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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집 Oct 18. 2021

다짜고짜 시설이사를 하라고요?

거북이와 두루미님이 입장하였습니다

나들이 이후 우리 부부는 그곳의 이사진과 2차 면접을 보게 되었다. 어린이집에 들어가는데 부모가 면접을 봐야 한다니... 그것도 어이가 없는데 면접이 2차까지 있다니! 남편은 즉각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뭐 얼마나 대단한 데라고?"


기가 차 하는 남편에게 만약 들어가게 되면 출자금에 가입비, 매달 조합비까지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뿐인가? 맘 카페에서 읽은 글에 의하면 들어가서 부모들이 해야 할 일도 부지기수로 많다고 했다. 주말 청소, 대청소, 김장, 교육아마, 총회.... 감당할 건 많은데 성난 남편을 설득할만한 근거나 확신은 없었다. 


"일단 면접이나 봐보자, 또 어린이집에 실패할 순 없잖아. 안킬로에게 더 이상 상처 입히고 싶지 않아." 


그렇게 남편을 다독였다. 이번에는 시간이 얼마가 걸리더라도 꼼꼼히 찾아보고 마음에서 오케이 할 때까지 알아볼 작정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면접은 부모가 어린이집을 심사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면접 자리에는 첫 날 보았던 고래(이사장)와 구름(대표교사) 외에도 호빵(운영이사), 미나리(홍보교육이사), 통통(재정이사)이 있었다. 이사장이니 이사니 하는 말을 들어본 건 대기업 간부들이 나오는 드라마가 다 였는데 여기는 조금 달랐다. 대부분 내 또래의 엄마, 아빠들이었다. 그중 '통통'은 가장 늦게 면접 자리에 도착했는데, 배가 꽉 찬 보름달처럼 불러 있었다. 꼭 일은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때 쏟아져 들어온다고 투덜대는 통통 옆에서 구름이 여자아이에게 호박죽을 떠먹이고 있었다. 안킬로 또래로 보이는 그 아이는 통통의 딸이었다. 첫째 아이와 만삭인 배 속의 아기, 퇴근길, 그리고 어린이집에서 먹이는 저녁밥. 아이 하나 낳고 회사로 돌아가는 일이 너무나 벅찼던 나에게 그녀는 어떤 가능한 '미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어렴풋이 들었다. 


나도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며 반가워하는 '미나리' 역시 워킹맘이었다. 거실에서 남아있는 아이들을 놀아주고 있던 아빠는 미나리의 남편인 '비행기'로 잠시 직장을 옮기는 과정에서 아이를 전담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에서 맞벌이를 하며 고작 아이 하나를 기르는 일이 너무나 힘들었다고 낯설지 않은 고백을 해왔다. 언젠가 늦은 퇴근으로 부랴부랴 찾아간 어린이집에서 멍한 얼굴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아이를 보고 '탈 서울'을 결심했다고 했다. 그리고 부부는 회의 끝에 비행기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고래는 공동육아 교사 출신이자 세 남매의 엄마였다. 이미 공동육아를 한 번 설립했었고, 의견차로 그곳을 나와 구름, 호빵, 통통과 함께 지금의 공동육아를 새로 만들었다고 했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던 처음의 카리스마와 쉽게 곁을 주지 않을 것 같았던 시크함 같은 것들이 비로소 이해되었다. 


우리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퍽퍽한 도시 살이, 돈벌이, 아이를 기르는 일들이 오롯이 '부부'라는 개인에게 짊어지는 삶이 그것이었다. 그렇게 외롭게 우주를 지탱하던 행성 같은 삶들이 아름아름 모여 함께 해보자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냥 광활하게 떠다니게 놔두지 말자고, 우리가 직접 우리 삶의 터전을 만들고 주도적으로 끌어 가자고 손을 내미는 기분이었다. 너무 커서 벅차고 두렵기만 했던 우주가 어쩌면 조화롭고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든 중심과 시작에 온 우주와도 같은 우리의 아이들이 있었다. 


순조롭게 진행되어 가던 면접이 끝나갈 무렵 고래가 말했다.


“자, 그럼 거북이는 공석인 시설 이사하시고요."


고래의 갑작스러운 공표에 머릿속엔 물음표가 수십 개 떠올랐지만 그 보다 남편이 발끈할까 걱정부터 되었다.


"시설.... 이사?.... 그게 뭔데요?" 


"별 거 아니에요, 책상다리 고치고, 여름엔 선풍기 달고 그런 거예요."


별 거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하면서 남편을 슬쩍 보니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군' 하는 표정으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얼떨결에 우주선에 탑승하는 마음으로 공동육아에 입소하게 되었다. 우리가 들어간 공동육아는 만들어진지 채 육 개월도 되지 않은 신생 조합이었고, 이제 하나하나 골조를 짜고 있던 '초짜' 단계였다. 무슨 말이냐면.... 고생길이 훤~하다는 뜻이지요 뭐;;;




운영소위- 학교 생활부와 집행부에 해당

              조합의 일 년 일정, 행사를 주관하고 준비함 

              큰 행사로 두 번의 총회, 모꼬지, 체육대회, 김장, 해보내기 잔치, 개원잔치, 졸업 등이 있음  


시설소위- 학교 미화부에 해당

              어린이집의 시설 보수, 공사, 청소 순번 관리, 텃밭정리

             

재정소위- 학교 총무부에 해당

              조합의 수입(출자금, 가입금, 보육료, 조합비, 보조금 등)을 관리하며, 

              운영비, 교사 월급 등 지출을 월간, 연간으로 관리함 


홍보&교육소위- 학교 홍보부와 학예부에 해당

                     신입 조합원을 모집, 상담하고, 조합원 간의 소통, 연락망 등을 관리함 

                     신입 조합원 교육, 조합원 공동체 교육을 주관함




거북이와 두루미님이 입장하였습니다


(카톡)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전 분홍이에요


-전 곰돌이예요. 반갑습니다 


-전에 뵈었죠!! 비행기예요 


-전 루피라고 해요 


-고추장이에요 


(카톡) 

(카톡) 

(카톡) 

 ............. 


귀여운 별명들 같으니라고. 연달아 울리는 카톡 소리에 배시시 웃다가 나도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안킬로 엄마 두루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안킬로 아빠 거북이입니다.” 


그 뒤로 7년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울릴 카톡의 대향연이 시작되었다. 어린이집 하나를 선택했을 뿐인데 우리 가족에게 덮쳐온 변화의 쓰나미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거북이랑 두루미 주말에 시간 돼요? 우리 집에 놀러 와요” 일단 주말 일정이 Full이 되고 “안킬로 우리 집 데려가서 저녁 먹이고 놀다 보낼게요~” 아들의 외출이 시작되었다. 

가까운 휴양림이나 공원으로 함께 소풍을 가고, 낮에는 어린이집, 저녁에는 동네 사랑방으로 탈바꿈하는 ‘터전’(공동육아에서 어린이집을 일컫는 말)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술과 밥을 먹고, 책 모임을 하고, 소위 모임을 하고, 크고 작은 회의를 하느라 터전 사용 시간을 미리 체크해야 할 지경이었다. 달마다 ‘방모임’을 하느라 동네 이 집, 저 집을 들락거리고, 우리 집에도 신혼 후 거의 처음으로 대인원의 손님맞이가 시작되었다. 



이웃, 마실 참 설레고 따뜻한 단어들이었다


세 가족이라는 편안하고 익숙했던 벽에 문이 그려지고, 그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 창 밖으로 손짓하고 손 내미는 사람들 속에서 머쓱하게 문을 열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설렘으로 남편, 아니 거북이와 밤늦도록 터전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로 끝나면 좋으련만 사실 좋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느껴보지 못한 부담감이 엄청났는데 시설이사 역할이 그랬다. 카톡으로 시도 때도 없이 필요한 시설 보수, 제작에 대한 요구들이 올라왔던 것이다. 


‘거북이~ 선풍기가 고장 났어요!’ 


‘책상에 잔 가시가 너무 올라와서 바니쉬 작업해야 할 것 같아요.’ 


‘아이들 키에 맞는 책장이 필요한데.... 혹시 거북이 목공 할 줄 알아요?’ 


‘신발장이...’ 


‘텃밭이....’ 


거북이 거북이 거북이.... 모두들 열심히 부르는 우리의 거북이는 사실 여태껏 살면서 벽에 드릴 구멍 하나 내 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나무로... 책장을... 어떻게 만들지?" 


톡이 울릴 때마다 거북이의 어깨가 흠칫흠칫 떨리는 게 보였다. '이번엔 또 뭐....' 하는 얼굴로 올라온 내용을 확인하고, 며칠씩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이런 건 전문가한테 맡겨야지 내가 어떻게 해?" 할 때는 거의 혼이 빠져나간 얼굴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거북이의 평소 스타일을 말하자면 못을 하나 박더라도 간격과 각도를 섬세하게 따져야만 하는 완벽주의자. 그뿐이랴, 못의 재질과 컬러까지 고려해야 하는 깐깐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대충은 없는 거북이에게 난생처음 해야 하는 시설이사의 자리는 실로 엄청난 부담이었다.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며 거북이는 이사직 일주일 만에 ‘시설 이사직 사임의 건’을 공식적으로 올리게 되는데....


‘죄송한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네요. 요 며칠 고민이 많았습니다만, 아무래도 제가 시설이사를 맡기에는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어쩌고 저쩌고....’ 


거북이는 신중하게 말을 고르고 골라 정중히 문자를 올렸으나, 다시 고래가 등장했다.


‘거북이가 부담을 많이 느꼈나 봐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시면 되죠~ 도와줄 분들도 많고 차차 배우면서 하시면 됩니다. 다 그렇게 배우니까요^^’ 


고래의 말엔 언제나 거부할 수 없는 확고함과 묵직하게 끌고 가는 한 방이 있었다. 


‘저랑 같이 천천히 해요 거북이!!’ 


‘다 비슷해요~ 부담 갖지 말고 주말에 우리 집에 놀러 와요~얘기해봐요~’ 


‘저희도 있습니다! 주말에 저도 갈게요!’ 


그 뒤로 쉴 새 없이 딸려 올라오는 응원?을 받으며 훈훈하게 ‘사임’의 건은.... 자동 반려되고 말았다. 거북이 잡는 고래를 직감하는 순간이었다. ‘이 사람들.... 정말 뭐지?;;; 다단계인가?’ 하는 어이없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이미 거액의 출자금과 가입금까지 입금을 마친 우리 부부는 "주말에 비행기네 집에 일단 가보자, 도와준다는데 뭐 어떻게든 되겠지"하고 애써 서로를 다독여 주었다. 그 이후 거북이는 신중하게 인터넷으로 가제트 공구함을 구매하고, 유튜브로 드릴 사용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공동육아 삼 년이면 애지 간한 건 다 할 수 있다


어딘가에서 처음 이런 말을 들었을 때는 농담처럼 피식 웃어넘기고 말았다. 그땐 몰랐다. 내가 공동육아에 7년을 다니게 될 줄은.... 어디 시설이사뿐이랴. 운영이사, 홍교이사, 평가제 위원회까지 분야를 초월하며 산전수전 다 겪을 줄은.... 그때마다 어떻게 버텼냐면 '에라 모르겠다, 일단 사람들이랑 술이나 마시고 얘기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버텼다. 내려놓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이 내가 겪은 공동육아의 대부분 일들이었다. 그러니 다 할 수 있는 거다. 도 닦는 기분으로. 

훗날 베테랑 조합원이 된 거북이는 신입 조합원이 얼빠진 표정을 지으며 "이걸 어떻게 해요?" 하고 물으면, 너그럽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다 할 수 있게 됩니다! 믿으세요."라고 대답하며 어깨를 두드려 주게 되었다. 다단계에서 종교의 단계로 업그레이드되었달까. 거북이의 넘치는 여유를 보고 있자면.... 자꾸 처음의 떨리던 어깨가 오버랩된다. 그 어깨 위에 지금은 선배 조합원으로서의 위상과 우쭐함이 살포시 내려앉아 반짝이고 있다. 정말이지 공동육아 삼 년이면 애지 간한 건 다 할 수 있다. 허세 반 믿음 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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