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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Jun 18. 2019

요가를 하며 땀을 흘린다

나만 바라볼 수 있는 시간

출근 전 거울을 봤다. 축 처진 어깨와 거무튀튀해진 얼굴. 클랜징폼을 가득 짜서 손안에 거품을 가득 낸다. 까맣게 변한 얼굴이 하얘질까 싶어 최대한 거품을 많이 묻혀 얼굴을 빡빡 닦아낸다. 작은 핸드백을 매고 출퇴근해도 몇 주 전부터 묵직한 가방을 메고 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집에 오면 어깨에 꼭 가방 자국이 남아있다. 분명 몸이 이상해지고 있다는 걸 외관상으로도 충분히 느끼고 있었음에도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퇴근하고도 일은 계속됐다. 퇴근 후 시간도 자유롭지 않았다. 이틀에 한 번씩 회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습사원이라는 명목 하에 선배들이 호출하면 회식에 참석해야 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과였다. 간단한 저녁식사부터 시작해 술자리, 노래방으로 이어지는 지루하고도 견디기 힘든 시간들. 몸과 마음, 나를 관리한다는 건 사치 그 자체였다.



내가 술인지 술이 나인지. 맥아일체인데 또 그걸 잊는 방법은 맥주였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가던 도중 집 앞 마트를 들렀다. 집에서 먹을 맥주 한 캔과 과자 한 봉지를 사러 들어갔다. 검정 봉지를 들고 앞 뒤로 흔들며 걸어 나오던 중 익숙한 글자가 보여 걸음을 멈췄다. 취업 전, 다이어트한다며 다녔던 요가학원이 눈 앞에 나타났다. 무언가에 홀린 듯 길을 건너 학원 문을 열었다.


요가원에 있는 옷을 입고 당장 청강했다. 꾸준히 수련했을 때와 그 날의 몸은 확연히 달랐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선생님의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몸의 변화보다 내 마음 상태를 정확히 마주 보게 됐다. 지금 중심이 없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자꾸 어딘가로 기울어지는 내 정신을 몸으로라도 다스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 토요일 아침, 요가 학원에 나와 일 년 치 강습료를 긁었다. 입사하고 나 스스로를 위해 이렇게 큰돈을 쓴 건 처음이었다. 사고 싶었던 옷이나 가방을 산다는 건 생각만 해도 아까웠지만 요가는 왠지 모르게 전혀 아깝지 않았다. 마음과 마주침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퇴근 20분 전부터 이미 마음은 요가학원에 가있다. 오늘 할 아사나가 무엇일지 상상하며 의자에 앉아있는다. 정수리부터 척추 그리고 손 끝까지 차례대로 내 몸상태를 체크해본다. 요가를 갈까 말까 고민이 되다가도 가방 안에 있는 요가복을 보면 힘이 난다.



요가는 굳이 내 몸이 따라갈 수 없으면 억지로 할 필요가 없었다. 운동신경이 있든 없든 각자의 수준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고 할 수 없더라도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주는 선생님들에게 경외심을 느꼈던 것 같다. 이렇게 나의 회사생활과 요가는 정반대였다. 회사에서는 신입사원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실적을 강요받았다. 부족하더라도 스스로 채워나가야 했다. 조직의 스타일에 나를 맞추다 보니 항상 숨을 멈추고 긴장한 상태로 일을 진행했다. 반대로 요가는 들숨, 날숨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연습을 시킨다. 코에서 시작해 혈관을 타고 공기들이 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짜릿함을 느꼈다.


반년 가까이 쉬다가 요가 매트 위에 섰다. 익숙했던 동작들도 다 잊어버렸다. 호흡도 다 흐트러진 상태에서 선생님 토시가 들리지 않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비슷한 동작을 만들면 바로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버린다. 그렇게 두 달쯤 흐르자 점차 평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내내 지고 있었던 생각들을 사바아사나(송장자세)을 하며 바닥으로 끌어내릴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매일 저녁 땀 흘렸다. 지독하게 요가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힘든 나 자신을 피해 육체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나를 괴롭히는 자아에서 해방될 수 있음에 행복했다. 수많은 자아를 미뤄두고 요가 매트 위에서 내 육체에 집중해야 한다.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복부에 힘을 주고 코어를 잡아야 한다. 한 발을 들고 중심을 잡다 보면 다른 자아가 들어올 틈이 없다. 그저 요가하는 나만 바라볼 뿐이다. 몸을 쓰다 보면 휴지통에 버렸어야 할 그 단어들이 기억나지 않았다. 내 몸이 휴지통이 되어 더럽혀지다 보니 자꾸 내 코에서 냄새가 났는데, 요가를 하다 보면 그 냄새는 사라지고 내 몸의 냄새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욕심 없이 마음을 비우고 차근차근 따라갔다. 온몸에 바짝 힘을 주면 요가 동작은 더욱 힘들었다. 힘이 들어가는 부분에만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현실에서의 나는 온 정신과 몸에 힘을 바짝 주고 뛰어나가야 했지만, 요가는 달랐다. 딱 집중한 부분에만, 그곳에 집중적으로 힘을 기르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요가를 통해 몸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고, 그렇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다. 무조건 버텨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중에 요가는 삶을 다른 각도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줬다. 회사 생활이 어려운 친구들에게 자꾸 요가를 권하게 된다. 현실의 나를 자각하기에 너무나 좋은 운동이 요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온몸에 힘을 주지 말 것. 그리고 집중할 곳에만 집중할 것. 끊임없이 비울 연습을 해야 하고 제대로 숨 쉬는 것도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운동.


요가를 통해 나는 몸과 마음을 쓰는 법을 동시에 터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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