았다. 모래 속에 손을 집어 넣고 쥐었다 놓았다 하다가.... 누웠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고 그 후부터 안킬로는 내가 있는 쪽을 쳐다보지 않게 되었다. 엄마들은 아이가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안다. 내 아이가 기분이 좋을 때 혹은 나쁠 때 어떤 소리를 내며 걷는지. 안킬로가 멀리서 슥슥 미끄러지듯 발을 끌며 걸어오고 있었다. 온몸이 땀과 모래로 서걱서걱했지만 매우 기분 좋은 발소리였다.

어린이집에 도착해 집에 돌아가려는데 고래가 아이를 데리고 당연한 듯 화장실로 향했다. 순식간에 시원한 샤워기 물줄기가 아이의 몸 구석구석을 훑고 지나갔다. 엄마, 아빠 말고는 누구와도 잘 씻지 않는 안킬로였다.

"옷 입는 거 도와줄까?"

고래가 묻자 안킬로는 가만히 고개를 저은 후 혼자 옷을 입었다. 옷을 다 입은 안킬로에게 고래가 말했다.

“다음에 다시 보자!”

말투는 그대로였지만.... 따뜻했다. 어린이집 문을 나서는 우리 뒤로 허기를 재촉하는 밥 냄새, 그리고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을 가질 수 없듯이 밥은 친구들과 나누어 먹는다.”

안킬로가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확신이 들었다.

'여기다! 이건 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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