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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May 23. 2021

당신이 내게 화를 내주었으면


  예상치 못하게 불어닥친, 그러면서도 예상치 못하게 길어지는 코로나 19로 인해 이제 바나나 한 송이마저 택배에 칭칭 싸매어 옮겨진다. 생활용품을 고르면서 카야 잼 하나를 추가했더니 잼이 담긴 병보다도 두꺼운 비닐과 박스가 도착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세상이다. 대수롭지 않다는 마음을 먹는 순간, 우리의 미래도 대수롭지 않게 고꾸라지리라는 확신이 든다.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 생경한 사회에서는 새롭게 익혀야 할 것들이 참 많다.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장사를 한다면 맛에만 신경 쓰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이전에 어떤 손님이 왔는지, 그들의 온도는 36.5℃에서 멀어지지 않는지 점검할 방안이 있어야만 돈이 벌린다. 맛보다 청결이 더 중요해서, 사람과 사람을 가로막는 투명한 유리벽이 있으면 식당에 들어간다고들 한다. 일회용품 사용이 늘어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한 번 쓰고 버려지니 이전 사람의 타액이 묻어 있을까 겁먹을 필요 없으니까.     


  일회용품이 늘어난다면, 일상 속에서 마스크가 필수 불가결한 위치로 올라갔다면 잇따라 배워야 할 게 많은데도 새로운 지침들이 알려지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듯싶다. 마스크는 접어서 버려야 하며, 야생동물의 발이 묶이지 않도록 마스크 끈을 잘라야 한다는 ‘끈 자르기 운동’도 잠깐 반짝하다가 다시 시들 거린다. 예전에는 길거리에 찌그러진 캔이 보였다면 지금은 찌그러진 마스크가 보인다. 물론 끈이 잘렸다거나 마스크가 반듯하게 접히지도 않은 날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시국에 맞물려 늘어난 택배에 한숨짓는 택배 기사와 산처럼 쌓인 배달 용품 앞에서 고개를 떨구는 환경미화원의 사진을 봤다. 배달 앱에서 일회용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체크를 해도 몇몇 사장님들은 여전히 일회용 수저를 함께 넣어 주신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체크를 안 하면 요청 사항을 확인할 기미 없이 일회용품이 반찬처럼 함께 동봉되어버린 건지 상심에 빠졌다. 당장의 편리함에만 주목하다가는 커다란 악재로 돌아올 텐데. 코로나 19가 최대의 재난이라고들 하나, 나는 왜 이게 시작처럼 보이는지. 사실 코로나 19는 예상치 못하게 불어닥친 일이 아니다. 물론 함부로 얘기하다간 비관적인 사람으로 몰리니 입만 다물뿐이다.     


  코로나 종식을 예측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궁금해하나, 코로나로 인해 늘어나는 플라스틱 사용과 해마다 괴이해지는 이상 기후에 관한 관심은 빠르게 사라진다. 나는 그게 현재의 답답함에만 주목해서가 아닐까 했다. 호흡이 답답하니, 한순간 사람들을 만나기 어려우니 자연스레 기후와 환경오염 같은 문제는 신경이 덜 쓰이지 않는. 코로나 19가 하루를 덮쳤다는 소식은 뉴스를 보지 않고도 언제나 느껴지지만 그 밖의 문제는 구태여 신경을 써야 알 수 있는 일이므로.     


  가끔은 나도 잊는다. 육즙이 흐르는 햄버거를 먹고 싶다는 충동에 빠진다. 하지만 육식과 온실가스가 밀접하게 관련되었다는 소식을 되새긴다. 해이해지는 순간, 미래의 행복도 해이해지므로. 편리함에 주목하는 소확행만 즐기다간 미래의 행복은 영영 오지 않을 테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 우리는 서로에게 일러 주어야 한다. 무심코 일회용품을 고르는 미래의 내게 당신이 귀띔해줘야 한다.


  당신이 내게 화를 내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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