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 척하고 싶은 날이 있을 뿐
오랜만에 아내와 한바탕 큰 다툼을 벌였다. 침실에서 아이를 재우던 아내가 아이가 토를 하는 바람에 급하게 나를 찾았는데,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던 난
아내가 부르는 소리도 전화도 스마트 워치 진동도 모두 듣지 못했고, 결국 아내는 토를 뒤집어쓴 채로 방문을 열고 나와 나에게 한참을 쏟아냈다. 하지만 난 너무나도 억울한 나머지 나를 방어하기에 급급할 뿐이었고, 아내와 아이 상태를 살피거나 빠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 이어지던 고성은 결국 서로의 맘에 상처를 남기는 말로 그 끝을 맞이했다.
나도 알고 아내도 안다. 서로가 하는 말이 어떤 말인 줄. 나 이만큼 힘드니까 좀 알아줘, 나 좀 더 배려받고 싶어, 내 마음을 좀 더 들여다 봐 줘. 뭐 이런 말들이다. 평소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다 받아주고 다 살펴주고 다 보듬을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결국 다툼이 일어나고 만다. 너 힘든 거 알아, 근데 지금은 내가 더 힘들어. 이렇듯 서로의 ’나‘가 더 강해질 땐 여지없다. 난 오늘 나를 내세워야겠는데 상대는 상대대로 상대를 내세우는 날이다. 받아주는 쪽이 없는 오늘은 창과 창의 싸움이다. 방패가 없기에 서로를 찌르고 또 찌르고, 찔리고 또 찔린다. 싸우지 않고 깨달으면 좋을 텐데 항상 그렇게 서로에게 또 나 자신에게 상처만을 남긴 싸움이 끝나고 나서야 깨달음의 사색이 이어진다. 사색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를 서서히 낮추고 상대를 받아들이게 한다. 나도 있지만 너도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나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너의 마음도 중요하고 존중과 배려를 받아 마땅한 것임을 되새기게 한다.
깨달음이 다가오면 더 망설일 것도 기다릴 것도 없다. 그 길로 달려가 나를 잠시 낮추고 상대의 말에 동조하며 ’내가 네 맘을 모른 체하고 너무 내 맘만 내세웠구나. 미안하다.’ 하고 사과하면 상대방의 경계태세가 낮춰지고 대화의 물꼬가 트인다.
우리는 나와 상대의 마음이 모두 중요하다는 걸 안다. 그리고 나처럼 상대도 가끔 그걸 모른 척하고 싶은 날, 나와 내 마음이 좀 더 배려받고 싶은 날이 있다는 것도 안다. 나의 그날과 상대의 그날이 겹쳤기 때문에 다툼이 일어난 것도 안다. 이제 모른 척은 잠시 접어두기로 한다. 나를 잠시 낮춰 상대를 받아들일 공간을 만들면 내가 상대에게 남긴 상처가 치유된다. 상대의 상처가 치유되면 내 상처가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용서와 이해, 배려와 존중은 상대를 위한 것이지만 결국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다만 모르는 척하고 싶은 날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