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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Jan 31. 2021

어느 자살 사별자에게

                  

  동생이 생을 포기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한 행동은 항공편을 찾는 일이었다. 아빠가 사망 추정 날짜를 전달받는 동안 여동생의 사진과 편지를 챙겼다. 넋이 나간 부모님과 당혹스러워하는 남동생을 데리고 공항에 도착했다. 경찰서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나는 시간에 따라 변하는 사람의 부패 단계를 확인했다. 동생은 3일 뒤에 발견되었으니 그나마 얼굴은 온전히 볼 수 있겠다는 안도감과 이런 것으로 안도감을 느껴야 하는지에 대한 황망함이 동시에 들었다. 여동생이 살던 원룸의 주인은 최대한 빠르고 조용하게 방을 비워달라 부탁했다. 마음을 추스를 여유도 주지 않는 이성적인 메시지에 마음이 아렸으나 어른인 나는 그의 사정도 헤아릴 수 있기에 울지 않고 걸레를 짜 방 곳곳에 배인 동생의 흔적을 닦아냈다.


  스스로 생을 끊은 고인의 가족은 장례식을 제대로 준비하기 어렵다. 경찰은 그간 왜 동생을 보살피지 않았냐고 물었다. 나는 담담하게 10년을 보살폈다고 답한 뒤 저녁 치의 항불안제를 삼켰다. 그제야 경찰은 언니를 탓하는 의도가 아니라고 얘기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책상에 놓인 여동생의 일기장을 열었다. 통역사가 되겠다는 각오부터 봉사단 자기소개서 마감까지. 동생은 우리의 바람대로 삶을 이어보겠다는 다짐을 실현하는 중이었다. 한 달 전의 나는 동생에게 함께 살자고 말했다. 우리 둘 다 과거의 고통에 묶이지 말고 현실을 지내보자고. 동생은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눈을 감은 동생의 얼굴을 볼 때도, 유골함에 담긴 동생을 볼 때도 눈물이 나지 않았지만 모든 일정을 해치우고 동생의 일기장을 들여다볼 때가 되자 감정이 흔들렸다. 사무치는 외로움과 고독을 안고 결정한 선택에 하나의 이유만 들어가지는 않았겠으나, 그중 핵심적인 이유로 보이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또박또박한 글씨로 동생은 유년 시절의 잊기 어려운 트라우마를 자세히 적어두었다. 시절을 같이 겪은 나는 묘사를 읽으며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내가 지구에서의 편도표를 끊고자 다짐했던 이유와 흡사한 내용을 보며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밤을 새웠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세계 1위이건만, 주변에서 자살을 택했다는 소식은 공인을 제외하고 알기 어렵다. 나는 그 이유 중 하나가 가족과 지인을 잠정 가해자로 모는 시선이라 생각했다. 자살을 시도하기 전 93%의 사람이 주변에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낸다던데, 그렇다면 당신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신호를 무던히 넘기지 않았는가 질문하는 듯한 시선. 만일 눈앞에 놓인 삶만 바삐 사느라 사랑하는 이의 구조 요청을 지나친 게 아니냐 여기는 이가 있다면, 나는 내 사례를 짚어 확고하게 말할 수 있다. 동생의 구조 요청을 확인했고, 온 가족이 힘을 다해 도왔으나 끝내 막지 못했다. 불현듯 옥상에 오른 이를 기숙사로 돌려보냈다가 구조 전과 같은 결과를 마주한 이의 사례가 기억났다.


  「우리는 모두 자살 사별자입니다」에서, 저자 고선규 선생님은 “자살에 이르는 경로는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누가 어떤 상황에서 자살할 것인지를 정확하게 예측해 예방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동생은 치열하게 살았으며 미래를 상상했다. 새 옷을 샀고 요리를 했다며 사진을 찍어 보냈다. 해가 뜨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고 떠나기 전날에는 홀로 카페에서 콜드 브루 라떼를 맛봤다.


  최근 일주일간은 탐정을 자처해 동생의 온라인 기록을 샅샅이 조사했다. 생전 마지막으로 나눈 메시지는 무엇인지, 누구와 가장 친했는지. 강화된 개인정보법에 의해 2016년 8월 이후 출시된 휴대폰은 고인의 가족이어도 잠금 해제를 할 수 없다. 때문에 간신히 미리보기로 엿볼 수 있는 인증번호 몇 자리를 통해 이메일에 들어갔다. '보낸 메일함'을 하나하나 클릭하면서, 도대체 나는 무얼 찾기 위해 이리도 애쓰는지 궁금해졌다. 문제와 답을 풀며 살았던 학창 시절처럼, 동생의 선택에도 확고한 이유 하나가 나왔으면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주 요인이 짚이면 그 사람이 누구든 찾아 분통을 터뜨리고 역시 내 잘못은 없었다는 이기적인 안도감을 위한 걸까.


  필사적으로 동생의 기록을 살피는 모습은 내게만 나타난 게 아니었다. 자살 사별자를 다룬 책에서 한 언니도 동생이 생전 사람들과 주고받았던 채팅과 이메일을 밤늦게까지 살펴보았다고 했다. 동생이 왜 죽었는지 알고 싶다고, 알아내야 한다는 이유였다. 같은 사례를 보며 다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내가 정신을 놓은 게 아니었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현실에서 기피되는 죽음을 지켜본 이들의 이야기는 투명하게 보이지 않아서 조그만 기록 하나하나가 큰 힘이 된다. 이 글을 쓰는 이유다.

 

  정신과 선생님은 약의 강도를 높여주었다. 그러고는 혹시 동생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는지 물어보셨다. 고개를 저었다. 이기적이게도 오히려 살고 싶어졌다고 답했다. 이제껏 나의 아픔에 집중한 나머지 남겨진 이의 아픔을 무시했는데, 이른 작별을 선고받은 이의 상처가 이리도 크다면 절대 못 떠나겠다고 말이다. 장례식장 직원은 마지막으로 동생에게 전할 말이 있느냐 물었다. 나는 소리 내어 “나중에 봐”라고 말했다. 나는 조금 더 즐기고 갈래, 세상이 얼마나 예쁜 지도 보고, 세계 곳곳 다정한 사람도 만나고. 질투 날 정도로 멋지게 사는 건 내 소원이자 동생의 소망이었다. 동생은 늘 나를 멋지다고 표현했다. 언젠가 "언니는 어떻게 나를 안 따라올 수 있어?"라고 툴툴댄다면 "그러게, 같이 있자고 말했잖아. 바보냐?"라고 답할 테다.


  집의 시간은 멈췄다. 다들 멍하니 앉아있고 틈만 나면 잠을 잔다. 낮에도 밤에도 새벽에도 고요하다. 잠에 지쳐 눈이 강제로 뜨일 때면 각자의 방식으로 상처를 들여다보다 매만지고 다시 덮기를 반복한다.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우리 모두가 동생의 소식을 숨기는 데 급급하지 않다는 것. 어느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지어내지 않아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조금이라도 생기지 않도록 도와준다는 것.


  멈추어진 시간과 흘러가는 시간 가운데서 아픔을 겪는 자살 사별자를 위해 복지부는 ‘얘기함이라는 비대면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유가족의 심리 치료 비용을 지원하거나 서로의 얘기를 나누는 자조모임도 열린다니 필요한 분은 놓치지 않았으면. 훗날 여동생과 팔짱을 끼고 걷다 보면 누군가 할머니와 손주냐고 물어보겠지. 그러면 나는 활짝 웃어 보여야겠다. 손주가 나를  닮아 이렇게 예뻐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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