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요아 Mar 28. 2021

고통뿐인 매일에서 웃음을 고르는 힘

불행 울타리 두르지 않는 법


불행과 행복이 무엇인지 정의하기 어려우나, 요즘 상황을 두 갈래로 나누자면 이렇다.


불행

  책에 가정폭력 얘기를 실음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엊그제 또 손을 들었고, 나는 즉시 가정폭력을 사유로 경찰에 전화를 걸었으며, 경찰은 그간 동생이 가정폭력을 이유로 신고한 내역이 3회나 된다고 말했다. 신고자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상황은 굉장히 힘겨웠다. 아빠가 정신과 약물을 복용한다는 전제하에 검찰에 송치하지 않겠다고 협의했고, 엄마는 코로나 상황과 가족의 정신 건강을 위해 제주에 오래 있으면 안 되겠냐고 간절히 요청했다.



로 설명할 수 있겠다. 다만, 그 반대라 칭하는 감정은.


행복

  갓 열일곱인 동생이 쉰일곱의 연배가 웃으며 얘기할 농담을 한다. "오늘은 치킨이 당기지 않네"라고 하니 "그럼 밀어"라……는. 마트에서 투썸 요거트 파우더를 샀더니 요거트 스무디를 만드는 능력을 얻은 기분. 또, 머리 안쪽을 탈색했다. 불쑥 화가 날 때면 세상에서 제일 센 인물이 능력치를 숨기는 듯한 여유로 귀를 넘긴다. 마치 팔에 호랑이 문신을 새긴 듯. 물론 그만큼의 효과는 없으나 혼자 통쾌하다. 또, 신경계 주사 하이코민을 맞을 때는 몸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링거로 들이붓는 기분이라 개운하다.



불행의 울타리에 갇힐 때면 왜 내게만 이런 일이 싶은지 마음이 쓰리다. 한때 같은 고민을 공유하던 지인은 모두 마음의 여유를 잘 갖고 건강히 사는 듯 보이는데, 나는 겉만 번지르르하지 내면은 시샘과 외로움으로 콩벌레처럼 돌돌 말린 기분이다. 첫 책이 나왔건만 교보문고 광화문점 평대에서 열흘 만에 서가로 좌천된 것도 씁쓸했다. 아플 때면 전 남자 친구가 나를 떠난 게 현명하다는 생각까지 이어졌다. 단어 그대로 울타리다. 잠을 자지 않고서는 불행 밖으로 뛰어넘지 못했다.


그렇다고 아픈 일 가운데 좋은 일이 없느냐 하면 아니다. 나쁜 일이 연달아 생기니 구태여 좋은 일을 찾아 헤매지도 않았다.


언젠가 엄마는 티비를 보며 "저들보다 우리가 낫네."라는 말을 무심결에 내뱉었다. 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다 이내 부끄러워졌다. 타인의 불행을 우리의 행복으로 치환하는 대표 사례였다. 때때로 좋은 어른을 만날 때면 청각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데, 그들은 언제나 "사회에 휩쓸리지 말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해."라는 조언을 더한다. 어쩌면 선택에 있어서만 효력이 드는 게 아니라, 행복을 고르는 기준까지 포함한 건 아닐까. 남의 불행이 있으니 비교적 내 불행은 조그맣거나 복에 겨운 사건이고, 남의 행복보다 커다랗다 느낀 내 행복은 누군가 매일 겪는 당연한 하루라 여기며 실망하는 마음을 지우는 방식.


타인의 감정을 발판 삼아 내 감정을 평가하지 않으니 자연스레 울타리 밖에 섰다. 힘들지 않다고, 아프지 말자고, 행복하냐고 끊임없이 혼잣말하는 날보다 훨씬 나은 방식이었다. 내가 느끼는 불행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 지나가는 행복을 인지하는 것. 그런 일련의 총집합이 나임을 부정하지 않는 것.



이전 12화 집과 가까운 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